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이 절경이라는 것은 모두가 잘 안다. 꼭 현장을 보아서가 아니라 태고적부터 내려온 금강산에 대한 찬사가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사진이나 그림을 보며 절경임을 짐작해 보지만, 현장에 직접 가서 눈으로 보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기회만 있다면 누구라도 가보고 싶은 마음 한결같으리라고 본다. 그래서 유람선이 띄워지기가 무섭게 만원을 이루었고 자리가 모자라서 그렇지 앞으로도 손님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처음부터 동해안에 금강산 유람선을 띄운다는 것이 불안했고 시기적으로 때이른 나들이로 여겨지기도 했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바로 그곳으로 북한 측은 잠수함들을 띄워 간첩 활동을 하는 한편 양민을 학살하고 온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50년 가까이 한국 정부가 해내지 못한 일을 민간, 그것도 한 재벌 회사가 해낼 수 있었던 그 이면이 궁금한 것이다. 도대체 무슨 교섭이 내면적으로 있었을까? 어느 특정인이 소 수백 마리를 북으로 몰고 간 것이 50년의 한을 풀 수 있었던 길이었나? 북한은 겨우 소 몇 백마리에 달팽이처럼 50년 가까이 오그리고 있다가 머리를 내민 것일까?

이러한 추측은 전문 지식 없는 무식의 소치일 수 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으나 언젠가 무슨 일이 일어나지나 아니할까 불안하던 차에 서부전선에서 함포 교전이 일어났고 양측이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다행스럽게도 더 크게 확산되지 않아 한숨을 돌리기도 했다. 그런데 서부전선의 함포 사격 후 포신이 채 식기도 전에, 직경 100마일 남짓 되는 동해안에서 신이 난 승객들이 호화 유람선에 몸을 싣고 뱃노래를 부르며 유유히 북한의 금강산으로 간 것이다. 그리고 승객들이 관광을 다 하고 귀국할 무렵 민 여인이라는 한 여성이 북측에 억류되는 바람에 온 나라가 뒤집혔다. 결국 이 사건으로 북한은 본색을 드러냈고 그들의 저의를 일부 노출시킨 것이 틀림없다. 앞으로 기회만 있으면 제 이, 제 삼의 억류를 꿈꾸며 골탕을 먹이려는 수법이 훤히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건수만 생기면 그것으로 억지를 부려 한국을 비롯 주변국들의 코를 꿸 심보가 충분하다.

그래도 금강산을 향해 유람선을 띄워야 하나? 그리고 소위 햇볕 정책이라는 애매모호한 정부 방침을 언제까지 고수할 것인지 궁금하다. 물론 내막을 바로 알지 못하기에 이러한 표현을 쓸 수밖에 없지만 햇볕을 아무리 쪼여도 북한은 옷을 벗지 아니하리라는 황장엽씨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북한의 극악한 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양민 학살과 반 정권자들의 잔인한 숙청을 감행하면서 더욱 조이며 움추려 들지나 아니할까 염려된다. 움추리고 더욱 오그라들다가 어느 한계점에 다다르면 걷잡을 수 없는 폭발로 더 큰 위기가 올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우리는 더 큰 인내로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0,21)는 진리의 말씀을 이루어야 한다. 그렇다고 목전의 이익만을 챙기기 위해 공의와 정의를 저버리면서까지 상대방의 배를 채워 줄 수는 없지 않을까? 그것도 허기져 죽어가는 어린이들이나 노약자,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 아닌 이리들처럼 백성의 살을 뜯어내고 껍질을 벗기며 피를 빠는 관료직 고위층들의 배를 말이다.

말을 맺는다. 한국 정부는 보다 명확한 대 북한 정책으로 국민들에게 납득이 가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정부는 한쪽에서는 전쟁을 하고 한쪽에서는 유람선을 띄워야 하는 이유를 밝혀야 한다. 즉 유람선을 띄우려면 전쟁 도발 행위를 못하도록 하던지 자신 없으면 유람선을 중단하던지 하는 것이 덜 혼선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차제에 우리 교우들은 바로 그 언덕 너머에 기근으로 피골이 상접한 북한 주민과 어린이들, 노약자들이 무수하게 있음을 상기하여 유람선 타고 금강산을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이를 참는 것이 미덕이 되지 아니할까 생각된다.  (772호, 1999년 7월 4일)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