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지음 / 해냄 펴냄(2017)

 

올해 출간된 작은 크기의 신작 장편소설 『공터에서』는 소설가 김훈의 9번째 장편소설이다. 연합뉴스는 지난 2월 10일에 ‘5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공터에서』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교보문고가 2월 초의 베스트셀러를 집계한 결과, 종합 2위에 올랐다고 했다. 『공터에서』는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를 배경으로 고난의 시대를 살아온 마씨 집안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겨레 신문은 “기자다운 꼼꼼함으로 미시적 사실을 챙기는 일이 거시적 본질에 눈 감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딜레마에서 김훈 소설은 자유롭지 못하다”고 평했다. 하지만 나는 식민지 시대, 한국전, 베트남전쟁 등의 뼈아픈 역사가 소설의 배경에 깔릴 때마다 심장 박동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주인공들을 당대 이데올로기의 어설픈 영웅이나 악당으로 만드는 것 아닌가 해서였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는 내내 저자는 생명과 죽음을 적막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인연들의 엉김에 힘들게 끌려다니는 듯했다.

요즘 아웃사이더나 이방인이란 단어 대신에 자주 거류민을 떠올린다. 기독교 잡지의 제목인 탓도 있고, 성경에 나오는 단어인 탓도 있다. 이방인이 이 땅의 관점에서 나왔다면, 거류민은 세상 밖의 관점에서 비롯된 단어 아닌가. 생명을 선물 받은 그곳으로 되돌아가기까지 잠시 머무는 육신의 땅. 이 생각을 자꾸 하다보면 사는 일이 정처 없어진다. 애국심도, 생계도, 선악도, 원색으로 가슴을 후벼 파는 애증도 덧없어진다. 그래서인가? 흑백 사진 몇 장, 그리고 덜 선명한 칼라 사진 몇 장에 잠시 눈길을 주다가 거둔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조선일보는 3월 28일자 기사에서 “시대가 내린 ‘불의한 사명'을 받들지도 거역하지도 못하는 그 모양새, ’보편‘과 ’개별‘ 사이에서 능지처참당하는 생명의 비명이야말로 그가 쥔 연필의 동력이었다”고 썼다. 아, 저자가 연필로 글을 쓴다는 이야길 여러 번 들었다.

이날의 기자회견에서 저자는 “저는 1948년에 태어나서 올해 70살이 됐습니다. 아버지는 1910년생입니다. 나라가 망한 해에 아버지가 태어났고, 나라가 막 만들어져 정부 수립을 하던 해에 제가 태어났습니다. 1910년, 1948년이 운명의 좌표처럼 찍혔어요. 이 두 해는 우리 부자에게 좌표이고 감옥입니다. 그때부터 결코 도망갈 수 없었습니다. 저나 저의 아버지나 그 시대의 참혹한 피해자였고, 제 소설은 피해자의 이야기입니다.... 시대가 개인에게 가하는 고통을 견딜 수 없어 부인하고 무서워서 미치광이가 되어 세상의 바깥을 떠도는 인간을 그렸다.”고 말했다.

제목의 의미에 대해 “공터는 주택과 주택 사이의 버려진 땅이다. 역사적인 구조물이나 시대에 안착할 만한 건물이 들어서지 않은 빈 땅. 나와 아버지가 살아온 시대가 그냥 공터였다. 앞으로 무언가 지어야 할 공터. 나는 평생 가건물에 사는 것 같았다. 나는 계속 철거되는 가건물에서 살았구나. 며칠을 살면 또 헐리겠구나... 그런 비애감과 연결된 제목이다”라고 저자는 설명했다. 저자는 소설의 에필로그에 이런 말을 남겼다. “나의 등장인물은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하여 말하고 싶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늙기가 힘들어서 허덕지덕하였다. 의료비 지출이 늘어났다... 여생의 시간을 아껴 써야 할 것이다.”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

“일상의 작은 것들을 모으고 쌓아서, 막막한 날들을 건너갈 수 있을 것인지를 마차세는 생각했는데,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싶었다.”

“말이 늙어 보였어. 말없이 걷더군. 끝도 없이 걸었어. 수백 바퀴를.”(본문 중에서)

하지만 주인공의 삶이 그저 막막하고 고단한 것만은 아니다. 소설의 화자 역할을 하는 주인공 마차세에게 여자, 아내, 딸의 엄마가 있다. 마차세의 손을 꼭 잡고 주인공이 핏줄과 단단한 고리로 연결되어 이 세상을 순하게 건너갈 수 있도록 동반자를 자청한 여자가 있다. 오늘을 견디는 이유이다.

한국전이 발발한 뒤 어머니와 아버지는 1.4 후퇴 전까지 서울에 갇혀 있었다고 했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의 아버지 역시 서울에 남아 인민군이 오면 인공기를 흔들고 국군이 오면 태극기를 흔드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문득 내 부모는 어떻게 견디어냈는지 궁금해졌다. 두 분은 소설은커녕 말로도 그 시절을 상세히 증언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진상 규명을 비롯해 시시비비 가리는 행태들이 조금은 무섭게 느껴지는 요즈음, 궁금증은 금세 스러졌다. 아버지는 한을 고스란히 침묵으로 껴안고 이 땅을 떠나셨고, 어머니는 중증요양원에서 연명의 시간을 견디느라 추억을 반추할 여력이 없으시다. 생각의 시간, 글 쓰는 시간을 넘어 망각의 시간 속에서도 생명을 이어가기. 그래서 여생의 시간을 아껴 써야 한다는 저자의 마지막 말에 공감한다.

소설 표지의 날개 부분에 기록된 저자의 이력은 아주 간단하다. 1948년 서울 출생. 2000년까지 여러 직장을 전전. 소설 『칼의 노래』, 산문 풍경과 상처』 외 여럿. (여덟 권의 소설 중 하나 빼고 이하 생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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