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그 종류대로’ 만물을 만드셨다. 식물도 종류대로, 새들이나 물고기도 종류대로, 짐승들도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그래서 식물은 식물의 공통성이 있고, 새들은 새들대로, 물고기는 물고기대로, 짐승은 짐승대로 공통성이 있게 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똑같게 만드시지는 않았다. 나무에도 수많은 종류가 있고 게다가 같은 소나무나 밤나무라도 서로 다르게 만드셨다.

그런 점에서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라는 종류는 실상 공통점이 너무 많다. 먹고, 잠자고, 걸어 다니고, 말하고, 생각하고, 화장실 가고, 평생토록 가족관계를 유지하고, 대체로 일백 년 안에 죽고, 그러면서도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이런 공통성이 있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서로 다르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고, 검둥이 흰둥이 노랑둥이가 다르다. 말도 다르고, 음성도 다르다. 성격도 다르고, 얼굴도 다르고, 키도 다르고, 지문이나 족문도 다르다. 그런데 그처럼 같은 점도 많고 다른 점도 많은 것이 인간 존재인데 그 같음과 다름에 대한 태도는 무척 다르다. 대체로 네 가지가 있다.

첫째로, 다르기 때문에 나쁘다고 생각한다. 피부색이 다르기 때문에 인종차별과 인종혐오범죄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온다. 지역차별이 생긴다. 사회적 갈등이 폭발한다. 전쟁이 생겨나서 자기와 다른 인간들은 싹 쓸어 죽이기도 한다. 집시 60만 명, 아르메니아인 100만 명, 유태인 600만 명이 그래서 잔인한 죽음을 맛보았다. 이삭과 이스마엘은 어머니가 다르다는 것 때문에 몇 천 년 전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둘째로, 다른 것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있다. 다른 것은 사람의 개성과 같은 것이니까 가치평가를 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견해이다. 팔짱을 낀 채 그것 그대로 두고 보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그냥 무난한 입장이다.

셋째로, 다른 것은 좋은 것이라는 태도가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모든 것이 좋은 것이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된다’(딤전 4:4)는 뜻이다. ‘손자삼우 익자삼우’(損者三友 益者三友)는 공자께서 남긴 명언이다. 손해를 끼치는 친구 셋, 유익을 주는 친구가 셋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손해를 끼치는 친구도 반면교사로 삼으면 유익이 된다는 뜻이다. 링컨 대통령처럼 ‘적대자들’(rivals)로 내각을 구성하여 정치군사적 승리를 거둘 수도 있다. 여자와 남자도 다르기 때문에 결혼생활을 즐기고 행복을 만끽한다.

마지막으로, 자신과 다른 점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고 그를 돕기 위하여 살아가는 태도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는 굉장히 다르다. 그런데 ‘가난한 자’를 돕기 위한 부자가 된다. 무지한 자를 돕기 위한 지식층, 검둥이를 돕기 위한 흰둥이, 머슴을 돕기 위하여 사는 지주, 노동자를 돕기 위하여 사업의 고통을 달게 받는 기업가, 백성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스스로 불행해지는 통치자... 그런 사람의 모범이 누구일까. 죄인을 살리기 위하여 스스로 죄인으로 죽으신 그분 아닌가. 죄가 전혀 없으신 분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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