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 나오미 레멘 지음 / 이루파 펴냄

 

‘생명을 위협하는 지병(크론병)을 앓은 지 40년이 되었고, 의사로서 살아온 지도 35년이 되었다. 이제 나도 어머니처럼 많은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다. 체험한 이야기와 들은 이야기가 많다. 부모님의 딸로, 할아버지의 손녀로, 많은 지인들의 친구로서의 이야기도 있고, 병을 앓은 환자로서의 이야기와 환자들을 돌본 의사들의 이야기가 있고, 다른 의사들과 환자들이 들려 준 이야기도 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있다. 당신의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들려 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다. 여기 있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이야기 하나하나는 내가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이 책에는 질병의 고통을 통해 삶의 소중함과 축복과 신비를 깨닫게 된 사람들의 52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원제는 <Kitchen Table Wisdom>이며 2004년에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저자 레이첼 나오미 레멘은 마음과 몸의 조화를 이루는 건강법 분야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하고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지닌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접근 방식을 개발하고 의사들에게 그것의 필요성을 교육시키는 일에 투신하고 있다. ‘암환자 복리 증진 프로그램’의 공동 창설자이며 의과 분야 책임자이다.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교의 임상 교수이기도 하다.

(본문 중에서)

“나는 내가 단지 나임을 알고는 깜짝 놀랐어요. 연민, 친절, 삶에 대한 신뢰, 신비 등을 이해하는 열쇠도 바로 이 깨달음이라고 생각해요. 참으로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지요. 지금까지는 내 삶의 전부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느라 소비했어요... 나는 우리 회사가 생산하는 여러 종류의 자동차 중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무엇에 비유하자면 난 수공예품이지요. 인간의 기술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작품이지요. 이 점에서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고유한 ‘자신’이고 각자의 특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p.208)

세상이 거룩하고, 일상의 평범하고 작은 일들 안에 신성함이 담겨 있다는 깨달음은 생명을 위협하는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뿐 아니라 그들과 가까운 친구들, 가족들, 때로는 그들을 치료하는 의사들에게도 이들을 통해 문득 찾아온다. 이것은 오히려 환자들이 그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하나의 길이다. 비록 때가 되어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바로 그들이 세상에 넘겨 놓는 위대한 유산이 된다. (p. 211)

우리가 삶을 억압하려고 하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잊지 않고 기억하되 떠나보낼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 자유로울 수 있다. 떠나보낼 수 있다면 또 다른 방식으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운명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의 영혼은 자유롭다. 그 자유는 슬퍼하지 않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정말 중요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을 택하는 것이다. 그대여, 삶을 택하라!(p.231)

제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성공이나 명성도 그것을 보증해 주지는 않는다. (p. 237)

은총은 신비롭게 찾아온다. 하지만 그 은총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조용히 머무는 시간이 필요하다. 조용히 머무르는 그 시간 또한 은총이다.('거룩한 체험' 일부)

기도는 무엇인가를 얻고 바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버리는 일이다. 기도는 욕심으로 생기는 괴로움을 이겨 내도록 도와주며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마저도 내맡길 수 있게 해준다. 기도는 자연의 순리와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며 단순히 지적인 차원이 아니라 심오한 경험을 통해서 세상과 삶을 이해하도록 이끌어 준다. (...) 깊은 차원에서 기도는 우리의 삶과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자세다. 기도를 향해 손을 내민다는 것은 내가 지닌 오만과 남의 도움을 거부하는 자존심과 독선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 삶을 통제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삶에 우리를 맡겨야 한다. 기도는 겸손을 배우고 은총을 체험하는 기회다.

“주님, 저희가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최선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고 행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주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은 제 몫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치유가 일어나는지 아는 것도 제 몫이 아닙니다. 저는 다만 이 순간 이 자리에 있습니다.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십시오.”('기도' 일부)

대개는 삶 안에서 치유가 일어나는 길은 신비롭게 일어나기 때문에 발견하지 못한다. 신비에 마음을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 화두를 풀기 위해서는 신비에 대한 신뢰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때가 되면 화두에 대한 답을 얻게 되리라는 믿음이기도 하다. 깊은 내면으로 고요히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기대했던 대로 화두가 풀리지 않기 때문에 좌절하지만, 다시 조용히 귀 기울이고, 비록 금방 이해되지 않지만 포용하려는 열려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해답과 해답을 찾고자 하는 이가 서로를 향해 열린 마음이 되면 해답은 슬며시 신비의 문을 연다.('화두' 일부)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관심, 판단이나 해석 없이 그냥 들어주는 것. 가만히 들어 주는 것은 가장 오래된 강력한 치유의 도구이다. ('귀 기울여 들어주기' 일부)

인간은 기대나 후회, 야심과 당황, 두려움과 걱정이 없는 아주 순수한 상태로 태어난다. 숲 속에 안개가 퍼지듯, 평화가 흐르는 은총의 내밀한 지점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이 지점을 ‘정신’이라 부르고, 신학자들은 ‘영혼’이라고 한다. 융은 이 지점은 ‘무의식의 자리’라고 불렀다. 힌두교도들은 ‘아트만(대아)’이라고 했으며, 불교에서는 ‘카르마(법)’이라 이름을 붙였다. 릴케는 ‘내면’이라고 표현했고, 이슬람의 수피들은 ‘퀠브(혼)’라고 했으며, 예수는 그것을 ‘사랑의 중심’이라고 했다.

이 내면의 지점을 안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다. 이는 외적인 신분에 의해서도 아니고, 어디에서 일하고, 어떤 모습이며, 남들에게 어떻게 불리기를 바라는 마음도 아니다. 절대자에 의해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과 그 안에 머물러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은 일생을 두고 계속 이루어야 할 어려운 과제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존재는 끊임없이 비본질적인 것을 침식시키고 본질적인 것을 향하도록 만들어졌음에도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태어날 때 만났던 바로 그 순수한 지점으로부터 계속 멀어져 가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둘의 갈등 사이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결국은 우리의 가장 내밀한 부분에 자리하고 있는 은총의 지점을 향해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이다(마크 네포)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평범한 일상에서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평범한 하루하루의 일상 안에, 아주 사소한 일처럼 보이는 그 안에 함께 계신다. 그것을 제대로 알 수 있다면 우리 삶은 거룩할 수밖에 없다('하나님을 안다는 것' 일부).

내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위해 존재할 것인가? 내가 나만을 위해 존재한다면 나는 도대체 어떤 존재란 말인가? 그리고 지금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언제 다시 하겠는가? 어쩌면 지혜란 기다림에 달려 있고, 치유란 시간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한 번 일어났던 좋은 추억은 마음 속에서 영원히 지속된다.('에필로그' 일부)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