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on Spirituality 50

 
오늘은 소설 한 편을 묵상합니다. 얀 마텔이라는 작가가 쓴 『파이 이야기』라는 제목의 소설입니다. 『파이 이야기』는 얀 마텔이 2001년에 출판한 소설로, 노벨문학상처럼 권위있는 영국의 부커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파이 이야기』는 전세계 41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고, 1천만 부가 넘게 판매되는 초대박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역대 부커상 수상작 가운데 최고의 매출 부수를 자랑한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또한 『브록벡 마운틴』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던 대만 출신 리안 감독에 의해서 2012년에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영화 제목은 소설의 원제목인 『Life of Pi』입니다. 이어령 교수는 영화 『라이브 오브 파이』를 속으로 눈물을 흘리게 하는 좋은 영화라고 찬사를 보냅니다. 겉으로 눈물이 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감동으로 어금니를 꽉 깨물게 되고, 속으로 울게 되는 영화라는 것입니다.

생명, 그 치열함

『파이 이야기』가 어금니 뻐근해지는 감동을 주는 이유는 이 속에 생명에 대한 치열한 씨름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파이라는 소년이 인도의 한 마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납니다. 파이는 종교적인 감수성이 예민하여서 어린 나이임에도 신을 찾는 깊은 영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아버지가 여러 이유로 동물원을 처분하고 인도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가면서 생깁니다. 태평양을 횡단하는 화물선에 동물들을 실고 파이의 가족 전체가 캐나다를 향해 기나긴 항해를 떠나는데, 그만 태평양의 망망대해에서 태풍을 만나 배가 침몰하고 맙니다. 풍랑 속에서 파이 혼자 가까스로 구명보트에 오르지만, 그 구명보트에 얼룩말, 오랑우탄, 하이에나, 그리고 벵골 호랑이도 같이 타게 됩니다. 음식이 없는 구명보트에서 굶주린 하이에나가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잡아먹고, 마침내 호랑이가 하이에나를 잡아 먹어, 결국 구명보트에는 파이와 호랑이 둘만 남게 됩니다.

불과 8m 길이의 구명보트 안에 가족을 잃은 열여섯 살의 소년과 호랑이 한 마리만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소년과 호랑이의 기묘한 동거는 무려 227일 동안 계속됩니다. 227일 동안 태평양을 표류하면서 파이는 참을 수 없는 허기와 목마름을 이겨내야 했고, 한낮의 강렬한 태양을 견뎌내고, 때때로 찾아온 비바람과 폭풍과도 싸웁니다. 그 속에서 수만 마리의 날치들의 비행을 만나고, 식인섬에 머무르기도 하면서 파이와 호랑이의 표류가 227일 동안 지속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파이와 호랑이가 탄 배가 멕시코의 한 해안에 도착하면서 이야기가 끝납니다.

『파이 이야기』는 한 마디로 소년과 호랑이의 기적적인 표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파이 이야기』를 흔히 『걸리버 여행기』나 『로빈슨 크루소』에 비교되는 모험소설로 소개하지만, 모험을 넘어서는 삶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파이 이야기와 똑같은 삶을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도 한국에서의 모든 삶의 터전을 버리고 미국이라는 땅으로 이민을 오면서 이 낯선 땅에서 살아내기 위해 겪어야 했던 삶의 풍랑과 문제가 얼마나 많습니까? 파이가 견뎌낸 치열한 삶의 이야기에서 두 가지 메시지를 함께 묵상하려고 합니다.

호랑이와 함께 살아가기

첫 번째는 호랑이와의 기묘한 동거입니다. 파이는 구명보트에 호랑이와 단둘이 남게 되면서 처음에는 호랑이를 없앨 방법만을 연구합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호랑이를 살려두기로 결심합니다. 처음에는 어떨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습니다. 열여섯 살의 소년이 호랑이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고,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두자니 배고픈 호랑이가 자신을 잡아 먹을 것이 뻔합니다. 그래서 소년은 호랑이에게 물고기를 잡아 주고, 바닷물을 증류해서 물을 가져다 줍니다. 처음에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 호랑이를 돌보았지만, 나중에는 호랑이 때문에 자신이 살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파이가 227일 간 표류하면서 외로움 때문에 죽지 않고, 절망 때문에 죽지 않았던 것은 바로 호랑이와 씨름하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파이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를 진정시킨 것은 바로 호랑이였다. 이 이야기의 아이러니가 바로 이 대목이다. 무서워 죽을 지경으로 만든 바로 그 장본인이 내게 평온함과 목적의식과 심지어 온전함까지 안겨 주다니.” 이것은 대단한 표현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위협했던 호랑이가 오히려 소년에게 평온함과 목적의식, 심지어 온전함까지 가져다 주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배 안에도 호랑이와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위협하고 힘들게 하는 어떤 것입니다. 병약한 가족을 돌봐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힘들게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이기도 하고,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건강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감당하고자 애를 쓰는 동안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호랑이를 없애야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끌어안아야 내가 삽니다. 이것을 끌어안고 가는 동안에 역설적으로 삶의 목적의식과 온전함이 생깁니다. 이 역설이 삶의 신비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셨던 것처럼, 우리도 삶의 무거운 짐을 부드럽게 안고 가는 지혜를 소유해야 합니다.

삶의 배에 함께하시는 주님

『파이 이야기』에서 묵상할 또 다른 메시지는 구명보트 안에 있었던 또 다른 존재입니다. 분명 눈에 보이는 존재는 소년과 호랑이뿐이었지만, 파이는 표류 일기에 이렇게 적습니다. “구명보트에는 가벼운 옷차림에 신발 한 짝을 잃은 소년 한 명, 벵골 호랑이 한 마리, 밖에는 바다 하나, 그리고 신 한 명.” 이것이 참 인상적입니다. “바다 하나, 그리고 신 한 명.” 소년은 구명보트 안에 하나님이 함께 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설에는 소년이 구명보트 안에 함께하는 하나님을 붙잡는 대목이 많이 등장합니다. 특별히 소년이 탄 배가 멕시코의 해안에 도착할 때 소년은 자신의 여정을 돌아보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끊임없는 고난 속에서 슬프고 절망적일 때, 나는 신께로 마음을 돌려야 했다.” 이것이 소년이 227일의 표류를 견디어낼 수 있었던 힘입니다. 끊임없는 고난 속에 슬프고 절망적일 때, 그 배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저는 『파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요한복음 6장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있던 제자들이 탄 배에도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어납니다. 풍랑을 만나 두려움에 사로잡힌 제자들을 향해 예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이제 제자들이 할 일은 풍랑을 보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배에 함께하고 계시는 예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의 파도와 바람은 여전히 거칠게 일어나지만, 이제 그들이 탄 배에 함께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면서 이들의 마음에는 평화와 기쁨이 찾아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얼마나 많은 삶의 풍랑이 일어납니까? 삶의 풍랑을 만나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우리가 할 일은 인생의 배에 함께하고 계시는 예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 삶의 풍랑 속에서도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발견합니다. 요한복음 14:27 말씀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오늘 『파이 이야기』를 묵상하면서 이 소설에 담긴 넘치는 생명력은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배 속에 함께하시는 주님을 늘 바라보며, 삶의 짐을 끌어안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독자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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