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자 헌신예배를 드릴 때였다. 무슨 직분이든지 ‘예수님처럼’ 헌신해야 한다는 주제로 설교했다. 설교의 효과를 드높이려는 뜻에서 해당 직분자들이 일어나게 한 뒤 이렇게 복창시켰다.

“교회학교 교사님들은 저를 따라 하세요. ‘예수 선생님-.’ 이번에는 집사님 차례입니다. ‘예수 집사님-.’ ‘예수 권사님-.’ ‘예수 장로님-.” 말할 것도 없이 그 다음에는 “예수 목사님-”

그래서 참석자 모두가 우렁찬 함성을 질렀고 예수님을 더 닮겠다는 효과가 매우 좋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성경 본문조차 잊었지만 ‘예수 집사님’ ‘예수 권사님’은 갈수록 새롭다고 했다.

그런데 어떤 집사께서 이런 의견을 냈다. ‘예수 목사님’은 ‘예수 목자님’으로 고쳐야 좋겠다는 제안이다. 한국말 성경에 예수님은 스스로를 목자(牧者)라고 하셨지 목사(牧師)’라고 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요 10:11). 그 말을 듣고 매우 부끄러웠다. 예수님은 자신을 목양하는 ‘놈’이라고 하셨는데 우리들은 목양하는 ‘스승’이라고 자칭하지 않았는가. 차라리 우리들은 목자라 하고 예수님에게만 목사라고 해야 될 것 아닌가. 목사들이 모두 교만 죄에 사로잡힌 셈이 되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박사학위를 좋아한다는 것은 성경번역만 보아도 증명된다. <개역 성경>에는 26회가 나온다. 그 중의 두 번은 ‘박사장’이라고 했고, ‘동방박사’가 우리 귀에 가장 익숙하다. 지금 미국에 있는 신학대학원들에는 백인 다음으로 한국 학생이 가장 많은데 특히 박사과정에서 더 뚜렷하다. 바람직한 일이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 아무튼 영어 성경에는 박사라는 말이 별로 없는데 유독 한국과 중국 성경에만 박사가 흔한 셈이다.

“그래 그런가 봐요. 예수님은 목양하는 머슴이시라서 아무런 학위가 필요 없으시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목양하는 스승이시니까 그처럼 많은 학위가 필요하겠지요.”

그러는 신자들도 있었다.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까 누가 감히 하나님께 박사학위를 수여해 드릴 수 있겠어요. 그래 그런 것이지요.”

박사학위를 취득하느라고 고생 고생했던 나, 지금도 신학대학원의 박사학위 논문지도교수로도 사역하고 있는 나이기에 그런 말로 자신을 옹호했다. 그러나 마음은 무척 아렸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가 갑자기 이런 음성이 들렸다.

“예수님도 학위 모자를 쓰신 사실을 모르느냐?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데 그 가시관이 바로 예수님의 학위 모자란다. 학사, 석사, 박사 학위 모자 말이다.”

이 말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하, 그렇구나. 그렇다면 진짜 학위 모자는 예수님만이 쓰신 것이구나.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쓰셨던 그 피범벅 박사학위…….그래서 더욱 목청 높여 불러 본다.

“예수 박사님, 저희들의 학위도 가시관이 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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