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 feud’라는 TV 프로를 즐겨 본다. 한 쪽에 다섯 명, 각기 자신의 가족 이름으로 나와서 맞은편에 있는 다른 가족과 경합을 한다. 퀴즈대회라면 이겨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때론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으나, 이 프로는 승부보다는 가족의 결속을 다지는 시간으로 보인다. 깊은 지식을 요구하거나 전문적인 사항을 다루는 것이 아니므로 뚜렷한 답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럴지라도 물음에 연관이 전혀 없는 엉뚱한 대답을 한다면 곤란한 일이다. 그렇지만 가족들은 좋은 대답이라고 박수를 쳐주고, 격려해 가는 것을 볼 때 가족이라는,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중요한 관계는 따지기 전에 용기를 주는 관계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 같다.  언어와 문화가 달라서 평생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이민자인 나에게는 이 사회의 문화나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쇼이기도 한다.

 
30년을 훨씬 넘은 세월 동안 많은 진행자들이 거쳐갔겠지만, 지금의 진행자인 스티브 할비는 큰 체격의 활량이다. 머리카락 하나 없는 대머리에다가 큰 눈, 큰 코, 큰 입, 진한 콧수염 등 모형을 만들기에 좋은 독특한 얼굴이지만, 악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선한 인상에 절도가 있고, 예의가 바르다. 코미디언 출신답게 재치가 뛰어난 진행 솜씨는 참가하는 모든 가족들에게 유쾌감과 좋은 경험을 주며 시청하는 우리에게도 편안한 웃음을 준다. 100명에게 물어봐서 답과 점수가 작성이 된다는 그 물음들 또한 생각조차 못했던 재미있는 문제들이 속속 나와서 될 수 있는 한 빼지 않고 시청하게 된다.

출연자들도 신분과 인종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한 가족이 다섯 명을 팀으로 출연한다. 가족 구성원들은 교수, 박사, 노동자, 바텐더 포커 게임 딜러나 무용수 등 직업이 다양하다. 진행자는 간간이 출연자들이 이야기를 하게 한다.

오래된 프로인 만큼 언젠가는 육십대 부인이 자녀들과 남편을 대동하고 나와서는 자신이 결혼 전 이 프로에 참가했을 때 찍었다는 오래된 사진을 보여 주어 프로의 역사적인 의미를 더해 주었다.

진행을 살펴 보면, 스티브 할비가 특유의 흥분된 목소리로 "100명의 젊은 남자들이 자신의 할머니가 어떤 연예인의 옷을 입고 나올 때 제일 창피할 것인가?"라고 질문하면, 레이디가가, 브리트니 스피어스, 비욘세, 마돈나 등의 이름이 올라오면서 파파 할머니들과 요란한 복장의 연예인 모습들이 겹쳐져 웃음을 자아낸다. 그런가 하면 할아버지가 과식했을 때는 "잠을 잔다, 트림한다, 허리띠를 풀고 지퍼를 내린다, 화장실에 앉아 계신다"라는 대답이 나오는 귀여운 질문이 있고, 결혼한 젊은 여자들을 위해 "시어머니를 자신의 집에 얼마 동안 머물게 하고 싶은가?" 혹은 "이혼할 때 여자가 버리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심각한 질문도 있다, 조용히 해야 할 공공장소를 묻기도 하고, 배(stomach)의 다른 이름이 gut, belly, tommy, paunch라는 등 별의별 새로운 질문들을 찾아내서 시청자를 즐겁게 한다.

저녁 7시부터 8시까지 각각 30분씩 두 번의 경합이 벌어지는 이 프로는 7시경에 시작되는 우리의 저녁 식탁에 등장하곤 한다. 식사를 하며 아무 상관이 없는, 텔레비전 속의 가족을 열을 내가며 응원한다. 틀린 답과 낮은 점수를 내는 출연자가 나오면 정작 그의 가족들은 괜찮다고 서로 등을 도닥거리는데, 난 저런 바보가 왜 나왔느냐며 불평 섞인 소리를 하다가 남편한테 놀림을 당하기도 한다. 식사가 끝난 뒤에 이어지는 후반부의 게임은 아예 텔레비전 앞에 가까이 가서 시청한다. 내 소리가 화면 저편 출연자들에게 들릴 수 있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큰 소리를 지르며 먼저 답을 말해 보기도 한다. 혹시 하나라도 맞추면 누가 들어 주지도 않건만 ‘것 봐 것 봐!’ 해가며 우쭐우쭐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라고 해도 이런 프로만 있으면 하루 종일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난 'Family Feud'의 단골 시청자가 되어 버렸다.

그날도 저녁상 위에 널브러져 있는 설거지거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화면에 딱 고정시키고 정신을 차리고 귀를 기울이며 스티브 할비가 묻는 문제를 듣고 있었다.

“100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누구의 말이 가장 옳은가?” 고개를 숙이고 있던 두 팀의 대표 중 한 사람이 버저를 눌렀다. ‘엄마’였다. 진행자가 ‘엄마’를 외쳤다. 벽에 있는 점수 표지판에 엄마가 3위로 표시되었다. 1등 답이 아니므로 상대에게 기회가 갔다. ‘나 자신’ 45명의 인정을 받은 1위였다. 1위의 답을 말한 가족이 게임 진행권을 가져갔다. 한 출연자가 ‘배우자’라고 말했다. 4위였다. 나머지 대답인 2위가 열리지 않았다. 한 사람이 외쳤다. ‘예수님’ 진행자인 스티브 할비도 고개를 약간 끄덕이는 듯했다. 2위의 자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답이 38명의 인정을 받았다는 표시와 함께 열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른손 주먹을 불끈 쥐고 위에서 아래로 급하게 내리면서 ‘예스’를 외침과 동시에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흥분된 목소리로 남편에게 소리쳤다. “미국은 아직 희망이 있어!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예수님 말씀이 옳대!”

남편은 한 차원 높았다. “우리가 기도하여 ‘나 자신’을 모두 ‘예수님’으로 바꾸어 보자! 다섯 중 네 명 어때! 근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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