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남한은 움러들 대로 움츠러든 북한에 제법 장자답게 형님 노릇을 하려고 매우 애쓰는 모습이다. 햇볕 정책으로 경색되었던 남북관계를 부드럽게 풀어보려는 정부의 시도와 민간 차원에서는 굶주린 북한을 위해 최대한 동포애를 발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북송해온 것이 그렇다.

지난 16일에는 정주영씨가 소 1,000마리 중 1차 분 500마리를 몰고 육로를 따라 판문점을 통해 거의 반세기 만에 평양을 방문, 국민들은 마치 통일이 금방 이루어질 듯하여 감격스럽고 벅찬 가슴으로 설레었을 때 어이없게도 북한 잠수정 한 척은 20일 오후 6시 30분 원산 황토섬을 출발 독기 어린 눈으로 캄캄한 고성 앞바다 밑을 후비며 대한민국 앞마당까지 침투했다.

이번 잠수정 침투는 지난 96년 무장 잠수함 침투 사건의 재현으로 북한의 적화통일이라는 무력 도발 정책에 하나도 변화된 것이 없음을 만천하에 또 다시 드러냈다. 96년도에도 그랬듯 남한은 굶주린 북한 동포를 돕기 위해 온갖 정성을 모아 쌀과 옥수수를 보냈으나, 바로 그 식량을 군량미로 전용, 잠수함을 침투시켰던 일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번에도 똑같은 일을 반복, 화해와 축제 분위기 속에 소 500마리를 대로로 몰고 가는 동안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해저 깊은 곳으로 적화통일의 야욕을 가득 싣고 유유히 남침을 해온 것이다.

그간 남한은 여러 차례 북한에 대한 정책을 바꾸었다. 어떻게든 6.25와 같은 끔직스런 동족 상잔을 막아보자는 최선의 처방으로 북한의 비위를 되도록 거스르지 않고 상호 평화 통일을 하자는 원칙 아래 접촉을 시도해 왔다. 그래서 문민정부 이후 대북 감정을 크게 완화시키려는 노력이 눈에 띠기도 했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햇볕 정책을 강조하고 나섰다. 심지어 이 정책으로 말미암아 금번 사건조차도 은폐 및 축소시키려 하고 있다는 의혹마저 받아가며 말을 아끼고 있다는 것이 일반 보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햇볕을 아무리 강하게 내려 쪼이더라도 상대가 가면을 쓰고 있는 한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점이다. 상대가 밀실에서 온갖 공작을 하기로 작정하고 흉계를 꾸미고 있는데, 점잔을 빼며 형님 노릇만 한다 해서 밀실 공작대들이 가면을 훌훌 벗어 던지고 뛰어나오리라는 기대는 망상에 불과하다. 현 김정일 정권을 보라. 동족 3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고 이곳 저곳에서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파다한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큰 소리만 치고 있지 않은가. 열성 당원이 아니면 모두 죽어도 좋다는 그들의 양심이 과연 햇볕에 나올 수 있겠느냐 말이다.

우리는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나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요 3:30)라는 성경 말씀을 외면할 수 없다. 유화정책으로 상대방을 끌어낸다는 방법론에 반대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방이 가면 속에서 온갖 궤계를 꾸미고 있는데 햇볕 정책이 얼마나 효력을 거둘 수 있을지는 금번 사건을 보더라도 예측하기 어렵다.

우선 북한의 김정일을 포함 위정자들은 최근 무죄한 백성 300만 명 이상을 굶겨 죽인 집단 살인죄를 시인하고 이에 타당한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그리고 6.25의 전범자로 수많은 생명들을 무참하게 죽인 것과 반세기가 가까워지도록 뭇백성을 생이별하도록 한 죄, 그리고 지금도 남한의 수많은 생명을 살상해서라도 적화통일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살인적 범죄를 철저히 뉘우치고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햇볕으로 나올 리도 없고 또 나올 수도 없는 것이 성경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최후 심판은 하나님이 하실 것임을 명심하자. 남한이나 북한이나 구분 없이 죄를 회개치 않은 백성은 망하도록 되어 있음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역사 속에 나타난 증거이기도 하다. 그 누가 감히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거역하며 불의 심판을 피하겠는가?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흔적을 얼마든지 볼 수 있지 않은가? 오늘 남과 북 모두 하나님 앞에서의 철저한 회개만이 남북한 모두가 살 수 있는 최선의 길임을 명심하고 순종해야 할 것이다.(729호, 1998년 7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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