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벅! 저벅! 저벅!

서쪽으로 기울어져가는 이른 겨울의 햇빛을 받으며 서 있는 길 건너 식품점. 그 주차장에 정복을 입은 건장한 경찰관 네 명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중 두 명은 오른쪽 허리 근처, 권총이 놓일 만한 자리에 손을 고정시켰다. 왼팔을 크게 흔들며 성큼성큼 큰 보폭은 거침이 없어 보였다. 왼쪽 허리띠 근처에 무언가가 막대기처럼 흔들렸다. 차가 듬성듬성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도 석양빛 속에서 긴장한 듯 보였다. 가게 문 밖의 콘크리트 바닥엔 마른 낙엽이 싸르르 ~ 싸~ 아 야단스런 소리를 내며 마음을 졸이고 있는 나를 더 심란스럽게 하였다.

길 건너 이쪽, 가게 안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던 나는 본능적으로 허리를 구부리며 유리창 밑의 낮은 담에 몸을 숨겼다. 두려움 속에서도 궁금함을 어찌할 수 없어 빠끔히 이마를 창에 대고 다시 내다봤다.

정복 경찰관이 네 명씩이라니! 필시 길 건너 식품점 안에선 지금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모습이 가능한 한 조금만 드러나게 문기둥 쪽으로 살금살금 옮기며 긴장을 했다. 머릿속엔 식품점 안에서 일어난 일, 아니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하여 순식간에 많은 장면들이 왔다가 가곤 했다. 누군가가 부리는 난동에 경찰이 네 명씩이나 필요했던가보다. 한두 사람이 아닌 넷이라는 숫자가 두려움을 더해 주었다. 혹시 무기를 들고 대치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범인이 영화 속에서처럼 도망하여 길 건너 이쪽으로 온다면? 그리하여 혹, 나를 인질로 삼는다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무서워서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벽으로 내 시야를 차단하고 있는 건물 저쪽 안에서 상상도 못하는 더 큰 일이 일어나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궁금증을 더해 줘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시간도 느리게 흘러가는지 고요하기만 했다.

미국 내에서 범죄율이 높기로 유명한 이곳에서 삼십 년 넘게 가게를 지키고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험한 사태는 아직 만나지 않았다. 내가 이 도시에서 가게를 한다고 하면 다른 지역의 지인들이 되레 걱정을 해준다. 어떻게 그리 험한 지역에서 살고 있냐고. 그럴 때마다 난 대답했다. 통계는 통계일 뿐이라고 장담했다. 빈번한 사고도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뿐. 내 주변은 늘 하나님께서 생명싸개로 단단히 싸주신다고 자랑했다. 다윗의 아내 아비가엘이 사용했던, 내가 좋아하는 단어인 ‘생명싸개’ (사무엘상 25:29)를 인용하며 자신 있게 말했다. 친구는 “너무 큰소리치지 말고 조심해라. 세상일은 알 수 없는 거니까.” 걱정해 주기도 했다. 친구의 염려대로 내 눈앞에서도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니!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많은 나쁜 일들을 상상해 가며 떨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저녁때가 가까운 시간이니 식품점에 들락거리는 사람들도 있으련만 내 상상을 방해하지 않으려 했는지 그땐 그저 고요하기만 했다. 오금이 저려왔다. 시선을 그곳에 고정시키고 절뚝거리며 뒷걸음질로 의자를 찾아 앉아서 저린 다리를 펴고 두들겼다.

그때 식품점의 출입구가 활짝 열렸다. 절도 있게 저벅거리며 들어갔던 정복 차림의 경찰들이 식품점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긴장을 놓지 않았던 내 눈과 한동안 쉴 줄 모르고 머릿속을 차지했던 위험천만의 생각을 비웃듯, 가득 물건을 담은 쇼핑 카트를 한 사람이 밀고 나머지는 그 옆에서 웃고, 떠들면서 걸어 나왔다.

가뿐 가뿐 가뿐.... 분명 모두가 들어갈 때와 같은 자세, 오른손은 권총이 달려 있을 허리춤을 잡고 나오고 있었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발걸음은 가볍게만 보였다.. 무시무시한 상상 속에서 내가 빠져 나오는 순간이기도 했다. 완벽한 반전. 난 드디어 고개를 쳐들고 크게 입을 벌려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내 눈에 비친 그들의 걸음은 기쁜 일을 맞으러 가는 아이의 발길처럼 경쾌했다. 비발디의 사계 중에서 겨울의 첫 곡인 ‘Allegro non molto’를 그들의 발목에 붙여 주면 참 어울릴 듯해 보였다. 가뿐 가뿐 가뿐... 긴장이 풀린 내 귓속으로도 그 멜로디는 파고 들어오는 듯했다.

몇 분 전과 똑같이 청명한 하늘, 서쪽으로 지는 해는 하늘에 붉디붉은 물감을 풀어 성글게 펼쳐진 구름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콘크리트 바닥 위의 낙엽 구르는 소리조차 긴장감을 더해 주던 조금 전의 풍경과는 반대로 들렸다. 큰 나무들이 어우러진 공원은 어딘가에서 바람을 데려와 웃음 소리를 내며 걸어가는 경찰들 머리 위에다 흥겹게 잔가지들을 흔들어 주는 듯했다.

순간, 난 빳빳한 긴장으로 저벅 저벅 왔다가 가뿐 가뿐 가는 경찰들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의 생각에 휘말린 어리석음에 진저리를 쳤다.

그 경험 후, 가끔씩 무시무시했던 머릿속의 일들이 일어나지 않은 그날 이 세상 한 구석인 이곳에 허락하여 주신 고요와 평화가 얼마나 값진가를 생각하곤 했다. 내 안에서 한바탕 이루어졌던 전쟁으로 인하여 그 강도가 훨씬 높아져버린 평강의 시간이라는 생명싸개를 늘 허락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새삼스레 감사하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생각대로 판단하는 마음이 늘 문제였다. 그 저녁, 천당과 지옥을 문제덩어리인 마음이 결정해 버렸다. 그 시간도 그렇게 저벅! 저벅! 그리고 가뿐! 가뿐! 하며 엎치락뒤치락 내 안에 같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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