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은 씨 뿌리는 사람과 씨를 말리려는 사람들의 투쟁사이다. 씨는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였다. 조금 더 풀면, “예수님은 구원주이시다”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결사적으로 복음의 씨를 뿌렸고, 그 반대파들은 또 무슨 짓을 해서라도 복음의 씨를 말리려고 죽기 살기로 나섰다.

제자들을 감옥에 가두었다.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였다.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야고보를 처형했다. 그래도 별다른 저항이 없게 되자 이번에는 수석제자인 베드로를 투옥시켜 꽁꽁 묶어 두었다. 베드로만 죽이면 예수쟁이들의 기세를 결정적으로 꺾어 놓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래서 베드로의 손과 발을 쇠사슬로 묶어 놓았다. 보초를 네 명씩 네 팀으로 조직해서 물샐틈없는 완벽작전을 펼쳤다. 게다가 세 개의 문을 통과해야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감옥 속의 감옥에 처박았다. 그것도 모두 철문이었다. 이미 제자들이 한 번 감쪽같이 탈옥했던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행여 베드로가 탈옥하게 되면 그 보초 열여섯 명은 베드로 대신 목이 잘릴 것이라고 엄명을 했을 터였다.

베드로는 거기에서 무엇을 했을까. 우선 기도했을 것이다. 그처럼 꽁꽁 묶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입으로 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예수님께서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이 세상에 왔다고 하셨으니까 일루의 희망을 걸 만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세례자 요한처럼 갑자기 목이 잘릴 것도 각오했으리라. 이미 주님께서 베드로가 순교할 것을 예언하셨기 때문이다.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베드로가 감옥에서 살아 나간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절대로 불가능한 것을 절대로 가능하게 한 일이 ‘홀연히’ 생겨났다. 천사가 나타나 베드로를 깨웠다. 쇠사슬이 손과 발에서 벗겨졌다. 옷을 입고 천사를 따라가니 파수꾼이 서 있는 두 문을 무사통과했고, 시내로 빠지는 마지막 문을 거쳐 극적으로 석방되었다.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행 12:10)는 기록을 보면 하나님께서 자동문을 베드로 앞에 선물하신 것 아닌가.

기록자는 그 문이 저절로 열렸다고 했지만 그 속뜻은 물론 하나님께서 열어 주셨다는 것을 누가 모르랴.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는 문 이야기가 꽤 많다. 좁은 문/넓은 문이 대표적이다. 그분 자신이 목수로서 문 고치는 일을 많이 하셨던 까닭일까.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심지어, ‘나는 양의 문이라’ (요 10:7)고 밝히셨다. 양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자동문’이시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출 3:14)이시므로 결국 예수님은 자동문이 되시지 않는가.

“<로고스선교회, 크리스찬저널, 기독의료상조회, 라모나 쉼터>가 좋은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선물로 주신 자동문임을 감사드립니다.”

로고스선교회 남가주지회 사무실 개소 감사예배의 설교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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