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서예의 대가 중에 추사 김정희 선생님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학자이며 예술가입니다. 그의 추사체는 그 기이함과 조화로움으로 높이 평가받는 서체입니다. 그가 그린 <세한도> 역시 국보로 지정되어 많은 이들이 관람하는 소중한 유물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들은 그가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을 때에 완성된 것들이라 합니다. 그는 현종 6년인 1840년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제주도로 유배됩니다. 그리고 지금의 서귀포 대정리라고 하는 곳에서 <위치안리>라고 하는 형벌을 받고 9년 동안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이는 집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조치로 지금의 가택연금과 같은 것입니다.

제주도를 방문할 기회가 되어 그의 유적지를 돌아보았습니다. 지금은 세계 7대 자연경관 중 하나로 꼽히고 연간 1천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제주도. 하지만 예전에는 가장 열악한 환경으로 한 번 오면 나가기 힘들었던 유배지였습니다. 55세의 사대부 양반이었던 그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환경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적 탄압과 환경의 열악함 속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비참함으로만 끝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상을 원망하고 포기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학문과 수양에 힘을 쏟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찾아오는 고을의 학생들을 가르치며 인재를 키웠습니다. 그의 추사체는 벼루 열 개를 구멍 내고 붓 천 자루를 닳아 없어지게 하는 고독한 정진 속에서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그는 자신을 기억해 주는 지인들에게 편지로 생각을 나누면서 마음을 달래었습니다. <세한도>는 유배 시절에 변함없이 책을 보내준 제자 이상적의 의리와 절개에 대한 고마움을 담은 그림이라고 합니다. 세한도의 발문에서 그는 공자의 이런 글을 인용했습니다.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 고난 속에서 더욱 빛나고 변치 않는 우정과 신뢰를 노래한 것입니다.

시련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인 듯합니다. 역사는 위대한 인물과 업적의 탄생이 고난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의 유적지와 삶을 돌아보는 동안 사도 바울의 삶이 오버랩되어 떠올랐습니다. 신앙적으로는 어떤 공통점도 찾아볼 수 없는 두 사람의 삶이 중복되어 떠오른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신학적으로 의미 있는 바울의 서신들 상당수는 로마의 감옥에서 작성되었습니다. 기독교 교리의 기초가 되는 그의 편지는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한 변론의 과정과 동역자들에 대한 위로의 과정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의 인격은 시련과 박해 속에서 다듬어졌고, 신앙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저는 추사 김정희와 사도 바울의 삶 속에서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그들 모두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마음을 지켰습니다. 그들의 대적자들은 모든 것을 빼앗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자유마저 박탈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여전히 그들 자신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영혼을 팔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외로움과 억압의 순간에도 가치있는 것에 마음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오는 평강과 만족과 기쁨으로 자신의 불리한 조건들을 이겨내었습니다. 그들에게 고난은 장애물이 아닌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시련은 후회와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 감사와 간증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폭풍 속을 뚫고 달려갈 때도 있지만 비를 피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가 중요합니다. 비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순간,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우산을 쓰고 가는 다른 사람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풍랑이 몰려올 때 어떤 사람은 큰 배를 타고 여전히 앞으로 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부러워하거나 한탄하는 것은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그때에도 우리는 할 일이 있습니다. 지금 자신에게 있는 것, 그러면서도 가장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마음의 평강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은혜의 때가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에 가졌던 진리 안에서의 경험들은 누군가에게 두고두고 도움되는 유산이 될 것입니다. 힘든 상황이겠지만 마음을 지키십시오. 그리고 본질에 마음을 쏟으십시오. 그렇게 오늘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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