창문을 넘어 들어온 늦가을 오후의 햇살을 벗삼아 깜박 오수를 즐기고 있던 나를 깨운 우체부가 소포를 전해 주고 갔다. 우편물을 뜯을 때는 늘 호기심과 어떤 기대가 있게 마련인데, 깜짝 놀랄 만한 기쁜 소식 때문에 평범한 날이 특별한 날이 될 때가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먼 데서 온 소포 꾸러미 속에서 정성껏 챙겨 보낸 선물과 편지 등이 나왔다. 추운 겨울날 운전할 때 끼라며 보낸 폭신한 털장갑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편지 속에 동봉한 그리운 가족들의 사진도 오늘을 특별한 날로 점 찍어 놓을 것 같다.

"고모, 정은이가 엊그제 한 돌을 맞았어요!"
"아! 그랬구나!"

세월이 유수와 같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갓난아기를 데려 왔다는 소식을 알려 온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돌을 맞았단다. 앙증맞은 드레스(?)를 차려 입은 첫돌박이 정은이가 엄마, 아빠와 함께 사진 속에서 제법 의젓하게 서 있다. 그리운 얼굴들이 금방이라도 사진 속에서 튀어 나와 말을 건네는 듯, 밝고 건강한 세 식구의 행복이 내게 전해져 오는 순간이었다.

온 세상을 가슴에 품은 듯 평안하고 환한 정은 엄마의 활짝 웃는 모습에서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엄청난 힘이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지긋이 정은이를 바라 보는 아빠의 눈가에도 딸을 위해서라면 하늘에 매달린 별이라도 따다 주리라는 단호한 사랑이 어려 있다. 물 좋고, 산 좋고, 공기 좋은 산골 강원도에서 정은이를 키운다는 조카네 가족 사진을 보며, 사랑과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동감하게 된다. 사랑을 나누며 사는 사람들이 이루어 가는 작은 천국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혼자서 고개를 주억거려 본다.

'몇번 유산을 하고 그 후유증으로 몸이 쇠약해졌어도 결코 떨쳐 버릴 수 없는 모정을 누구에겐가 나누어 주려고 갈 데 올 데 없었던 아기 정은이를 데려다 키워 온 너희 부부의 의지와 결심이 참으로 자랑스럽다.

사랑이 메말라 가는 삭막하고 어수선한 이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를 홀로 버려 두고 떠나 버린(남 모를 아픔이 있었겠지만...) 엄마의 가슴을 애타게 찾던 가엾은 어린 것을 선뜻 품에 안고 오던 너의 겸손한 용기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도 아니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아기에게 예쁜 이름을 우선 지어 주고, 날마다 함께 사랑을 나누게 될 것이라는 꿈과 기대에 부푼 가슴을 안고 서둘러 집으로 오는 너를 보신 전능자께서 기뻐하시며 동행해 주시고 친히 도와 주시리라는 분명한 약속의 은총을 너와 아기 위에 부어 주셨으리라 믿는다. 아기를 키우느라 밤잠을 설치며 지칠 때마다 네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께서 장중에 너를 꼭 붙드시고 위로하시며 샘 솟듯 끊임없이 솟아나는 사랑의 힘을 네 안에 가득히 채워 주셨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엄마의 몫을 훌륭히 감당해 낸 네가 정말 장하기 그지없다.

엄마와 딸이 가꾸어 가는 찬란한 미래의 꿈이 열매 맺고 영글 때까지, 정은이 안에 심긴 네 숭고한 사랑이 또 하나의 밝은 빛으로 자라서 세상의 어두운 곳에 사랑과 소망을 전하게 되기까지, 신실하신 주님이 날마다 손수 키워 주실 것을 믿고 소원하며, 멀리서 격려와 사랑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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