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 월요일 아침.
전화 벨 소리가 요란했다. 누군가 시계 앞에 앉아서 가게 문을 열 시간을 기다리다가 ‘땡’ 하자 걸었나보다 생각하며 전화기 옆으로 뛰어갔다. 가까운 곳에 계신 집사님이었다. 근 삼십 년을 가족처럼 지내는 분, 달뜬 목소리엔 포르르 날아오르는 종달새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경쾌한 탄력이 붙어 있었다. “나 무엇했나 물어봐요!”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새벽에 일어나 냉장고를 열고 냉동실부터 냉장실 모두를 다 뒤집어 청소했어요. 너무 개운해서 자랑하고 싶어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내 얼굴에 함빡 웃음이 일었다. “그렇게 좋으세요? 이제 그 댁 냉장고는 새벽마다 속 뒤집히는 곤욕을 치르겠네요!” 큰 웃음소리와 함께 놀렸다.

은퇴하신 그분은 첫날을 그렇게 맞으셨다. 1950년 7월 생, 66세가 되는 2016년 7월 31일까지 일을 했다. 긴 세월 동안 일했던 직장에서 이젠 그 자리를 내 주어야 했던 것이다.

돌아보면 이민자들 모두의  삶은 살아온 길이만큼 긴 사연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35년 전, 갓 돌잔치를 마친 아들을 데리고 남편 따라 미국에 들어왔다. 점잖고 능력이 있었던 남편은 행복하고 편안한 생활을 제공해 주었다.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었던 그녀의 삶. 여왕도 부럽지 않았다고 한숨과 함께 말하곤 했다.

그러나 드라마 속처럼 편안하고 보드랍던 생활은 갑작스런 남편의 배신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그 꿈 같은 세월이 7년이었다던가! 8년이었다던가! 남편이 떠나면서 세상 속에 덜렁 내동댕이쳐진 자신을 보고 말았다고 했다.

아무 능력 없었던 작은 동양여자에겐 열 살도 되지 않은 아들과 함께 견디면서 어떻게든 살아나가야 할 현실만 남아 있었다. 절망할 겨를도 없었다고 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했다. 초롱초롱한 아들의 눈망울을 보면 한숨을 쉴 사치도 눈물을 흘린 여유도 없었다.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식당일도 청소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소규모의 일자리들은 두 모자의 삶을 해결해 줄 수 없었다. 그녀와 아들에겐 건강보험이 필요했고,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했다.

어렵사리 찾은, 규모를 갖춘 일자리가 있었다. 일꾼들의 복지를 준비해 준 회사. 바로 지금까지 일했던 컵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플라스틱 녹이는 열기는 숨이 막혔고, 냄새는 견디기 힘들었다. 거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하루 24시간 가동되는 공장이라 밤과 낮을 바꿔가며 일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일을 못할 이유가 전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을 교육시킬 든든한 바탕이 되어 주었다.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때론 아침 6시에, 오후 3시에, 때론 11시에 시작되는 어떤 시간대에도 출근 한 시간 전에 회사에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장 안에선 성실한 자로 모두 인정해 주었다. 그런 인정은 성품이 거친 사람들도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않게 해주었다. 그리곤 힘들다는 공장 안 모든 제도와 일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한 길로 보낸 세월, 이제 은퇴를 한 것이다.

그러는 동안 어렸던 아들은 그 엄마의 성실함을 따라 온힘을 다해 박사가 되었다. 아들이 박사가 되던 날, 잔치를 벌였다. 아들이 쓴 논문을 꼭 끌어안고 앉아 있었다. 고맙게도 아들은 간간이 엄마의 희생과 사랑을 잊지 않고 살아갈 것을 약속했다. 약속대로 자기 분야에서 성실하게 한몫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또 배필을 만나 선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었고 엄마에게 귀염둥이 손자까지 안겨 드렸다.

집사님의 숙제는 끝났다. 아들은 틈 있을 때마다, 힘든 직장생활을 그만둘 것을 권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몸에 배어 이젠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일. 그만둔다고 별다를 게 없으니 건강과 환경에 문제가 없는 한 쉴 수 없다고 지금까지 일자리를 지켜 온 것이었다.

은퇴를 했으니 날마다 시간이 주체하기 어려울 만큼 넘칠 것이다. 어쩌자고 그 새벽에 일어나서 냉장고를 뒤적였을까?

이민 생활에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루도 쉬어 보지 못하신 집사님! 혹 무료함이 몰려올까 일을 찾을 거라고 했다. 오랜 직장 생활 끝이라서 노후의 경제적인 걱정은 없으리라.  맨손인 그녀에게 살 터전을 내어 주었던 세상에 봉사로 작으나마 은혜 갚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그녀의 성실함이라면 어디서든 환영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얼마 전, 가을이 시작되는 9월 초, 오래 전에 헤어진 친구가 편지를 보냈다. ‘친구여. 세월은 누구에게나 녹녹치 않았음을 알 만한 나이가 되었다. 돌아보면 멀고도 험난한 세월, 그 길을 자네는 어떻게 걸어 왔던가!’
이 대목에서 뭔가가 울컥 치밀고 올라와 한동안 손으로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냉장고를 다 치우고 난 후 그녀에게도 누군가가 나란히 앉았으면 좋겠다. 험난한 세월 속 걸어온 이야기를 몇 날 두고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그리고 냉장고 속 뒤집듯 개운하게 자신의 속 뒤집어 내는 사연을 오래도록 싫증내지 않고 들어 줄 수 있는 친구가 그녀 곁에 많았으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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