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생물중에 바다거북이라는 동물이 있습니다. 성인이 된 바다거북이는 천적이 없어 상어와도 싸울 정도로 용감하다고 합니다. 두꺼운 껍질 속에 목과 다리를 숨기면 어떤 공격으로부터도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바다거북이의 자연수명은 약 100년 정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장수의 복을 누리는 바다거북이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보통 바다거북이의 암컷은 힘든 짝짓기의 과정을 거친 후 수천 킬로미터를 헤엄쳐 육지로 올라갑니다. 모래사장에 구덩이를 파고 한 번에 100여 개 많게는 200여 개의 알을 낳습니다. 두 달여의 시간이 지나면 알들은 부화합니다. 깨어난 새끼들은 자신들이 살아가야 할 바다를 찾아 발버둥치며 기어갑니다. 하지만 새끼로 태어나 바다까지 살아서 가는 바다거북이는 약 5~8%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온도나 환경조건이 맞지 않아 아예 부화되지 못하기도 하고, 천적에 의해 알이나 새끼인 상태로 잡혀먹기도 합니다. 가까스로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해도 대부분은 성장 과정 중에 외부의 공격이나 환경에 의해 죽습니다. 연구에 의하면 약 0.1%의 거북이만이 1백여 년의 수명을 누린다고 합니다. 1천 마리 중에 1마리 정도라는 뜻입니다. 자연상태에서 끝까지 살아남는다고 하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 일인 듯합니다.

비율에 차이가 있지만 인간도 예전엔 많이 죽었습니다. 주거환경이 개선되고 과학과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생존율이 높아진 것은 불과 몇십 년 전부터입니다. 생물학적 의미의 생존율만큼이나 관심이 가는 것은 사회학적 또는 목적론적 의미에서의 생존율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꿈을 잉태하고 출발선에 섭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꿈은 출산을 경험하지 못하고 머릿속으로만 품다가 사라집니다. 또 출산했지만 진행과정에서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해 좌절 또는 도태되고 맙니다. 끝까지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은 많지 않고 달려간 사람들 중에서 꿈을 이룬 사람들은 정말 소수에 불과합니다.

영적인 삶도,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했을 때, 3백여 명이 목회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각자 열심히 사역해 왔고 이제 교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주위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목회를 그만두는 동기들이 있습니다. 불미스러운 일로 불명예 퇴진을 한 친구도 있습니다. 돈과 섹스와 권력의 유혹에 넘어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사람들도 있고, 겉으로는 태연히 목회를 하고 있지만 내면적으로 소명의식과 순수한 열정이 고갈되어 탈진한 사람도 있습니다. 목회지가 없는 친구도 있고, 사명감보다는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목회를 하고 있는 사람도 보입니다(이것이 잘못된 정보이자근거없는 착각이길 바랍니다.)

제게도 그런 모습들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이른바 거룩한 일을 위해 신학교를 들어갈 당시에는 시작이 어렵지 결국에는 반드시 승리하고 풍성한 열매가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영혼과 마음은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순수함에는 이런저런 색이 덧입혀져서 원색은 사라졌습니다. 이런 상태로 끝까지 제대로 달릴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눈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면 한눈 팔지 않고 매순간 영적 전쟁에서 마음을 지키며 묵묵히 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역자들, 거룩한 습관이 이제는 인격과 삶이 되어 어떤 공격과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동료들이 보입니다. 시련은 겪었지만 그 과정에서 내공이 생기고 사역의 능력이 향상되어 하나님 나라를 위한 멋진 발자국을 남기는 5%의 동역자들도 보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끝까지 살아남아 처음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오늘은 어제의 결과이니 어쩔 수 없지만 내일은 오늘의 결과일 터이니 오늘 우리의 선택으로 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어떤 천적도 건드릴 수 없는 위엄과 능력을 가지고 삶과 영적 전쟁의 현장을 지휘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자신을 점검하고 첫 마음과 목적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품어봅니다. 그리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에 개입하셔서 도와 주시고 인도하시는 그분의 은혜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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