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박자박 비가 내렸다. 밤새 들려왔던 낙숫물 소리는 행복한 가락으로 내 귀를 두드렸다. 긴 가뭄이 해갈되고 있음을 알려 주는 안심의 소리였다. 오랜만에 오는 비, 큰 바람을 동반한 폭우라도 반가웠을 터인데, 순하디 순한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조용하고 포근한 그 소리로 인하여 편한 잠을 잤다. 혹시 곧 그쳐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염려가 있었나보다. 잠결에 살짝 의식이 돌아왔다. 귓가에 언뜻언뜻 들려온 소리, 투박하고 따뜻한 할머니 손길의 다독임을 닮은 자장가 가락. 안심하며 또 다시 깊은 잠속으로 빠졌다.

하늘과 나무와 땅을 사랑의 손길로 씻어 주었던 단비는 나에겐 숙면을 하게 해서 몸 안에 남아 있었던 피로감까지 말끔히 씻어 주었다.

비가 온 후의 하늘은 청명하기만 했다. 햇빛이 한층 눈부셨다. 작은 구름들을 품고 있는 하늘은 변화가 참 많았다. 몇 번이나 밖을 나가서 드문드문 흰 구름 장식을 마음대로 바꾸고 있는 파란 하늘을 보고 들어왔다. 좋은 일이 있는 듯 마음도 가뿐했다.

오후가 되자 콘크리트 바닥 위의 물기가 제법 말랐다. 처마 밑에 있었던 개의 물통을 건드리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릇 바닥에 남아 있는 작은 물속에서 아기 손가락만큼 작은 개구리 두 마리가 움직임에 놀란 듯 펄쩍 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뛰는 개구리를 본 적이 까마득했다. 개구리만 못 본 게 아니었다. 뒤뜰에 심은 어린 채소들이 싹이 나오기 무섭게 어디선가 나타나서 갉아먹어 버리곤 하던 달팽이도 본 지가 참 오래되었다. 해마다 채소의 싹이 나오면 채마밭의 무법자 달팽이와 치열한 싸움을 하곤 했다. 보이는 대로 젓가락으로 잡아내기도 했고, 어린 채소의 주변에 달걀껍질을 큼직하게 바수어 뿌려두곤 기어오지 못하게 하여 채소를 보호하려고 했다. 그러나 새싹들을 어느새 몽땅 먹어치우기 일쑤였다. 번번이 내가 지치고 말았다. 그런데 몇 년 동안 달팽이와 싸움을 했던 기억이 없었다.

또 길게 누워 있거나 꿈틀거리며 느리게 기어 다니던 징그러운 지렁이도 보이지 않았다. 나를 공격의 상대로 삼기는커녕,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백기를 들게 했던 지렁이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말라버린 뜰에 물기의 사라짐과 함께 이런 것들이 모두 없어져 버린 줄 새삼 깨달았다.

그런 뒤뜰에 하룻밤 차분한 비가 왔다고 물그릇 속에서 개구리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니! 뜻하지 않았던 개구리의 꿈틀거림에 놀라 뛰던 가슴이 기쁨으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생명은 어떤 방법으로든 보호를 받는 듯해서였다.

어떻게 개구리는 긴 가뭄 동안에 마르고 척박한 우리 뒤뜰, 어느 곳에 숨어 있다가 죽지 않고 나왔단 말인가! 그것도 두 마리가 함께 말이다. 아마도 그들을 위한 특별한 보호소가 있음이 분명했다. 그 안에서 안전하게 있었는데 비가 흙 속까지 스며들자 불편했던가?, 저리 작은 몸으로 한참을 뛰어야 가로질렀을 콘크리트를 지나 처마 밑까지 어떻게 왔을까? 그리곤 햇볕에 자신의 몸이 마르니 물그릇 속에 물이 들어 있는지는 어찌 알고 뛰어들어 얕은 물로 몸을 적시고 있을까! 생명체가 갖고 있는 생존의 본능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놀랍기만 했다

그렇다면 지렁이도, 달팽이도 지금 노아의 방주 같은 생명 보호소에서 적당한 습기와 기온을 기다리며 나와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오기만 해봐라. 죽음을 위기를 넘기고 나온 그들을 축하해 주는 뜻으로 싸움에도 재미있게 응해 주리라는 생각에 살며시 웃음까지 나왔다.

콘크리트의 갈라진 틈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더 많은 비가 와서 습도가 높아지고, 기온도 따뜻해지면 갈라진 틈 사이로 바람에 날려 들어갔을 많은 잡초의 씨들도 다투듯 싹을 낼 것이다.

뒤뜰을 서성이며 단비가 준 변화를 즐기는 내 머리에 문득 앞 시내가 들어왔다. 가뭄을 이기지 못하고 가느다란 물줄기를 겨우 안고 공원을 휘돌아 나가는 시내가 몹시 궁금해 졌다. 급히 공원을 가로질러 냇가로 뛰어 갔다. 숨찬 가슴을 진정시킬 틈도 주지 않고 내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낸 시냇물!
 

드디어!

시내는 풍성한 물줄기를 안고 있었다. 원래의 모습을 회복한 듯 보였다. 나보다 앞서 날아온 오리떼들이 물위에 앉아 헤엄을 치는 모습이 보였다. 시냇물이 담고 있는 겨울나무 그림자들을 간질이고 있는 듯했다. 오리떼들의 재롱에 행복해진 시냇물은 동그란 물결들을 크게 크게 수면 위에 그려내고 있었다. 시내는 충만한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웃고 있는 듯했다. 단비가 준 웃음을.

그 웃음이 비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모든 곳으로 퍼져 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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