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연휴가 끝나자마자 예상치 못했던 동장군의 출현이다. 이 지역은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신년 초까지에 가장 추운 겨울이 엄습하곤 했는데 금년에는 한 달 가량 빨리 추위가 밀려왔다. 지구의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돌발 상황인지 모르겠다. 우리의 앞날을 알 수 없듯이 말이다.

아내가 15년 전부터 1~2년에 한 차례 타국에 나가서 5-6주간씩 선교를 하고 온다. 얼마 전 현지인 목사님 부부가 미국에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미국에 오고 싶은데 아는 사람이라고는 우리밖에 없다고 하신다. 지금은 겨울철이라 구경할 곳도 별로 없고 좋지 않으니 여름에 오시라는 아내의 말에 통역할 수 있는 분을 포함하여 여러 명의 일행이 비자 신청을 했는데 목사님 부부만 비자가 나왔다고 한다. 어렵사리 비자를 주었는데 안 가면 다음에 비자를 주지 않을까봐 잠시라도 다녀와야 한다고 하신다. 아내가 현지에서 활동할 때 많은 도움을 주시는 분이라서 기꺼이 오시라고 했다. 아내는 집을 대청소하고 이부자리를 세탁하고 손님 맞을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손님 접대하기를 좋아하는 나까지 덩달아 마음이 바쁘고 설레었다.

손님이 오시는 것은 좋은데 걱정거리가 생겼다. 오시는 손님이 영어나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분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 나라 말을 전혀 못하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내가 그곳에 가서 사역을 할 때에는 통역하는 사람과 동행했기 때문에 그곳 언어를 전혀 못했다. 궁즉통(궁하면 통하게 되어 있다) 이라는 말이 있듯이 걱정하며 친구 장로님과 상의를 했더니 스마트폰에 있는 자동번역 시스템을 이용해 보라고 했다. 부리나케 배우고 연습을 하고 손님을 맞았다.

나는 가게를 보고 있고 아내가 혼자서 왕복 여섯 시간 정도 운전하고 공항에 가서 모시고 왔다. 반가운 마음에 "안녕하세요?" 하고 손을 내미니 목사님은 어설프게 내 손을 잡았다. 사모님께도 똑같이 인사하며 손을 내미니까 마지못해 어색하게 손을 잡았다. 잠시 후 스마트폰을 가지고 대화가 시작되었다. '미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잘 오셨습니다. 마음 편히 쉬다 가세요.'라고 찍어서 보여 주니 "어 어" 했다. 손님도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니 오죽 답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같은 동양권이라서 한국 음식을 잘 잡수셔서 한결 마음이 놓였다.

다음날 Rainier 산으로 갔다가 페리를 타고 시애틀 야경을 구경시켜 드리고, 시애틀에 살고 있는 아들집에서 삼겹살 파티를 하고 나니, 다음날과 다음다음날에 덴버에 다녀오고 싶다고 했다. 갑자기 표를 구입하려하니 얼마나 비싼지 몰랐다. 이 모든 말을 덴버에 있는 손님의 미국 친구분에게 전화하여 양쪽 언어를 할 수 있는 그분의 통역을 통하여 대화했다. 급하게 저렴한 표를 구하려고 한 번 갈아타는 표를 샀다는 말에 손님들의 얼굴에 짙은 근심의 그늘이 밀려들었다. 며느리 도움을 받아 영어로 “나는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는데 영어를 할 줄 모릅니다. oo시 oo편 덴버행 델타항공 비행기 타는 곳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라는 안내문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목사님은 답답하면 중국의 조선족 통역사에게 전화를 하여 의사소통을 하기도 했다.

공항에서 상황 설명을 하며 도움을 요청하니 안내자 티켓을 내주었다. 아내가 데리고 들어가서 여러 사람을 수소문하여 다음 갈아타는 곳에서 안내해 줄 사람을 찾아 부탁하고 나왔다. 역시 미국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고 친절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덴버에서 돌아오는 날 아내는 식사 준비를 하고 내가 공항에 마중을 나갔다. 안 보이는 아내를 찾더니 “선교사님 식사?” 라면서 아내는 식사 준비를 하느라고 못 나왔느냐고 했다. 아내가 잠시만 안 보여도 찾는 것은 오래 전부터 현지에서 사역며 정든 탓인가 보았다. 집에 와서는 아내를 사모님이 포옹하면서 너무나 좋아하셨다. 그곳에서는 양식만 대접 받았나보았다. “미국 밥 노. 한국 밥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아내가 만든 맛있는 계란찜, 내가 만든 ,돼지갈비 넣고 끓인 김치찌개를 너무 좋아하셨고, 티본 스테이크가 등장하니 사진까지 찍었다.

8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 사모님과 아내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장거리 운전을 부담스러워하는 아내는 가게를 보고 내가 공항에 모시고 가기로 했다. 비가 사정없이 창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험한 날씨에 아무 말 없이 30여 분을 달리는데 너무나 어색했다. 내가 운전을 하지 않으면 전화기를 이용해서라도 대화를 해보겠는데 말이다.

여러 가지 궁리 끝에 혼자 한국말로 나지막이 찬양을 불렀으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내가 하는 찬양을 이분이 모르시는가보다 하고 다른 찬양을 하려고 하는데 목사님께서 나지막이 방금 내가 부른 찬양을 하셨다. 때는 이때다 싶어 같이 찬양을 신나게 하다 보니 얼마나 분위기가 좋아졌는지 모른다. 한 번 문이 열리고 나니 번갈아가면서 선창을 하면 같이 따라하며 한참 분위기 좋게 달리고 있는데 고속도로 오르막길에서 차의 속도가 늦어졌다. 아무리 액셀레이터를 밟아도 소용이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확인하니 기름이 떨어져서 차의 시동이 꺼져간 것이다.

너무 긴장을 하고 손님을 모시다보니 기름 넣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다음 출구까지는 3~4 마일을 더 가야 했다. 이 빗속을 뚫고 몇 시간을 걸어가서 가솔린을 사올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웬일인가 하고 나를 바라보는 목사님 부부에게 재빨리 스마트폰을 통하여 “큰일 났습니다. 기름 넣는 것을 잊어서 차가 멈춰 섰습니다.” 했더니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비행기 시간에 맞춰서 가야 하는데 "하나님 도와 주세요."라고 기도하며 911을 돌렸다. "지금 긴급 상황입니다. 나를 좀 도와 주세요" 라고 말했더니, 내가 있는 곳을 묻고 가까이에 있는 경찰을 연결시켜 주었다. 잠시 후에 경찰이 도착하여 상황을 물었다.

경찰의 도움으로 기름을 사가지고 와서 일을 수습하고 나서 다시 문자로 손님들에게 설명했다. 하나님께서 경찰을 통하여 당신들을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셨다고 하니 그제야 굳었던 얼굴이 밝아졌다.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야 하는데,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위기상황이었다. 어려운 손님 앞에서 얼마나 긴장을 했으면 이게 무슨 망신인가? 너무나 창피했다.

미국의 경찰은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절망의 늪에 빠진 우리를 건져 주었다. 고속도로 곁이 위험하니 차에 들어가 있으라고 하고, 사온 가솔린을 자기가 넣어 주는 친절까지 베푸는 것을 본 손님이 많은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우리들은 불과 30여 분만에 해결해 주신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저절로 찬양이 터져 나왔다.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 시다” 자기가 아는 유일한 한국말 찬양이라 하시며 선창을 하셨다. 우리는 목청이 터져라 함께 기쁨과 감사의 찬양을 하면서 절망의 파도를 타고 온 행복에 더욱 감사하며 감격했다.

정성을 다하여 보살펴드리고 나니 진정은 통했는지 감사함과 미안한 마음이 드는가보았다. 더듬더듬 “장로님 중국 와라” 하셨다. 중국에 오면 신세진 것을 갚겠다는 말인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렇게 어색해 하던 그들이 떠날 때는 나에게 포옹을 하면서 고마워했다. 미리 서두른 덕분에 천당과 지옥을 넘나드는 난리를 치고도 출발 2시간 전에 도착하여 출국 수속을 마쳤다. 항공사에 상황 설명을 하고 도움을 청하니 장애인을 돕는 사람 한 명을 붙여 주었다. 도우미와 보안 검사대를 빠져나가면서 손을 흔들며 목사님이 말했다. 

“장로님 집에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