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 2:6-11

십자가가 오늘 여기 존재하는 나와 실제로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십자가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 2천 년 전 팔레스타인의 한 젊은 목수가 해골이라는 이름을 가진 음산한 언덕에서 못 박혔던 십자가는 바로 내가 져야 할 십자가였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오늘 우리의 십자가 이해는 어디쯤 와 있습니까? 골고다 위에 높이 솟은 십자가에서 “왜?”라는 물음이 던져질 때 우리는 뜨거운 눈물과 함께 “나 때문에”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강 건너 불 보듯이, 어느 무식한 할머니가 세례문답에서 했다는 대답처럼 “내 며느리 때문에...”라고 얼버무리고 있습니까? 말로만 하는 고백이 아니라 나의 생각, 나의 행동, 나의 삶이 십자가를 과연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둘째, 지금 여기서 내가 져야 할 내 몫의 십자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명하셨습니다.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누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당하거나 시련을 겪으면 “그 사람 무거운 십자가를 졌군”합니다. 자신에게 참기 힘든 역경이 닥치면 자위하듯 “내 몫의 십자가로 알고 견뎌야지”합니다. 누가 망나니 아들을 두어 속을 썩이면 그것도 십자가요, 누가 고질에 걸려 고생하면 그것도 십자가요, 누가 가정파탄으로 괴로움을 당하면 그것도 십자가요, 누가 억울하게 비난을 받으면 그것도 십자가요, 누가 장사하다 실패하면 그것도 십자가요, 심지어 정권 연장을 위해 법을 고치면서 “십자가를 지는 심정”이라고 합니다. 십자가는 많기도 많고, 흔하기도 흔합니다. 과연 십자가는 이렇게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처럼 많고, 이렇게 값싼 불량 상품처럼 도매값에 넘어가는 것입니까? 이렇게 십자가가 흔하고, 저마다 십자가를 즐겨 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세상은 진작 천국이 되어도 골백 번 더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아직도 세상에 남아 있는 부정, 부패, 차별, 학대, 압제, 착취, 빈곤, 정신병 따위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오늘의 기독교의 고민은 십자가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많으나 참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적다는 데 있습니다. 게다가 자기가 마땅히 져야 할 제 몫의 십자가를 외면하고 회피한다는 데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집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져야 할 십자가를 내팽개치고 로마 성을 빠져 나와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달아나는 베드로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도망쳐 나온 로마 성을 향하여 급히 가고 계셨습니다. 깜짝 놀란 베드로는 물었습니다. “쿼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주님은 슬픈 음성으로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벗어던진 십자가를 지기 위해 가는 길이니라.” 베드로는 눈물로 회개하고 로마로 달려가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오늘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질 십자가의 현장인 로마 성 안에 있습니까? 성 밖에 있습니까? 성 밖에 있다면 가시관 쓰신 주님의 모습이 나타나시기 전에, “네가 버린 십자가를 지러 간다.”는 가슴 아픈 음성이 들려오기 전에 나의 십자가 현장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가 로마 성 안에 있다면 나의 십자가가 과연 참 십자가인지 판가름해야 합니다. 참 십자가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십자가의 세 가지 근본 의미가 적용되는 지를 확인하면 됩니다.

먼저 내가 지는 십자가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성취되는가를 따져 봅니다. 그런 다음에 내가 지는 십자가로 죄 아래 있는 이웃이 자유를 얻는지 살핍니다. 끝으로 내가 지는 십자가로 새롭게 태어나고 더욱 풍성해지는 생명을 체험할 수 있는가를 찾아봅니다.

영국의 설교가 조셉 파커 목사는 “예수님은 도무지 십자가를 벗어 놓지 못하신다.”고 통탄했습니다. 좀처럼 자기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그리스도들인이 제 몫의 십자가를 걸머질 때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은 “예수 마침내 십자가를 벗으시다”가 될 것입니다.

십자가는 패배요, 절망이요, 끝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승리요, 소망이요, 영원한 출발이 되는 역설적 가치 전환을 복음에서 찾았습니다. 이 십자가의 역설이 인생을 지배하는 원리가 될 때 천국 가는 탄탄대로가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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