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2월 중순에 울목회 송년 모임을 가졌다. 울목회는 서울대학교 동문목회자협의회의 약칭이다. 숭실대 출신들은 숭목회, 연세대는 연목회라 약칭하니까 당연히 ‘서목회’여야 하지만, 굳이 두 번째 글자를 따서 울목회라 했다. 목회는 감성적 영성파가 되어야 해낼 수 있는데 서울대 출신들은 대체로 지성적 신학파가 많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려야 기쁨으로 거두게 된다”(시 126:6)는 뜻이다.

모두 12명이 모였다. 점심식사 친교를 하면서 환담, 덕담, 은담을 주고받았다. 그런 다음 넓은 태평양을 바라보며 산책도 하고, 커피 한 잔씩 하려고 리돈도비치 부둣가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뜻밖에도 이명박 전 대통령 일행을 만났다.

“이 장로님, 반갑습니다. 저희는 서울대 출신 동문 목회자들입니다.”

“아이고, 조용히 다녀가려고 했더니 목사님들을 뵙게 되었네요. 저 커피 집에 함께 가시지요.”

그렇게 반색을 했다. 이명박 장로께서는 기꺼이 사진을 함께 찍으셨고, 파도 소리가 철렁철렁 울려 퍼지는 한인 경영 커피 하우스에 들어가 커피 값도 냈다. 글쓴이가 마침 그분과 합석하게 되었다. 그래서 또 한 번 환담, 덕담, 은담을 나누었다. 한창 복잡한 한국 정치 이야기는 서로 피했다.

“서울에 가면 청계천 구경을 꼭 합니다. 옛날에는 코를 틀어막고 가야 했는데 지금은 맑은 물이 흘러가는 걸 보면서 이 장로님 서울 시장 때의 생각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좋은 일 하셨습니다.”

한국인의 두뇌와 마음에도 청계천처럼 깨끗한 물이 흐르면 좋겠다는 뜻을 덧보탰다.

“그것의 연장이 사대 강 사업인데 아직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러면서도 얼굴은 즐거운 표정이었다.

“대통령 재임 시 이 장로님께서 대한민국의 무역 영토가 넓어졌다는 말씀을 하셨지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의 귀에는 그것이 바로 한국교회의 선교 영토를 더욱 확장시키라는 하늘의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그렇게 말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대화를 독점해서는 안 되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짧은 만남이 끝날 무렵 이렇게 권면했다.

“잘 아시겠지만 카터 전 미국 대통령처럼 퇴임 후에 역사에 남을 더 큰 일을 하셨으면 하고 기대하고 또 기도합니다.”

덕담과 은담을 하는 자리라서 그분에 대한 비판적 이야기들은 물론 꺼내지 않았다. 그분은 감사하다면서, ‘한국의 전직 대통령이 몇 분 안 남았다’는 말로 대신했다. 민선 대통령으로는 노태우와 이명박 둘 뿐이고, 그것도 활발한 활동은 자신의 몫이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러나 실상 은퇴 후에 더 큰 일을 하자는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보다는 나 자신을 깨우치시는 하늘의 음성이었다. 그래서 현직 목회보다도 은퇴 목회가 더 아름다워야 한다는 결단을 또 한 번 되새겼다.

(대표 저서 : 『목회자의 최고표준 예수 그리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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