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 영광이 당신에게 있사옵나이다. (2)

지상에는 사람들이 사람들을 위해 만든 인위적이고 인본주의적 영광이 많다. 인류의 번영과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은 개인에게도 영광이지만 역사에 유익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의 이름을 인정해 주는 정도의 가치와 수준밖에 안 되는 미숙한 일에 대해서도 훈장을 만들고, 기념패를 만들고, 학위를 주고, 박수 치고 떠든다. 개인적으로는 기쁨과 격려가 되겠지만 인위적이고, 인본적인 영광일 때 문자 그대로 "녹슨 영광"이 되고 말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을 입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오셨고 그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로 충만 된 삶을 사셨다(요 1:14).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하나님께 영광된 삶이었다. 그분의 삶을 닮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삶을 드렸던 인물들을 보라. 각 시대마다 하나님은 역사를 그들의 손에 맡기셨다.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작곡했던 헨델(Handel)의 오라토리오「메시야」에 나오는「할렐루야」 합창을 들으면 하나님께 영광 돌려 드림에 감격하게 된다. 헨델 자신은 이 곡을 작곡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계시를 느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곡이 영국 황제(George Ⅱ세)가 참석한 1743년 4월 13일 런던 시에서 연주되었을 때, 왕은 감격에 못 이겨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우리들은 하나님의「영광」앞에 다 같이 기립할 수 있는 삶을 주기도문 송영을 통해 드릴 수 있어야겠다. 종교 개혁자들의 신앙은「오직」이란 특색 지은 강령으로 일관한다.

구원의 길은「오직 은혜」와「오직 믿음」(Sola Gratia, Sola Fide) 이라고 했다. 또한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근거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고 했으며, 신앙의 대상(Object of Faith)은 오직 그리스도(Sola Christo)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삶의 목적(Object of Life)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Sola dei Gloria)이라고 고백했다.

교회를 건축하는 일터에 석공 세 사람이 일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에게 "왜 일하느냐"고 질문했더니 "죽지 못해 일한다"라고 대답했다. 또 한 사람에게 물었더니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한다"고 하였다. 셋째 사람에게 물었더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한다"라고 대답했다.

세 번째 사람은 생의 뚜렷한 목적이 있었고 그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에까지 끌어 올렸다. 인류 최대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면, 우리는 주기도문의 송영 속에서 우리의 신앙과 삶의 목적이 어디에 있든지 현주소를 점검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과 대치될 수 없다. 사생관(死生觀)도 우주관도 그분의 영광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때로는 인생의 암흑 속에서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삶을 몽땅 던져야 한다.

사도 바울의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8) 라는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주기도문의 송영에서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는 찬양을 드릴 수 있다.

필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My Lord), 나의 하나님(My God)으로 영접한 이후에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Do all to the glory of God)는 문구를 좋아하여 사무실이나 기도실이나 책상 앞에 써 붙여 놓곤 한다.

이 글을 볼 때마다 다시 한 번 나를 살펴보며 말씀 안에서 바른 삶의 자세를 가지려 노력한다. 그러는 동안에 특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의 두 가지 자세를 배우게 해주셨다. 한 가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는 기도의 자세이다.

구약성경에 시편 성도의 간구의 말씀("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 시 86:3,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 시편 86:6)에 많은 은혜와 감동을 받고 열심으로 부르짖고 간구할 때,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그 간구를 들으시고 "은총의 표징"(시편 86:17)을 내게 보여 주시는 것을 체험하며, 날마다 그 귀하신 축복 속에 주기도문의 송영을 드린다.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는 찬양의 자세를 배우게 하셨다.

시편 119:164의 말씀처럼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Seven times a day, I praise you)하려고 노력하며 실천하고 있다. 나의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찬양으로 시작된다. 정성을 다해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부터 드리는 찬양은 내 기도의 문을 활짝 열게 해주시는 은총으로 이어지고, 회개와 감사, 간구(교회, 전 세계의 영혼들에 이르기까지)가 계속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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