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2년 정도 아프셨던 것 같다. 그때 우리 집 종교는 남묘호랭개교였다. 아버지가 아프시면서 8촌 되시는 친척분들이 몇 번 도와 준 기억이 있는데 엄마는 그게 고마워서 그들이 믿는 그 종교를 믿게 되셨다. 아버지도 살고 싶으셔서 우리까지 강제로 꿇어 앉히시고 시간만 있으면 그 말을 반복적으로 외우게 하셨다. 그때 우리 집은 양쪽 100미터씩 다른 집들과 떨어져 있는 외딴집이었다. 우리 집을 지나쳐서 날마다 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 오빠가 있었다. 오빠네 집안은 장로교 신자였다. 시골 동네에서 믿음이 좋기로 소문났다. 

그 오빠가 지나가다 나만 보면 "순연아 교회 가자"고 말하곤 했다. 아버지가 아파서 남묘호랭개교를 믿는데 교회 가자고 하니 난감하여, 그 오빠가 멀리서 보이면 숨기도 했다. 시골 교회를 지나가면 높은 계단 위에 지어져 있는 교회 쪽으로 고개가 항상 돌아갔다. 그 교회를 중학교 때 두세 번 간 것 같다. 떡 준다는 추수감사절 같은 때.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엄마가 다니시는 그 종교의 집회를 몇 번 따라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사는 동안 교회 십자가만 보이면 내 속에서 '난 교회 갈 거야' 라는 소릴 늘 들었다. 스물두 살 때, 친구 따라 교회에 간 적이 있다.

교회 의자에 앉아서 기도하면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땐 그게 뭔지 몰랐다. 교회만 가면 그렇게 눈물이 났다. 지금 생각하니 내 안에 계신 성령 때문이었다. 그 오빠가 외쳤던 "순연아 교회 가자!"라는 말이 믿음의 씨앗이 되어 내 속에 뿌려진 것이다. 그것이 내게 복음이었던 것이다. 다른 설명 하나도 안 해 줬는데 그 말이 내게 복음이었다. 스물네 살 때부터는 교회에 적당히 나갔던 것 같다. 그러다 서른 살에 말씀으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경험을 했다. 그 후로도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주의 성령은 나를 붙드시고 놓지 않으셨다. 로마서 8장 30절에서 “또 미리 정한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그들을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듯이, 주님은 나를 끊임없이 부르신 것이다. 이사야 49장 15-16절에선 “너를 낳은 어미는 혹시 너를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하신다. 아!!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셨다는 그분의 약속의 말씀을 읽으며 난 주님을 더욱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주일학교 교사로 섬길 때, 공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예수님 믿어" 한 마디 하고 지나쳤지만, 주님은 그 말을 씨앗이 되게 하셔서 언젠가 그들을 찾으시고 부르신다는 확신이 내 안에 늘 있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적에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먼저 복음을 전한 다음 놀게 해주었다. 그땐 멋모르고 듣던 그 녀석들이 청년이 되었는데 지금 그들이 교회에 다니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씨앗을 뿌려 본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뿌릴 때 그 많은 씨앗이 몽땅 다 올라와서 열매 맺을 거라 생각하지 않듯이, 그저 누군가는 싹을 틔울 것이라 믿고 농부의 맘으로 복음의 씨앗을 뿌려 본다.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비도 내리시고 햇볕도 내리쬐어서 자라게 해주실 거라 믿으면서... 그 열매를 바구니에 가득 담아 주님께 올려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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