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재판 (2)

셔우드와 메리안 부부는 검사에게 두 번이나 불려갔다. 육군에서는 셔우드와 메리안 부부에 대한 사건철을 이첩했으므로 수많은 서류들을 재확인하는 일로도 시간이 걸렸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나자 셔우드와 메리안 부부에게 법정에 출두하라는 호출장이 왔다. 셔우드와 메리안이 법정에 들어가서 얼마간 기다리자, 판사와 검사, 서기들이 들어와 셔우드와 메리안 부부 위쪽에 있는 벨벳으로 된 의자에 앉았다.

셔우드와 메리안도 의자에 앉았다. 메리안이 다리를 꼬고 앉자 법정 경관이 다가와서 무릎을 찰싹 때리며 한 다리를 내려놓게 했다. 셔우드와 메리안은 일어서서 높은 자리에 앉은 존귀한 사람들에게 절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곧이어 서기가 간단히 낭독하자 재판은 1940년 10월 25일에 열린다고 검사가 선언했다. 그 다음 판사는 셔우드와 메리안에게 직접 구두 또는 문서로 변호하든지 변호사를 고용하라고 말했다.

셔우드와 메리안 부부는 변호사를 쓰기로 했다. 변호사는 박씨라는 키가 크고 가냘픈 40대 후반의 조선 사람이었다. 어려운 재판을 많이 이겼다는 정평이 나 있는 사람이었다.

셔우드와 메리안은 박 변호사가 모든 사실에 대해 철저히 그들에게 질문하여 문제를 파악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는 셔우드와 메리안을 실망시켰다. 자기 방식대로 혼자서 자료를 탐색할 모양이었다. 셔우드와 메리안은 안심이 되지 않아 박 변호사를 찾아가서 도움이 될 사건의 경위를 알려 주려 했지만 그는 간단히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저 제게 다 맡겨 주십시오. 재판은 잘 될 테니 편안히 잠이나 주무시지요.”

드디어 10월 25일, 재판날이 왔다. 걱정한다고 예정된 운명이 바뀌지 않을 거라면 잠이나 자두었던 게 좋을 뻔했다고 셔우드는 생각했다. 박 변호사는 정말 멋지게 셔우드와 메리안을 변호했다. 셔우드와 메리안과는 이야기를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 많은 사실들을 알았는지, 사실들을 바탕으로 변호하는 박 변호사의 솜씨를 보고 셔우드와 메리안은 경탄했다. 그가 제시한 쟁점의 하나는 셔우드의 아버지가 청일전쟁 후 일본 군인들을 치료하다가 생명을 잃었다는 점이었다.

“그런 사람의 아들을 이제 와서 일본군의 반역 스파이로 의심해야 옳겠는가? 그의 아들인 닥터 셔우드 홀은 조선에서 태어났으며 조선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물려받은 효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닥터 셔우드 홀은 결코 그의 아버지의 행적을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박 변호사는 셔우드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셔우드의 어머니는 일본인과 조선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평양의 어머니’라고 불리고 있다. 병원, 맹인과 농아를 위한 학교, 그리고 최초의 여자 의학교를 창설한 사람이다. 그런 여성의 아들이, 자기 어머니가 깊이 사랑하는 동양인들을 배반할 수 있단 말인가? 절대로, 일천 년이 지난다 해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변호가 절정에 달하자, 박씨는 메리안의 공적에 대해서도 찬사를 이어갔다.

“남자 의사들도 거절한 일을 닥터 메리안 홀이 만삭인 몸에 위험을 무릅쓰고 추운 겨울밤 환자를 보러나가 시골에 앓아 누워 있는 불쌍한 청년의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조선 왕가의 여성 환자를 수술하는 데 도와달라는 닥터 메리 스튜어트의 요청을 받고 서울에 가기도 했다. 그러한 희생적인 행동이 어떻게 잊혀질 수가 있단 말인가.”

박 변호사는 군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함으로써 그의 훌륭한 변호의 결론에 대신했다.

“닥터 셔우드 홀은 황해도 지사에 의해 일본 건국 2600년 식전에 참석할 대표로 선정되었습니다. 이 영광스런 식전에서 천황 폐하께서는 닥터 셔우드 홀에게 결핵 퇴치의 공로를 표창하시고자 함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무서운 질병은, 이제 이 땅에서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닙니다. 나는 나의 의뢰인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바입니다.”

박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셔우드와 메리안에게 씌워진 혐의들을 하나씩 하나씩 열거하면서 아무 근거도 없음을 지적했다. 박 변호사의 명변호로 육군은 재기소를 포기했고 셔우드와 메리안 부부는 더 이상 이 문제로 일본군 당국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

육군의 기소에 대해 박 변호사는 이렇게 반박했다.

“미합중국에서는 그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이면 그 부모의 국적에 상관없이 그 나라의 시민으로 인정된다고 합니다. 같은 이유로 나는 내 의뢰인이 조선의 시민임을 천명합니다. 군부에서는 피고인을 영국의 스파이, 적색 외국인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저는 이 점에 강력히 반박합니다. 그는 적도 아니고 외국인도 아님을 지금까지 명백히 알려드렸습니다. 그는 청진기로 우리 백성들의 심장을 진찰할 때면 자기 심장도 우리와 함께 뛴다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와 똑같이 느끼고 사랑합니다. 이런 감정의 공통점으로 인해 그는 우리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그를 이 법정에 나와서 머리를 숙여 절하도록 명령한, 그에게 억울한 혐의를 씌운 사람들이야말로 지금 여기 나와서 부끄러움을 씻는 절을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헌병대에서 파견나온 사람은 마치 이 말을 피하려는 듯 법정의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박 변호사의 변호는 효과가 컸다. 육군의 집요한 압력이 아니었다면 판사는 셔우드와 메리안에게 무죄를 선언했으리라는 말을 후에야 들었다. 사사끼 씨가 전에 알려 주었던 대로 셔우드와 메리안 부부는 3개월 징역, 아니면 1천 달러라는 벌금형을 언도받았다.

현지 신문에는 이 재판에 대해 한 마디 언급도 없었다. 얼마 후에 서양 신문에만 ‘캥거루 재판’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실렸다. 진정 이것은 하나의 코미디 같은 재판극이었다. 일본 건국 2600년 경축의 하나로 일본 천황은 조선에 하사금을 내렸는데, 단일 하사금으로는 가장 액수가 많은 1천 달러가 공교롭게도 해주 요양원에 전달되었다. 재판이 완전히 결말을 보지 못해 셔우드는 해주 지역 바깥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결국 경축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천황의 하사금은 셔우드를 돕지는 못했지만, 해주 요양원에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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