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린구유 지하도시 단면도
터키와 그리스 땅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인상적인 곳이 많았지만 특히 세 개의 장소가 기억에 남습니다. 하나는 터키 중부 갑바도기아 지역의 데린구유라고 하는 지하 도시입니다. “깊은 우물”이라는 뜻의 지하 공간은 총 깊이가 55m에 달하고 8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최대 3만 명까지도 수용이 가능한 공간이라고 하니,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입니다. 전체의 10% 정도만 관광객들이 가볼 수 있다고 합니다. 좁은 통로를 따라 내려가면 생활 공간과 함께 학교, 우물, 교회, 묘지 등의 터가 남아 있습니다. 대체 왜 이런 지하에 사람들이 살았을까요? 지상에서의 삶을 피하여 지하로 내려왔던 이유는 1세기 로마시대에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괴뢰메
또 한 곳은 같은 지역에 있는 괴뢰메라고 하는 곳입니다. 솟아오른 암벽에 동굴이 뚤려 있었는데 그 안에는 성화로 가득한 교회의 유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동굴교회들은 4세기 이후 기독교가 공인된 후에 형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데린구유의 지하 도시와는 다릅니다. 데린구유가 박해를 피해 모인 공동체의 공간이라면 괴뢰메의 동굴교회는 기독교 공인 이후 세속화되어가는 기독교의 모습을 보고 신앙의 순수성과 경건의 삶을 위해 모인 공동체의 공간입니다. 프레스코 기법으로 동굴 벽면에 새겨진 성화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절대자에 대한 궁극의 관심과 경외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성과 기술이 놀랍기만 합니다.

                                            메티오라의 수도원
이제 나라를 이동하여 그리스의 중부 지역에 가면 '메테오라' 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하늘에 달린”이란 뜻의 이 마을을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솟아오른 바위산 꼭대기에 그림같이 지어져 있는 수도원을 보기 위함입니다. 11세기, 이슬람의 침입으로 인해 박해가 시작되자 그리스 정교회의 신자들은 이를 피해 바위 꼭대기에 수도원을 세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섬처럼 솟아오른 바위 위에 어떻게 저런 건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삶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도르래와 밧줄을 이용하여 건축자재들을 끌어올려 지었다고 합니다. 단순함과 절제의 생활 습관으로 에너지 손실을 막고 기도와 말씀 연구에만 집중하며 세속에 대한 관심을 끊고 살았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신앙의 힘에 대해 놀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앙의 대상인 진리의 힘에 대해 놀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저렇게 살 수 있을까?’

모든 인간 안에는 종교성이 있다지요? 그래서 나름대로의 신심에 따라 절대자에 대한 신뢰와 사랑, 예배의 마음을 그림으로, 조각으로, 수행으로 표현합니다. 때로는 그 때문에 모든 것(가정, 재산, 관계, 편리함)을 잃기도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지요. 왜냐하면 "Only God"의 믿음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대상이 주는, 하늘로부터 말미암은 평화와 소망, 기쁨과 사랑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우리는 가진 것이 너무 많고 더하여 갖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심지어 이제는 ‘신’이 아니라 ‘신 들’을 섬기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진짜는 하나만으로 충분합니다. 완전하니까요. 지금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한 분이면 족합니다. 그분은 완전하니까요. 갑바도기아의 사람들이나 메테오라의 수도사들은 그렇게 믿고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삶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하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분명 그들의 삶은 무의미하지 않았습니다. 1천여 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가 일부러 그 흔적지를 찾아가면서 영감을 얻고 자신을 돌아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한 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분만으로 충분합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이 지금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이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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