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과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어렸을 때 이웃 동네에 살았고 그녀의 어머니가 내가 다니던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집안 사정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져 보니 알고 지낸 지가 30년이 훨씬 지났더군요. 기쁜 소식이라며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집안의 장남인 그녀의 오빠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마음씨가 좋고 성실한 분입니다. 법 없이도 사는 분이라 할 정도로 매우 상식적이고 진실한 분입니다. 자수성가하여 집안을 일으켰고, 베풀 줄도 아셔서 어려운 사람들이나 고향 마을을 위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하신 분입니다. 다만 먹고 살기에 바쁘다는 이유로, 그리고 스스로의 의가 강해서 신앙생활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기 동생들이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것을 반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칭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교회에 나가다니 제게도 놀랍고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직접적인 동기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친구의 말로는 2년 전 어머니의 임종 자리에서 교회에 나가겠다고 하셨답니다. 고통을 겪으시는 어머니를 위로하고자 평소 교회에 나가라는 말씀대로 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약속을 한 그 날 저녁 어머니가 편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두 분은 교회로 발걸음을 향했습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어 나간 것이니 효심과 진실한 성품이 가장 큰 동기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요즘엔 단순한 교회 출석이 아니라 일대일 제자양육도 받고 순모임에도 출석한다고 하면서 가족 모임에서도 성경과 하나님 이야기만 한다고 했습니다. 너무 많이 변해서 주변 사람들이 놀랄 정도라 하니 친구가 일부러 이야기할 만했습니다.

저 또한 너무 반갑고 기뻤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는 수치심과 죄책감이 몰려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실은 그 집은 저와 사연이 많습니다. 대학원 시절에는 그 집에서 입주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이를 가르쳤습니다. 그 집에서야 아이가 공부한 것을 제가 도와 준 것이지만 실은 제가 받은 도움이 훨씬 컸습니다. 숙식과 학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니까요. 군 복무 시절에도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셨습니다.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에는 학비도 후원해 주셨던 분입니다. 목회를 한 후에는 연락이 뜸했습니다. 미국으로 온 이후엔 관계가 끊어지나보다 했지요.

그러다가 몇 년 전 내가 가르치던 그 아이의 주례를 섰습니다. 과외공부하던 아이의 주례를 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아이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땐 마침 한국 방문중이어서 장례식장에 들러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 오랜 세월 알고 지냈으면서도 정식으로 교회 나가시라고 인도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전도 여행이나 교회에서 새신자 교육할 때와 같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왜 믿어야 하는지를 강력하게 전한 적이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너무 잘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말보다는 삶으로 전해야겠다고 생각해서였을까요? 그보다는 경제적으로 내가 도움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무의식중에 열등감이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전도하면 속으로 ‘너나 잘 살아’라고 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의 전도는 늘 간접적이었습니다. 내가 직접 모시고 교회로 인도한 적이 없습니다. 동생인 내 친구에게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정보를 주거나 부탁을 받으면 그제서야 예배를 집례한 정도였습니다. 내가 잘 되서 훌륭한 목사가 되는 것이 보답이요, 전도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만 한 것이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넌 무엇을 했니?”라고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물론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 속한 것이고 때를 정하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 영혼이 구원을 얻게 되기까지 동생들의 기도와 기다림, 그 어머니의 눈물, 주변의 사람들의 삶과 기도가 분명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 중에 나의 역할도 아주 조금은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믿으며 나를 위로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아시겠지요.

하지만 부끄러운 감정이 들었다는 것은 분명 하나님이 저를 돌아보라고 주신 감정일 것입니다. 제 안의 성령님이 저를 증명하고 계신 것이지요. 분명 저는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한 영혼이 주께 돌아온 것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 일에 나름대로의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 저와 같은 분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 경험을 나눕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