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on Spirituality 18- 주기도문 9

오늘은 주기도문의 마지막 시간으로 예수님의 기도에 덧붙여진 송영을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흔히 암송하는 주기도문의 송영은 이렇습니다.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송영은 세 가지의 무겁고 중요한 단어들을 이어서 이야기합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라는 단어들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결국은 하나님께 영원히 속한다고 우리는 찬양하며 주기도문을 마칩니다.

나라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송영의 첫 번째는 “나라는 영원히 하나님의 것입니다”라는 기도입니다. ‘나라’의 핵심은 다스림입니다. 우리는 이미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내 삶에 나타나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나라가 영원히 하나님의 것”이라는 주기도문의 첫 번째 송영은 다시 한 번 내가 어디에 속한 것인지를 확인하는 고백입니다. 내가 나를 다스리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나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리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을 찬양으로 고백하며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굉장한 고백을 담은 송영이지요. 

“나라는 영원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고 찬양하는 순간, 우리는 내가 잘못 붙잡고 있는 나라들을 또한 포기하겠다고 결단합니다. 나를 다스리고 있는 잘못된 것들을 포기하고, 내가 주인 삼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를 다스리는 분은 영원히 하나님 한 분입니다” 라고 고백하며 나아가는 순간이 바로 “나라는 영원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고 이야기하는 순간입니다. 이것은 또한 사회적인 차원으로까지 확대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세상의 나라가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충돌하는 모습으로 나아갈 때에 우리는 이 고백을 드립니다. “나라는 영원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것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세상 속에 온전히 드러나도록 기도하며, 행동하며, 복음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며 나아가게 됩니다.

권세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기도문교회의 한글 주기도문
계속해서 우리는 “권세가 영원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고 고백합니다. ‘권세’라는 말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 ‘권능’이라는 뜻입니다. 힘과 능력이라는 뜻이지요. 권세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뒤나미스’입니다. 이 말에서 ‘다이너마이트’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폭발물인 다이너마이트처럼 권능은 우리가 막을 수 없도록 터져 나오는 힘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터져 나오는 힘과 권능을 찬양하는 구절이 바로 “권세가 영원히 하나님의 것입니다”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우리의 삶에 나타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이 터져 나오는 은혜를 경험합니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우리의 삶과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그때에 비로소 회복과 치유가 일어납니다. 지난 회에는 시험과 악의 문제를 묵상하면서, 우리가 시험에서 이겨낼 수 있는 비결은 시험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삶의 문제 속에서, 도무지 앞을 볼 수 없는 답답한 상황 속에서, 어찌할 수 없는 유혹과 시험 속에서 우리가 눈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터져 나오는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를 붙잡아 주고, 회복시키고, 치유해 줍니다. 이것이 회복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권세는 영원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것을 기도하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이 내 삶에 능력으로 나타나서, 그 안에 있는 기쁨과 회복을 경험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영광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송영에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기도합니다. “영광은 영원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기도문을 마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이 당연한 기도를 우리는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영광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영광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고백을 정리해 주는 요리문답에서 첫 번째 질문으로 이것을 묻습니다. “사람의 첫째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 대답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온전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인생의 의미와 목적은 이 단순한 사실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43:21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주기도문의 마지막 송영은 이것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영광은 영원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결단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순간입니다.

이 기도를 드렸던 주님은 결국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쫓아갔던 주님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을 본받고,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진심으로 드리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위하여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짐을 감당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김영봉 목사님이 말하듯이 주기도문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기도”입니다. “내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게 하소서.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소서.” 이것을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뜻과 자신의 영광을 포기하는 십자가를 짊어지게 됩니다.

아멘

주기도문이 이렇게 위험한 기도이기 때문에 주기도문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주님의 이 말씀으로부터 피해 보려고 하고, 숨어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 주기도문의 송영에서 우리는 중요한 한 단어를 마지막으로 묵상하게 됩니다. ‘아멘’이라는 단어입니다. 위험한 기도, 주기도문을 묵상하고 기도한 우리는 숨어 버리고 싶고 도망가고 싶지만, 우리는 이 기도를 ‘아멘’으로 마칩니다. 아멘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 그렇습니다”라는 동의의 의미입니다. 다른 하나는 단순한 동의를 넘어서서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는 의미입니다. 주기도문을 마치면서 ‘아멘’이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우리는 ‘내가 이 주기도문을 삶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라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멘’은 주기도문의 끝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작입니다. 이 주기도문을 아멘으로 마치는 것은 내가 삶에서 주기도문을 살아내겠다는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기도문의 송영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모두가 찬양대와 같은 자리에 앉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기도인 주기도문을 드리면서, 우리는 주기도문을 통해 하나님께 올려 드린 모든 기도, 모든 도전과 은혜에 감사와 결단을 담아 이 마지막 송영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 송영은 우리가 함께 올려 드리는 찬송입니다. 그 어떠한 찬양곡보다 더 웅장하고 고귀한 찬송입니다. 주기도문의 이 아멘이 한 목소리로 터져 나오는 순간, 이것은 공동체가 함께 올려 드리는 찬양의 함성이고, 주님이 가르쳐 준 위대한 기도의 절정의 순간입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