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정(시인, 스리랑카 선교사)

 

오늘도 나는 산책 겸 운동을 했다. 집을 떠나 백여 미터 가서 행길을 건너고 그 행길을 따라 2백여 미터 걸어가다가 우측으로 꺾어지면 바로 코코넛 농장이 나온다. 그 농장을 좌로 끼고 한참을 걸으면 작은 개울이 숲 한가운데 흐른다. 그 개울 옆으로 나 있는 흙길이 내가 매일 운동하는 장소다.
이미 찻길에서는 멀리 벗어나 있고, 마을에서도 멀리 떨어진 곳이다. 백로와 가마우지 그리고 알지 못하는 이름의 새들이 나의 친구다. 가끔 일 미터가 넘는 이구아나가 개울에서 기어 나와 나를 놀라게 하고는 얼른 개울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숲길에서 버석 소리가 나서 가만히 보면 틀림없이 카멜레온이 보인다. 녀석은 교묘하게 제 몸을 숨겨 놓고도 안심이 안 되는지 그만 긴 꼬랑지를 흔들며 도망을 친다. 위장까지 해놓고 도망칠 게 뭐람?
다람쥐가 유독 많이 사는 나무도 있다. 그 둘레가 내 아름으로는 어림도 없다. 한 명 더 데리고 와도 모자랄 듯한 나무 위에는 다람쥐가 많이 산다. 그렇다고 열매가 있는 나무도 아닌데... 그 숲길을 한 바퀴도는 데 빠르면 한 시간 오십 분, 보통 두 시간 걷는다. 대략 왕복 8킬로는 될 듯하다.
산책을 하면서 혹은 운동을 하면서 돈을 챙기는 사람은 없을거다. 그러나 나는 요즘 꼭 돈을 챙긴 다음 운동을 나간다. 돈을 챙기려 하니 난감할 때가 있다. 요즘 운동할 때 입는 옷은 반바지와 반소매 티셔츠다. 바지에 돈을 넣고 운동을 하다 보면 행여 잃을까 염려스러워 아예 양말 속에 질러 놓고 다닌다. 옛날 아버지가 장보러 가실 때 꼭 그렇게 하고 다니셨다.

지난 주 오후의 일이다. 오전에 현지 교회에서 찬양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여느때나 다름없이 운동을 나갔다. 원숭이들이 높은 나뭇가지 위에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응시한다. 행여 자기에게 해코지라도 할 것 같았나 보다. 대나무숲이 흔들린다. 바람이 분다. 독수리는 아직도 하늘에서 선회하고 있었다.
이런 수채화들을 감상하며 나는 마음껏 호흡을 한다. 어떤 때는 백미터 달리기하듯 숨을 몰아쉬고 달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속보로 숨을 고른다. 개울 속에 노니는 물고기들이 팔짝 뛰어 오르다가는 가마우지의 사냥감이 된다. 염소떼가 한가로이 들녘 그늘에 앉아 있다. 웃통을 아예 입어본 적이 없을 것 같은 양몰이 소년은 긴 회초리 하나 들고 싱긋 웃음으로 인사한다.
그렇게 운동하는 길이었다. 그 날따라 그 작은 집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초가집처럼 작고 초라한 집이었다. 갈대잎으로 올린 지붕과 코코넛 나뭇가지로 엮은 담벼락. 마당은 깨끗했다. 그 옆을 지날 때마다 과연 누가 사는지 궁금했던 터라 그 날 나는 집안을 들여다 보았다. 운동하면서 가끔 보았던 노파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작은 사내아이가 어두운 방구석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인기척에 놀란 그는 두려움 반, 호기심 반 섞인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보았다. 물론 그는 나를 안다. 나는 그를 몰라도 말이다. 이 동네에 외국인이라고는 나 하나이기 때문에 아마 나를 모르면 간첩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 동네에 머문 지 벌써 3년이나 되었으니 말이다.
낯선 이방인 손님이 들이닥친 누추한 집안에서 소년은 맨흙바닥에 그냥 엎드린 채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부하는 소년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눈은 커다란 가시에 찔린 듯이 아팠다. 눈물이 핑 솟았다. 새까만 진주 같은 소년의 눈과 마주치면서 나는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소년은 아빠가 만들어 준 송판짝 노트에 구구단 연습을 하고 있었다. 노트장 크기 만한 송판에 검은 색 페인트칠을 하고, 그 위에 학교에서 주워온 분필 조각으로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노트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연필은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역시 고개를 저었다.
티벳을 여행했을 때에도 그곳 학교에서 똑같은 광경을 보았다. 그 때 나는 여행 경비를 떼어내 그 학교에 책상과 걸상을 만들어 준 일이 있다. 책상과 걸상이 없어서 마대자루를 뜯어 펼쳐 놓고 학생들은 그 위에 엎드려 수업을 들었다. 그들도 이 소년과 똑같이 송판짝 노트를 사용하고 있었다.
소년에게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운동복 차림으로 나온 나는 아무 것도 줄 게 없었다. 애석한 마음에 소년의 머리를 당겨 보듬어 주고는 그냥 나왔다. 그때 소년은 부엌으로 달려가 빼빼 마른 바나나 세 송이를 내 앞에 내밀었다. 바나나 끝이 검게 썩어가고 있었지만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내일 다시 올게.”소년은 그 말을 못 알아 들었다. 꼭 알려야 할 필요도 없었다. 나 혼자의 생각만으로 족했다.  다음 날 오후, 백 루피 지폐 2장을 지금처럼 양말에 질러 넣고 어제의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소년의 집에 빨리 가고 싶었다. 소년은 여동생을 엎고 있었다. 발가벗은 채 등에 엎힌 여자 동생은 나를 보자 울었다. 내가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자 더 거세게 울었다. 소년은 나에게 미안했던지 방으로 달려가 동생을 내려 놓고 혼자 나왔다.
나는 백 루피짜리 지폐 두 장을 소년의 손에 쥐어 주었다. “너 이걸로 공책하고 연필 사서 공부해. 알았지? 엄마나 아빠가 달라고 해도 주지 말고... 다른 데 쓰지 말고 꼭 연필과 공책을 사야 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아마 내 부탁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2백 루피를 어른들이 보면 어떻게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차라리 노트와 연필을 사다 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어떻게 사용되든 그들 삶의 몫이었다. 마음으론 제발 그 돈만은 꼭 소년의 연필과 노트를 사는 데 사용되기를 바랬다.
오늘도 나는 지폐 두 장을 양말  속에 질러 놓고 운동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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