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2-26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종말과 인류의 파멸을 예고합니다. 지금 인간의 손에 들려 있는 가공할 무기에 의해 부모와 형제도, 귀여운 어린이들도 모두 죽는다는 것입니다.

종교교육 전문가들의 모임에 강사로 초빙된 한 부인이 충격적인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내 자녀들이 세상에서 제대로 자라 어른이 되리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 어머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자녀들에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뿐입니다.” 한 교육학자는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만일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만 하면 내일 세상이 망해도 걱정 없다는 말은 옳습니까?”

이 말은 옳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모든 피조물에 대한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은 완벽합니다. 인간의 어떤 반항도 하나님의 계획을 가로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악을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패배한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그 패배를 완전한 승리로 바꾸셨습니다. 설령 핵전쟁으로 온 세계가 파괴된다 해도 하나님은 그것을 결국 승리로 바꾸어 놓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보장된 승리를 확신하며 사는 존재입니다. 그런고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걱정이 없다.”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한편 이 말은 틀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인도 세상의 것을 쓰며 세상에서 삽니다. 살아 있는 한 세상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책임의식을 느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의 2세들이 살아갈 세상이 어떤 종류의 세상이 되느냐 하는 것은 오늘 우리 어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만 믿으면 이 세상이 곧 망해도 상관없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어린아이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어린이들과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이 일을 방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이나, 돈과 재물을 우선순위로 삼는 것이나, 환경을 파괴하고 자원을 낭비하는 것 모두 하나님과 어린이 사이를 가로막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어린이들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볼 때, 바람과 구름과 태양과 동물을 볼 때, 불과 물과 음식을 볼 때, 하나님의 선하심을 발견하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어린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길을 막는 장애물들은 무엇입니까? 교만, 탐욕, 서로 물고 찢는 경쟁심, 이웃에 대한 무관심, 고집과 독선, 이런 모든 것들은 어린이들이 예수님께 나오는 길을 막는 장애물들입니다. 우리가 어린이들에게 보여 주는 이런 천하고 추한 것들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어린이들의 눈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막 10:15).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속에서 “나라이 임하옵시며”를 수없이 외웠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온 땅을 가득 채울 날이 올 것입니다. 어린이와 같이 천진난만한 소망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소망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소망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 전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멸망에 대한 공포는 전염병과 같이 온 세상에 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무서운 종말병을 치료할 수 있는 비방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권면하십니다. “사랑이 철철 흘러넘치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 약속을 순진무구한 어린이처럼 받아들여라.”

한 가족이 국립공원으로 휴가여행을 갔습니다. 셋째 날 저녁, 세 살 바기 패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식구들은 흩어져 패티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며 숲속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숨가쁜 긴장과 공포의 몇 시간이 흐른 후 천만다행하게도 패티는 무사히 아버지의 품에 안겨 돌아왔습니다. 어린 패티가 아버지의 목에 매달리며 말했습니다. “아빠, 날 찾아서 기쁘지요?”

패티의 아버지는 잃어버린 딸을 찾아 헤매면서 아버지로서의 중대한 책임과 역할을 실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패티의 아버지가 어린 딸을 찾았을 때의 절박하고 지극한 관심이 그 후에도 변함없이 지속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20년 후에도 패티의 아버지는 여전히 딸을 찾은 기쁨을 맛보고 있을까요? 그렇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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