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후배 사역자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미국으로 교회 사역을 하기 위해 온 지 몇 년 되었을 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그때 그 형제는 교회의 행정을 돕는 직원 신분이었습니다. 지금은 신대원 과정 수료를 앞두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덥고 건조한 여름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집 앞의 잔디마저 누렇게 타들어가던 어느 날 근처의 산에 갔다가 말라 비틀어진 나무 한 그루를 보았습니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한참을 바라보았답니다. 황량한 산자락에서 거의 다 죽은 듯한 나무가 마치 자신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나무야. 나무야. 너는 왜 하필이면 거기 서 있어서 이렇게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니?” 당시 그는 환경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불만과 불평으로 하루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기대와는 달리 전개되는 미국에서의 상황들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좌절감에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 자신의 마음 때문에 홀로 힘들게 서있는 나무를 보면서 연민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래서 뭔가 위로라도 받고 싶은 심정으로 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나무는 말이 없었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는 자기가 묻고 있는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말 못하는 나무라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현실 감각이 돌아오자 그는 그곳을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계절이 바뀌어 겨울철 우기가 되었습니다. 같은 장소를 다시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때도 역시 그 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달라진 것이 있었다면 여름과는 달리 잎이 무성한 채 푸르름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너는 참 훌륭하구나. 나도 모르는 삶의 비밀을 너는 알고 있구나. 환경을 원망하며 삶을 포기하려고까지 했던 내가 참 부끄럽구나.” 그때의 묵상과 깨달음은 이후 형제의 삶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인생의 나무가 타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성장은 고사하고 생존조차 힘들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떠나고 가까이 있는 사람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옵니다. 외형을 보고 판단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제 너의 시대는 끝났다! 이젠 재기하기 힘들 거야!”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죽었다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에 대해서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모소 대나무’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중국의 극동 지방에 사는 희귀종 가운데 하나인 모소 대나무늬 씨앗을 뿌리면 4년 동안 겨우 3cm 정도 자란다고 합니다. 농부가 정성껏 돌보고 물을 주어도 그 정도밖에는 자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5년째가 되면 하루에 무려 30cm 넘게 자라 6주만에 15m 이상의 높이가 된다고 합니다. 폭발적인 성장의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요? 놀랍게도 더디고 더딘 4년의 시간 속에 있다고 합니다. 모소 대나무는 4년 동안 땅속 수백 제곱미터의 공간 속에 뿌리를 뻗친답니다. 운동선수에게는 기초 체력을 다지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잔뿌리를 통해 땅 속 깊은 곳에서 제공되는 수분과 영양소들을 공급받으며 폭발적인 성장을 하는 것입니다.

뿌리의 중요성을 잘 알고 계시지요? 눈에 보이지 않은 공간 속에 본질적인 것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때가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은혜의 때가 있고 심판의 때가 있습니다. 씨를 뿌릴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습니다. 형통할 때에는 찬양하고 곤고한 날에는 기도하라고 교훈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둘 다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가물면 대지의 표면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집니다. 하지만 땅속 깊은 곳의 암반에는 물이 고여 있습니다. 우리 삶의 뿌리는 그 깊은 웅덩이와 암석에서 솟아나는 샘물에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은혜의 풍성함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에게 건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겉이 타들어가 곧 죽을 것 같은 나무에게서 영적인 교훈을 배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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