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리아인들의 시리아 탈출로 아람어 사라지고 있어

4월 15일, 워싱턴 포스트 리포터인 수잔 하이다무스는 주류 언론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시리아 아시리아인들의 실상을 보도했다. 그녀의 기사에 따르면, 시리아에서 오랜 기독교 전통을 지닌 아시리아인들이 거의 사라지고 있으며 아울러 예수가 사용했던 아람어도 사라지고 있다.  다음은 기사 내용이다.

이슬람 무장군들이 시리아 서부의 마을에 쳐들어왔을 때 수하일 가브리엘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무장군들은 기관총과 로켓 추진 소화탄을 마구 발사했다. 베이루트의 난민이 된 가브리엘은 그날 새벽 아내와 딸을 오토바이에 태우고 어둠 속을 마구 내달렸다고 회상했다. “우리는 파자마 차림이었다”며 가브리엘은 “옷을 갈아 입을 시간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시리아인으로 알려진 크리스천 수천 명 중 하나로 지난 2월에 시리아 카부르 강변의 농촌을 떠났다. 수니파 무슬림 극단주의자들 때문이었다. 그 당시 이들은 교회와 종교적 상징물들을 훼손하고 여성과 아이를 포함해 약 250여 명의 아시리아인들을 납치했다.

지난 10년 동안 아시리아인들은 내전과 박해를 피해 시리아와 이라크를 탈출한 크리스천 난민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최근의 공격으로 독보적인 메소포타미아인들이 이 지역에서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는 데 언론이 주목했다. 이라크와 시리아의 아시리아인들은 예수가 사용했던 언어인 아람어를 쓴다. 아시리아인 다수는 중동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 다른 지역에서 아람어를 지킬 수는 없을 것이라고 중동 역사와 아시리아 문화를 연구하는 에덴 네이비는 말했다.

아람어는 중동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언어라고 그녀는 말했다. 유대인을 포함해 다른 종교 공동체에서도 사용되었다며, “아시리아인들은 세상에서 최후의 아람어 사용자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사라지거나 떠나면 아람어가 사라지게 된다”라고 네이비는 말했다. 칼데아인 혹은 고대 시리안인으로도 불리는 아시리아인들은 자신을 인종적으로 아랍인이나 쿠르드인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인종적 뿌리는 6,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시리아인들은 기독교로 개종한 초기 사람들이었으며, 네 곳의 동방 전례 교회들에 대부분 소속되어 있다. 이 교회들을 세운 이들 중에는 1세기의 사도 도마와 다데오, 바르토롤메오가 포함된다고 전해진다.

 
아시리아인들은 레바논이나 터키에도 흩어져 있지만, 중심 공동체는 이라크와 시리아에 있다. 이라크의 아시리아인 수는 1980년대 말에는 140만 명이었으나, 사담 후세인을 축출한 미국 침공으로 인해 대부분이 떠났고 2003년에는 약 40만 명이 남아 있었다. 현재 시리아에 남아 있는 아시리아인은 4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대다수가 쿠르드 지역으로 피신했다.

“우리는 잇따른 잔혹 행위에 직면하고 있다.”며 레바논의 시리아 리그 의장인 하비브 아프람은 2008년 모술 북부에서의 대주교 살해, 60명이 살해된 2010년 바그다드의 아시리아 교회 폭탄 테러, 시리아 최대 도시 알레포에서의 주교 두 명 납치를 비롯해 최근 아시리아인 공격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아시리아인들의 땅을 점령하거나 내쫓는 데 머물지 않고 아예 과거와 유산을 지우고 싶어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지난 해 6월, IS가 이라크 북부를 휩쓸었을 때 수천 명의 아시리아인들은 모술과 기타 지역에서 떠나야 했다.

시리아 내전이나 IS의 발흥 이전에도 아시리아인들은 박해를 당한 적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오스만 터키 군대와 다른 소수 종족에 의해 50만여 명의 아시리아인들이 살해되었다. 이는 역사적으로 대규모의 인종 학살로 기록되었다.

지금 아시리아인들의 2/3는 미국과 스웨덴, 호주를 포함한 다른 나라들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극소수의 학교에서만 아람어를 가르치지만 이 언어는 사라지고 있다고 아람 문화 전문가인 네이비는 말했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 시기에 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이라크 북부를 떠났을 때도 유사한 언어의 실종이 있었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최근 시리아를 떠난 많은 아시리아인들은 국외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어한다.  “우리들 중 아무도 시리아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영어 교사였던 47세의 가브리엘은 말했다. 카부르 강변 마을을 떠난 가브리엘과 다른 아시리아인들은 베이루트에 있는 세인트 조지 교회에서 미사를 드린다. 그곳에서 피신했거나 미처 피하지 못하고 붙잡힌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최근에는 1년 전 시리아에서 베이루트로 온 사미르 키잔(49세)이 지난 2월 고향 아부 티레 마을을 공격했을 때 IS 무장대원들은 70세 되는 오빠를 납치하지 않는 대신에 성 마리아 교회의 십자가와 성상을 파괴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그들은 발로 으깨라고 강요했으며, 그 일을 하기 전에 오빠는 눈을 감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60세의 안드레 헤르메스는 2월 공격 이후 형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의 형인 아위예는 목화와 밀과 토마토를 기른 농장을 떠나길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 집을 사랑했다”고 말한 헤르메스는 형이 납치된 250명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무장군들이 몸값을 요구할 것이라 예상한다. 가족들은 납치된 이들이 살해될까봐 두려워한다. “그들은 우리를 동물 취급한다”며 헤르메스는 1년 전 고향을 떠나 15만 명을 받아들인 스웨덴으로 가려고 한다. 그는 현재 베이루트에 머물면서 지역 아시리아 공동체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박해받는 소수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일을 하는 A Demand For Action의 창설자인 누리 키노는 대규모로 피난했지만 아시리아인들은 여전히 문화적 전통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동에서처럼 아람어를 계속 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베이루트로 피난 온 가브리엘의 최대 관심사는 집과 직장을 구하는 것이다. “강제로 고향을 떠났다. 물론 우리도 전통을 지키고 싶지만 무엇보다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는 일이 중요하다. 시리아에서의 우리의 삶은 끝이 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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