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의 영화, ‘황산벌’을 보신 분이 ‘거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셔서 많이 웃은 적이 있다. 삼국시대 말, 신라에서 백제의 동향을 파악하려고 정탐꾼을 보냈다고 한다. 백제의 참모회의까지 정탐한 그는 소중한 정보를 알아내어 신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풀어지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 ‘거시기’ 라는 단어. 대장이 비장한 표정으로 모여 있던 장수들에게 “우리가 거시기할 때까지! 거시기하자!”고 말하자 모든 군사들이 대단히 중요한 말인 듯 환호를 했다는 것이다. 어렵게 값진 회의의 결과를 알았으나 신라쪽에서는 도대체 ‘거시기’가 무슨 뜻인지 몰라서 연구하였다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싸우자!”라는 결의를 다짐하는 말이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전라도에서는 거시기가 ‘죽을 때’에도 쓰이고 ‘싸우자’로도 쓰일 수가 있느냐는 의문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전라도 사람들과 같이 살다 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나의 부모님은 자녀들을 많이 낳으셨다. 바쁜 엄마는 우리들의 이름을 차분히 부르신 적이 드물었다. 언제나 손과 발을 바쁘게 움직이셨다. 많은 자녀들의 양육과 집안 살림, 어디 그뿐인가 농사일까지 도맡아 하셨기에 쉴 틈이 없으셨다. “내 몸이 두세 개쯤 되었으면 좋겠다.”하고 말씀하시는 것을 수없이 들었다.

항상 그런 생활이라 이름을 부르실 땐 곧잘 “거시가!”하셨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를 부르는 것인지 알아차리고 곧 대답했다. 형제자매중 한 사람이 거시기였고 모두의 이름 또한 거시기였다.

어느 날 저녁 무렵, 어머니께서 마당에 콩이 널려 있는 멍석에서 손으로 콩을 모으시며 “거시가! 거시기 헐랑게 거시기네 지비 가서 거시기를 가져오니라!!”하고 말씀하셨다. 열 살 되기 전의 꼬맹이였던 난, 들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 아무도 없는 옆집의 헛간으로 뛰어가서 고무래를 갖다 드렸다. 혹자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하고 의아하겠지만 ‘거시기’라는 단어는 꼭 집어서 설명되는 말이 아니요. 같이 산 사람만이 처지와 상황에 따라 재치로 이해했던 우리 모두의 언어였던 것이다. 그때 엄마 옆에는 내가 있었으니 ‘거시가!’는 나를 부르시는 말이요. ‘거시기 헐랑게’는 해가 지니 콩을 담아야겠다는 뜻이요. ‘거시기네 지비’는 우리 고무래를 빌려갔던 옆집이며, 마지막의 ‘거시기’는 바로 어머니께서 당장 필요로 하시는 고무래였던 것이다. 어머니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마음과 내 마음이 일치했기에 가능했다.

지금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겠지만 아무도 없는 남의 집에서 꼬맹이가 연장을 들고 나올 수 있었다. 그땐 그랬다. 그리할 수 있었던 것은, 각 가정이 작은 가족이요, 온 동네가 큰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문 밖을 나가면 모두가 아저씨, 아줌마였으며. 집집마다 특별한 일만 없으면 문이 항상 열려 있었다.
옆집의 연장은 우리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웬만한 것은 돌려가며 썼고, 혹 그 댁에 아무도 없어도 헛간에 있는 것을 들고 와서 쓰고 돌려 주면 되었다. 쉬고 있었던 연장을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때 가져다 썼으니 모두가 괜찮았다.

열어 놓고 한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어느 집의 경사는 온 동네의 경사였고, 슬픈 일 또한 온 동네가 함께했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모두가 서로를 위하여 있었고 서로의 사정들을 훤하게 알고 있으니 자연 마음속까지 이해하기가 쉬웠다.

엄마가 부엌에서 “거시가!”하시면 난 금방 알아챘다. 아궁이에 불을 때 줄 사람이 필요하시구나. “응. 엄마!” 하며 바로 달려 나갔다. 늦가을, 붉은 감들로 가지들이 휘어진 감나무 아래서 “거시가!”하실 때는 셋째 오빠가 대답하고 나갔다. 물을 담기 위한 통을 드시고 “거시가”하실 때는 바로 내 밑의 동생 차례였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렸다. 엄마의 “거시가” 소리가 들렸다. 불당번인 다섯째 동생. 그을음이 낀 유리를 열심히 닦고 등마다 기름을 채워 불을 밝히라는 뜻이었다. 새참거리를 머리에 이시고 부르실 때는 막내였다. 물 주전자를 들어 줄 손이 필요하셨다.

저녁 먹은 시간이 언제였던가 까마득히 여겨지는 야심한 밤, 우리들은 집안의 이곳저곳에서 내일 가져갈 숙제를 하느라 등불 밑에서 고심하고 있었다.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그쳤다. 긴 여름의 하루를 끝내신 어머니가 드디어 휴식을 취하실 시간이었다. 모깃불이 피워진 마당의 멍석 위에 삶은 감자와 옥수수를 담은 바구니를 올려 놓고 어머니께서 큰 목소리로 “거시가~~”를 느리고 정답게 부르시면, 피곤했던 우리들은 얼굴에 미소를 담고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거시가’는 바로 우리의 이름이었다.

주 예수님을 중심으로 세워진 공동체인 교회가 고향의 그런 옛 모습을 닮았으면 참 좋겠다.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한 몸짓을 보이면, 곧바로 그 마음을 읽고 달려 나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성도, 나 자신도 바로 그 한 성도가 되는 그런 공동체 말이다.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하나님께서 그 일을 맡기시려고 나를 부르실 때, 주님의 마음을 곧 알아내고 도움이 필요한 그곳에 있을 수 있는 성도가 되고 싶다.

음성을 듣지도 못하지만 부르심을 들어도 정확한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엉뚱하게 허방을 짚는 성도가 아니라,“거시가!”부르시면 나를 부르시는 줄 알고, 거시기 가져오너라 하시면 원하시는 것 금방 가져다 드리면서,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헤아려 드리는 지혜와 재치를 기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주님과 함께 살아야겠다. 마음을 몽땅 주님께 드리며 뜻을 알아낼 수 있게 말씀 묵상과 기도 생활을 깊이 있게 해야겠다. 단단히 결심을 해보지만 또 실패할 것을 안다. 비록 돌아서면 결심을 잊고 실패한다 할지라도 실패하는 그 순간까지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보자고 다짐해 본다.

아니다. “내도! 거시기할 때 까지! 거시기할 것이다!”라고 바꾸어 외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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