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석촌동 지하 1층 33㎡짜리 월셋집. 지난 2월 26일 오후 8시 30분쯤, 이곳에 살던 세 모녀가 안방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어머니 박씨(61)는 침대 옆 전기장판 위에, 큰딸 김모(36)씨와 작은딸(33)은 평소 사용하던 이불을 깔고 누워 있었다. 경찰이 집안으로 들어가 보니 창문은 청테이프로 막혀 있었는데, 방안에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발견됐다. 침대 머리맡에는 이들과 함께 지냈던 작은 고양이 한 마리도 웅크린 채 숨져 있었다.

이들이 숨진 방 서랍장 위에는 5만 원짜리 지폐 14장이 담긴 흰색 봉투가 놓여 있었다. 겉면에는 검정 사인펜으로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지난 1월부터 50만 원으로 오른 이달치 방세와 가스비 12만5,420원, 전기세, 수도세 등을 합한 돈이었다.
윗글은 중앙일보 최근호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기사를 보고 가슴에 통증을 느끼지 아니한 사람은 없으리라. 옛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지만, 이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에 솟아 오를 구멍이 보이지 않았던가보다. 오죽이나 답답하고 어려웠으면 아직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나이에 그처럼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을까? 하기야 그와 같은 처지와 형편을 당해 보지 않고는 아무도 그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비극적으로 삶을 끝내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 모녀가 신청만 했으면 최소한의 정부 구제는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한 언론의 주장이다. 한국에서 3인 가족의 경우, 벌이가 최저생계비인 133만 원에 못 미치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돼 병원비를 거의 내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기요금, 전화요금, TV 수신료도 할인받을 수 있으며, 전세 보증금 지원 혜택도 있다. 그러나 세 모녀가 이런 복지 혜택을 몰라서 그랬는지 주민센터에 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비극의 원인은 외부와의 단절된 삶이었다. 이웃들도 이들의 딱한 사연을 알지 못했고, 집주인조차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몰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어머니는 60대의 고령이지만 두 딸은 30대의 젊은 나이여서, 자존심 때문에 자신들의 비극적인 삶을 외부에 알리는 것을 꺼려했을 뿐 아니라, 외삼촌이 도와 주겠다는 것을 거절할 정도로 친척들에게까지 자신들의 형편을 숨긴 것으로 드러났다.

절망에 처했을 때, 자신의 형편을 알릴 수 있는 진정한 대상이 필요하다. 이웃이나 친척들에게 사정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죽기보다 싫은 경우도 없지 않다. 자신의 자존심도 자존심이거니와 도움을 요청한다 하더라도 거절당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다르다. “도울 힘이 없는 인생”(시 146:3)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은“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라며 삶의 근본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단지 위로나 격려가 아니다. 기도하면 반드시 체험할 수 있는 일이다. 기도는 허공에 날리는 잡음이 아니다. 기도는 현실이며 실체이다. 지금이냐, 아니면 좀 지체되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도는 전능자와 연결된 생명의 줄이며, 자신의 비극과 절망을 새로운 기회로 전환시키는 유일한 방편이다.

아직은 살아야 할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으나, 그들에게 믿음이 있었던들 이렇게 생을 허망하게 마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삶이 어렵고 지겨워 옛 모세나 욥도 죽음을 호소했으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은 택하지 아니했다. 그들은 생전 혹은 생후 새로운 삶이 있으리라는 믿음과 함께 생명을 창조하신 조물주가 계심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고난과 위기가 주는 고통도 심하거니와 이것이 바로 인생을 연단하고 단련하는 방편임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며, 오히려 인생에 유익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시 1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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