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10년차가 되었지만 영어는 생각만큼 늘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어 미국에 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인목회를 하다 보니 영어 쓸 일이 별로 많지 않아서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거나 정기적으로 미국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이 있었더라면 좀 달랐을 것입니다. 영어 설교를 해야 했다면 훨씬 좋아졌겠지요.

인터넷의 발달과 유투브 등 다양한 콘텐츠 덕에 한국어로 제공되는 뉴스와 정보를 접하기 쉬워졌습니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주요 사건을 CNN이나 ABC 방송보다는 포털 사이트로 제공되는 국제 뉴스 기사로 듣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영어를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줄어든 느낌입니다. 생활영어 수준에서 머물러 있는 자신을 보고 한심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획기적인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얼마 전 유명한 미국 목회자의 설교를 영상으로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매우 영성 깊고 강력한 메시지였는데 저의 실력으로는 그 내용을 100%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미국적인 유머나 미국인들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예화를 들 때는 의미 파악이 훨씬 더 어려웠지요. 그런 부분은 추측과 눈치로 대략의 의미를 파악할 뿐이었습니다. 옆자리에서 함께 듣고 있던 1.5세 사역자가 설교자의 유머에 동시적으로 반응하고 진지한 부분에서 훨씬 더 공감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때에는 부끄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였습니다.

문득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3년여의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그들 사이에는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대화의 간격이 있었습니다. 아람어가 섞인 헬라어를 당시의 제자들이 몰랐을 리 없습니다. 언어적인 장벽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흔적은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 특히 하늘의 진리에 대해 말씀하실 때, 예수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해 설명하실 때 제자들의 독해 불능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영적인 세계를 육적인 사고의 틀과 경험으로 해석하려고 하니 당연히 오독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신 예수께서 반복하여 말씀하시거나 풀어서 다시 설명하시는 예가 성경 여기 저기서 나타납니다.

남들이 못 알아 들을 때 자신만의 탁월한 해석 능력으로 영어 연설이나 문장을 이해한다면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말하는 이는 점점 그 사람하고만 더 깊은 대화를 하려고 하겠지요. 영적인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알아 듣는 귀를 가진 자, 이해할 수 있는 영적 지식이 있는 자들은 하나님과의 대화를 더 사모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 역시 그 사람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하실 것입니다.

미국 온 지 몇 년 안 되어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 어떤 성도님이 “목사님 이젠 동시통역도 하실 수 있겠네요?” 라고 물었을 때 속으로 창피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분은 미국 생활을 해보지 않은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가면 다 영어 잘하는 줄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때 옆에 미국 사람이 없었던 것이 참 다행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에게 “그런 생각이 잘못된 것이에요” 라고 강하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것은 더 창피한 일이 될 것 같습니다. ‘미국에 사니 미국말을 잘해야 할 것 아니냐’는 기대가 틀린 것은 아니니까요. 미국에 살면서 미국말을 열심히 배우지 않은 자신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신앙생활 몇 년쯤 되면 영적인 언어의 의미를 다 해석할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들은 우리가 예수의 가르침과 그 심오한 뜻을 바르게 알고 해석해 주고 그대로 살 것이라고 기대할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 믿는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니에요” 라고 변명하는 것은 좀 궁색해 보입니다. 적어도 자랑은 아니라 여겨집니다. 하나님의 나라, 십자가의 길,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예수님의 언어와 가르침은 자기 경영계발서에 나오는 언어나 성공학에서 이야기하는 방법론과는 다른 것입니다. 행복과 승리, 성공의 의미도 세속도시의 통용어와는 전혀 다릅니다. 성경은 우리를 가르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늘의 언어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위해 하늘의 언어를 이해할 사고와 감각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안그러면 모르면서도 아는 척해야 하고 복음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이민와서 사는 우리들.. 더 열심히 언어공부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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