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소리 (5)

불행하게도 Dr. 홀 부부는 당시의 경험을 기록한 것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 것들을 갖고 있으면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Dr. 홀 부부가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기상 같은 것들뿐이었다. 어떤 이들은 그것까지도 위험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몇 달 후에 Dr. 홀 부부는 미국에 있는 후원자들에게 자기들의 경험을 자세히 써서 보낼 수 있었다. 그 편지를 자료로 Dr. 홀 부부는 옛날 기억을 다시 되살릴 수 있었다. 그 편지에는 1940년 여름과 가을에 일어난 일들이 부분적이나마 기록되어 있었다. Dr. 홀 부부는 그때 겪었던 고통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해주 영국 성공회의 캐럴 신부는 Dr. 홀 부부의 집에 자주 놀러왔다. Dr. 홀 부부의 아이들은 캐럴 신부를 잘 따랐고 그도 아이들을 귀여워했다. 그는 시간만 나면 조선어 공부에 몰두했다. 그는 가족도 없이 혼자 외롭게 지내고 있었다. Dr. 홀 부부는 여름 휴가 때 화진포의 성으로 함께 가자고 그를 초대했다.

1940년 여름, Dr. 셔우드 홀은 온갖 골치 아픈 걱정거리에서 해방되어 전보다 훨씬 더 휴가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해주는 여러 면에서 그의 감정을 자극하는 곳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해주를 벗어났다고 해서 모든 말썽들로부터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가장 위험하고 경비가 많이 든 휴가’이기도 했다. 그것은 캐럴 신부가 말한 것처럼 그를 초대한 데서 비롯된 사건이었다.

해변은 조용하고 평화스러웠다. Dr. 셔우드 홀은 스피커를 통해 귀가 아프게 큰 소리로 들려 주는 승전 뉴스를 듣지 않는 것만 해도 좋았다. 새로운 제한, 금령, 지시, 경고를 듣지 않으니 그것도 좋았다. 간혹 해변에까지 이런 소문들이 들려왔지만 금세 잊혀졌다.

해변에서는 현지 외국인을 위한 영적인 부흥 집회가 열렸다. 해변의 쾌청하고도 정상적인 생활은 세계 대전이 멀지 않은 곳에서 발발하려 한다는 사실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이 평화는 폭풍 전야의 고요함에 불과했다. 메리안이 그 당시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Dr. 홀 부부가 당했던 사건을 알 수 있다.

8월 첫 주일, 나는 남편과 손님인 캐럴 신부와 함께 화진포 별장 뜰에 서서 호수와 바다에 반사되는 석양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 유명한 금강산이 보였다. 언덕 위에 서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모든 게 너무나 평화스러웠고 아름다웠다. 이 석양의 아름다움에서 깨어나게 하려는 듯 캐럴 신부가 “평양에 있는 성공회의 차드웰 신부가 체포되어 감옥에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일본에서 콕스(Cox) 씨가 자살(?)했다는 소문과 여러 명이 체포되었다는 소문들 들은 적도 있었다. 차드웰 신부의 체포는 어처구니 없게도 조선 전반에 걸쳐 스파이를 잡아들인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검거 선풍의 하나였다.

다음 날 아침 7시, 우리 집 주위를 배회하는 발걸음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평복을 입은 두 헌병들이 와 있었다. 캐럴 신부를 체포하러 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캐럴 신부가 좋은 사람임을 시인하면서도 해주 감옥에 4일 동안 수감했으며 그 과정의 모든 비용까지 캐럴 신부에게 부담시켰다.

일본 군대는 해발 20m 이상의 지대에서는 절대로 촬영을 못하게 법으로 정해 놓고 있었다. 우리 별장은 해발 20m가 넘는 곳에 있었다. 헌병들은 캐럴 신부를 체포하고는 떠나기 직전에 별장 지붕으로 데리고 올라가 강제로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그때 마침 셔우드가 부스스한 몰골로 뛰어 올라와서 “군부의 금령이니 절대로 사진을 찍게 할 수 없다”고 하자 헌병들도 단념했다. 그때부터 캐럴 신부는 콕스와 같은 운명을 밟는 게 아닌가 하고 신경이 예민해졌다.

헌병들은 캐럴 신부의 체포에 대해 절대로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고 우리에게 경고했다. 그러나 헌병들이 조심하면서 캐럴 신부를 체포해갈 때는 마침 아침 집회 시간이었다. 해변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 사이를 지나가게 되었다. 서울에서 온 캐럴 신부의 친구들은 헌병을 알아봤다. 그들은 곧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눈치 챘다. 캐럴 신부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은 그날로 곧 세실 감독에게 전해졌다.

다음날 Dr. 셔우드 홀은 요양원 일로 급히 해주에 오라는 수상한 전보를 받았다. 친구들은 함정일지도 모르니 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정말로 급한 일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Dr. 셔우드 홀은 첫 기차를 탔다. 그는 떠나기 전에 메리안과 암호 전보를 약속했다. 모든 일이 무사하여 그가 곧 돌아오게 될 때는 ‘Pets Well’ 이라는 전문을 치기로 했다.

착잡한 심정으로 기차를 탔지만 해주까지는 말썽이 없었다. 해주에 도착하니 모두들 왜 이렇게 빨리 돌아왔느냐고 놀라며 누가 그런 전보를 보냈는지 의아해했다. Dr. 셔우드 홀은 곧 메리안에게 약속한 대로 전보를 친 다음 돌아가는 열차를 타려는데 낯익은 헌병 두 사람이 불쑥 그 앞에 나타났다.

“죄송합니다만, 당신을 체포하게 됐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러나 당신의 얼굴이 잘 알려진 이곳에서는 체포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명예를 존중하는 신사임을 압니다. 그러니 서울로 가서 도착하는 대로 헌병대에 출두하십시오.”

Dr. 셔우드 홀은 친구들에게 체포된 사실을 알려 줄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 떠나면 서울에 도착하는 시간이 너무 늦으니 내일 아침에 헌병대에 가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헌병들은 망설였다. 그 중 한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전 10시까지는 헌병대에 반드시 도착해야 합니다.”

다른 한 사람이 덧붙여 말했다.

“오늘 밤에는 푹 자두는 게 좋을 겁니다.”

서울로 가는 길에는 아무도 Dr. 셔우드 홀을 호송하지 않았다. 그는 혼자 흔들리는 열차에서 여러 상념에 젖었다.

“어떤 방법으로 친구들에게 이 처지를 알릴 수 있을까?”

Dr. 셔우드 홀은 그날 밤 늦게 서울에 도착해서 곧장 젠슨 씨 댁으로 갔다. 젠슨 씨 가족은 휴가를 떠나고 없었다. 다행히도 젠슨 씨의 친구들이 보급품을 가지러 시골에서 올라와 그 집에 묵고 있었다. Dr. 셔우드 홀은 그들에게 자기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영국 총영사인 핍스 씨에게 그 사실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메리안에게도 사연을 전해달라고 했다. Dr. 셔우드 홀이 직접 핍스 씨나 메리안에게 연락하는 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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