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스터
지난해 한국의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된 한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은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호했습니다. 이 영화는 금년 1월,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개봉되었습니다. 최고의 리리코 스핀토라 불렸던 배재철 성악가의 삶을 그린 ‘더 테너’(Lirico Spinto)라는 제목의 영화입니다. 리리코 스핀토는 서정적인 섬세함과 심장을 관통하는 듯, 힘 있는 목소리를 모두 지닌 테너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칭호입니다. 영화 '더 테너'는 절망한 사람이 다시 희망을 품고 일어서기까지의 감동적인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배재철은 한양대 음대와 이탈리아 베르디 국립음악원을 수석 졸업한 뒤 유럽 각지의 유수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듭하며 데뷔했으며, 유럽 각지에서 오페라 주역을 맡아 성악가로서 한참 잘 나갔습니다. 그렇게 성공가도를 걸으면서 차기작 오델로를 준비하던 중에 목에 이상이 생겨 갑작스레 병원에 실려 가고 갑상선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2005년, 갑상선암 수술을 받던 중에 성대와 연결된 오른쪽 신경과 오른쪽 횡격막 신경이 떨어져 나가 오른쪽 성대가 마비되었습니다. 의사는 “더 이상 노래를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의사의 한 마디는 천재 성악가에게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계약들은 파기되었고, 모든 것을 잃은 것만 같았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진 그는 병상에 누워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았습니다. 교회 찬양대에서 찬양하고 주님을 섬기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순수하던 그때가 참 좋았는데, 성악가로서 인기를 얻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 동안 하나님과 교회를 멀리했던 자신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엎드려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찬양대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 데서 온 고난임을 깨닫고 철저하게 회개하면서, 하나님께서 다시 고쳐 주시면 그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2006년 4월, 그를 아끼던 일본인 매니저와 일본 팬들의 도움을 받아서 성대 복원 수술을 했습니다. 그는 “목소리를 되찾는다면 맨처음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소원대로 수술이 끝나자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영화 시사회에 참석한 배재철 성악가
드디어 목소리가 회복된 것입니다. 그 후 2년 동안 피눈물 나는 재활 훈련 끝에 무대에 복귀했으며, 수술 및 재활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일본 NHK 방송을 타고 전파되면서 많은 일본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예수 믿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가장 잘 아는 일본인 매니저 와지마 토타로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라면 저도 믿겠습니다. 당신이 성악가로서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나는 보았고 느꼈습니다!”

또 배재철 성악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목소리’라는 달란트를 주시고 저를 성악가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이름만을 높이는 활동을 해왔고, 한순간에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너에게 목소리를 준 것은 내가 찬양을 받기 위함이다’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믿음’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이 ‘노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얘기했을 때, 저는 절망하면서도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렸습니다.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계획해 놓으신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희망과 위로를 주는 일로 남은 인생을 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눈에 보이는 현실이 참담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온전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나아갑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됩니다. 이 ‘실상’이란 말은 희랍어로 ‘휘포스타시스’라고 하며, ‘아래에서 받쳐 주다’라는 뜻입니다. 건물의 기초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바로 그 기초요 근거입니다. 다시 말해 믿음은 희망의 기초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미지의 땅으로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아브라함은 미지의 땅에 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 떠났습니다.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무모할 만큼 담대한 아브라함의 행동, 그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삭을 드릴 수 있었고, 그 믿음을 사도 바울은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게 합니다.

또 믿음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에서 ‘증거’란 희랍어 ‘엘렉코스’로서 ‘확신’을 뜻합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내적인 확신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홍수 심판이 내려서 진노가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노아는 아무런 징조도 볼 수 없었습니다. 노아의 눈에는 비가 올 징조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방주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방주를 지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눈으로 보아야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고 하지 않고, 믿는 것이 보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으면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 5:7)고 말했습니다. 신앙의 행진이란 믿음으로 걷는 것이지 보는 것에 의하여 걷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보는 것에만 의지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믿음장 마지막 부분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히 10:38)고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문제를 해결하실 때마다 “너희 믿음대로 되리라”는 대단히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합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두어야 객관성을 가집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지금도 우리들은 사는 게 참 힘들다고 자주 푸념합니다. 처한 환경 때문에 도무지 헤쳐 나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유독 나만 힘들게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믿음이 있는 자와 함께하시고 역사하시며 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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