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에는 어릴 적에 화장실 공포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 흔했다.  겁이 많은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밤에 자다가 일을 보러 가려면 진땀이 났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에게 집의 구조를 이야기하면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화장실과 사돈은 멀어야 한다.’는 속담을 따르기라도 했는지, 시골집들의 화장실은 한결같이 안채와는 상당한 거리를 둔 마당 끝에 있기가 일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수세식 화장실들과는 달리,  냄새와 위생 등의 문제 때문에 생활 공간과 멀어야만 했을 것이다.

어둡고 깊은 밤에 마당을 가로질러 가야 하는 화장실을 배경으로 얼마나 많은 무서운 이야기들이 있었던가! 여럿이 방에 앉아 이야기를 들어도 손에 땀을 쥐게 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하물며 고요한 밤에 화장실에 혼자 앉아 있노라면 바람 소리, 쥐 기어가는 소리들조차 무서운 이야기를 떠올리기에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밤에 화장실 가는 일만은 만들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어쩌다 배탈이라도 날 때면 화장실 문지기가 필요했던 나는 곤히 자는 누군가를 깨워야했고, 귀찮아서 일어나기 싫어하면 할 수 없이 아버지께 부탁을 해야 했다. 늦은 밤 아버지께서는 마루 끝에 앉으셔서 가끔 내 이름을 불러 주시기도 하고 큰 기침으로 ‘너를 보호하고 있느니라!’ 하는 신호를 보내시기도 했다.

아버지께 부탁 드리기가 민망해지기 시작했던 시기에 일곱 자매가 있는 친구 집에 놀러가게 되었다. 자고와도 된다는 엄마의 특별한 허락이 있었다. 위로 두 언니는 집을 떠나 있었지만 나머지 자매들은 똘똘 뭉치기로 유명했다. 서로 옷 입는 것이나 머리 스타일을 챙겨 주는 것은 물론이요. 혹 자매들 중에 또래들에게 불이익을 당한다든가 놀림을 당했을 때는 모두 함께 쫓아가 따지고 역성을 들어 아무도 그들을 건드리지 못했다.

넷째 자매의 특별한 친구가 자고 간다는 소식에 다섯 자매 모두가 한 방에 모여 이야기하다가 여기저기 잠들게 되었다. 한참을 곤히 자고 있는데 부스럭 부스럭 소리가 나더니 여섯째가 화장실을 가야 한다고 크게 말했다. 딱히 누구를 깨우지도 않았는데 잠자던 자매들 모두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우르르 마당 끝에 있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일을 보는 자매를 위하여 모두 따라간 것이다. 만약 따라가기 싫어서 방에 남아 있는 사람은 유사시에 아무도 따라가 주질 않는다고 했다. 자신이 어려울 때를 위하여 떠지지 않는 눈을 부비면서 일어났던 것이다.

잠이 깬 나도 혼자 낯선 방에 남아 있기가 무서워서 싸늘한 바깥 바람도 개의치 않고 그들 속에 끼었다. 희미한 램프를 들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 자매를 위해 처마 밑에서 서있거나 쪼그리고 않아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스갯소리도, 조금 전의 꿈 이야기도 해가며 기다리는 자매들의 모습이 놀랍기만 했다. 오래도록 일 보는 자매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아도, 아무도 재촉하지 않고 급기야 지루함을 달래려는 듯 소리 죽여 가며 노래를 불렀다. 한 사람, 두 사람 목소리 합하여 합창까지 했다. 한밤중 어둑한 헛간 처마 밑에서 울려 나오는 나직한 합창소리, 그 정다운 풍경은 그때 그곳에 같이 있었던 내가 생각해 봐도 아늑하고 평안한 옛날 이야기같이 재미있기만 하다. 그 당시 어렸던 나는 한동안 꿈 같기만 했던 헛간 처마 밑, 그 자매들이 만들었던 풍경을 생각할 때마다 흐뭇했고 몹시 부러웠다. 요즈음도 이따금 그 자매들의 소식을 듣는다. 어려움에 처하면 서로서로 돕는다는 자매애에 관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우애가 어릴 적 화장실 문지기를 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난 확신한다.

집 구조가 그 옛날과 판이하게 달라 이젠 화장실이 안방 안에 있는 미국에서 황당하게도 아직도 화장실을 혼자 못 가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어린애도 아니고 세상을 두루 살아 70을 바라보는 네 아이의 할머니라 하면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바삭바삭한 성품의 남편에게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음은 물론이요, 걸걸한 목소리로는 한길로 큰 딸들과 사위들에게 명령할 수 있고. 삶에서 얻은 경험으로 한 치의 자존심을 구길 필요가 없이 척척 박사가 되어 있는 그녀, 덩치가 자기의 두 배만 한 미국 손님에게도 큰 소리 쳐가며 사업을 하고 있는 그녀가 얼마 전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수줍은 목소리로 놀라운 말을 했다.

“자다 깨면 너무 무서워 혼자 화장실에 갈 수가 없다”는 자백이었고 그때마다 자던 남편이 눈을 부비고 일어나 방안의 변기 위에 있는 아내를 위하여 불침번을 서야 한다는 웃을 수밖에 없는 보충 설명까지. “둘 다 귀엽다.” “말도 안 돼!‘ ”그거 남편에게 부리는 애교 아니야!“ ”남편의 백 가지 흉 다 덮어 줄 수 있겠다.“ 둘러앉은 친구들 모두 손뼉을 치며 웃다가 한 마디씩 했다.

난 분명히 알고 있다. 옛 친구집 헛간 처마 아래서 화장실지기를 하며 맺어진 우애가 그랬던 것처럼, 여기 또 하나의 화장실지기와의 사랑! 이 댁의 금슬 전선은 영원히 이상 없을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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