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열전(4)

소돔이 있는 들판을 주저없이 선택했던 롯은 자연스럽게 소돔 성에 들어가 정착했다. 애굽 같고 에덴 동산 같아 보였지만, 실은 동방의 연합군이 와서 정복하고 조공을 받던 땅이었음을 그는 몰랐을까? 12년 전 소돔을 위시한 다섯 왕들은 동방의 네 왕들의 연합 공격에 패하여 그동안 조공을 바쳐왔다. 13년째 되는 해에 그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1년 후 동방의 왕들이 다시 공격해 와 모든 것을 약탈했다.

본문은 1-16절까지 세 번에 걸친 전쟁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처음 두 전쟁은 동방의 왕들과 서방 연합군들 사이의 싸움이다. 두 전쟁에서 그돌라오멜을 중심으로 한 동방 연합국들이 소돔 왕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왕들을 압도했다. 그들은 요단강 동편의 왕의 대로를 따라 사해 바다의 남쪽에 있던 여러 성읍들을 정복했고, 아말렉과 바란 광야까지 내려가서 정복 전쟁을 했다. 그런데 본문은 전쟁 자체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지 않은 대신,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포로로 잡혀 갔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 주며 마무리한다(12절). 풍요를 좇아 갔던 땅에서 롯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롯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이미 패색이 짙은 전쟁에 뛰어든다. 그의 유일한 목표는 조카 롯을 구해 내는 일이었다(14절). 아브라함은 집에서 훈련받은 군사 318명과 주변 지역의 동맹군들을 이끌고 동방 연합군을 추격한다. 가나안 최북단에 있는 단 지역까지 쫓아갔고, 그것도 모자라 다메섹 지역까지 올라가 그들을 공격하고, 포로로 잡혔던 롯과 부녀들과 모든 재물을 되찾아 왔다.

사실 아브라함의 작전은 성공할 가능성이 크지 않았다.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가 메소포타미아의 국가 연합체를 대적해 승리를 얻기란 무리였다. 게다가 동방 연합군들은 이미 승전해 가나안 땅을 벗어나 상당히 멀리까지 이동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왜 이 전쟁을 해야 했을까? 애굽으로 내려가선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고 아내를 여동생이라 속였고, 그로 인해 아내를 빼앗겼던 아브라함이 아닌가!(창 12:10-13:1) 그런 그가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롯을 구하기 위해 전쟁에 뛰어든 것은 이상해 보인다. 적어도 이 시점까지는 아브라함이 롯을 약속의 자녀로 믿고 소망을 끊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롯이 붙잡혀 간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끝날 수 있음을 의미했으므로, 아브라함은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롯을 구하려 했다. 롯을 구출하고자 전쟁에 동참하는 그의 모습은 조카에 대한 신의를 지키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헌신과 믿음으로 보아야 한다.

본문은 아브라함의 전쟁 이야기를 간단하게만 언급하고, 아브라함이 돌아와 살렘 왕 멜기세덱과 소돔 왕을 만나는 장면으로 이어간다. 전쟁 자체보다는 그 전쟁으로 말미암아 파생된 결과에 더 깊은 관심이 있기 때문에, 전쟁 이후에 두 왕이 아브라함을 대하는 모습에 초점을 둔다(17-24절). 전쟁에서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먼저 다가온 왕은 소돔 왕이었다. 사웨 골짜기까지 나아왔다고 하니, 아브라함이 동방 연합군을 물리친 후 왕의 대로가 아니라 예루살렘을 통과하는 경로를 선택해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음을 알 수 있다. 소돔 왕이 먼저 나아왔으나 곧 이어 온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아와 아브라함을 먼저 축복하며, 그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한다(18-19절). 이에 아브라함은 그에게 십분의 일을 바쳤다. 그러나 소돔 왕의 반응은 대단히 시큰둥하다. 21절에서 소돔 왕은 무심한듯 “백성은 주고, 물건은 가져가라”고만 말한다. 이 짧은 네 단어는 목숨을 걸고 자신과 백성들 그리고 재산을 다 회복시키고 전쟁터에서 돌아온 사람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음식을 가져와 지친 군사들을 돌보고 아브라함을 축복한 멜기세덱과 빈 손으로 나아와 사무적인 말만 내뱉은, 무례한 소돔 왕이 대조된다. 그래서인지 본문은 소돔 왕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아브라함 역시 소돔 왕으로부터 어떤 것도 취할 마음이 없다. 전쟁의 승자로서 모든 전리품들을 소유하고 나눌 권리가 있었지만, 전쟁을 함께했던 용병들을 위한 몫을 나눠줄 뿐,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유익도 구하기를 거절했다. 그의 관심은 오직 롯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창 12:1-3에서 열방이 복을 누리는 길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열방의 축복과 저주가 결정될 것이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가볍게 여기는 (한글 성경은 ‘저주’라고 번역했으나 ‘가볍게’가 더 좋은 표현이다) 자를 저주하실 것이다. 이 말씀에 따라 본문은 열방이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 가운데 처해지는지를 보여 준다. 동방의 네 왕들은 군사적으로는 강국이었지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포로로 잡아가다가 낭패를 당하고 말았다. 소돔 왕도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다. 소돔의 운명이 어떠할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갔을 때 바로 왕이 사라를 취한 일로 심판에 이르렀던 것과 같은 이치다. 반면, 멜기세덱은 왕이요 제사장으로서 아브라함에게 나아와 함께한 사람들의 실질적인 필요를 채워줬을 뿐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브라함을 축복했다. 성경에서 그의 이름은 매우 독특한 지위를 가지게 될 것이다(시 110편, 히 7장).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열방의 운명이 아브라함에게 달려 있음을 보여 주신다. 그를 통해 축복이 넘칠 것인가? 아니면 저주와 심판이 흘러갈 것인가? 열방이 축복을 받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롯에 대해 살펴보자. 아브라함이 전쟁에 뛰어든 목적은 롯의 구출이었기에 사실상 그의 존재는 14장 전체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가 포로로 잡혀 갔다가 삼촌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귀환했다. 그 과정에서 삼촌과 조카 사이에 어찌 여러 말들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본문에서 롯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본문이 이 사건 이후의 롯에 대해 말하지 않지만, 그가 구출된 후에 삼촌이 아니라 소돔 왕을 따라갔음은 명백해 보인다. 롯이 다시 등장하는 19장을 보면 그가 소돔성 안으로 들어가 오히려 그곳에서 일정한 지위를 얻고 정착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삼촌이 아니라, 퉁명스런 말을 내뱉고 이기적인 몫을 챙기는 소돔 왕을 따라 떠나는 롯을 보며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는 자신의 목숨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런데 남은 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의 후손일 거라는 자신의 믿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일뿐이었다. 이제 아브라함은 롯을 보내야 했다. 매우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과연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인가? 아내는 불임이고, 믿었던 조카는 약속에 적합한 인물이 아님을 깨달았다면 이제 그 다음은 무엇인가? 고통과 좌절의 한가운데서 답을 찾지만, 답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순간을 피하길 원하거나 속히 지나가길 원하지만, 어쩌면 참된 믿음은 인생의 답답한 순간을 살아내며 고통의 자리에서 묵묵히 견디는 것이 아닐까? 그 길 끝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므로.(그림 설명: 루벤스, 아브라함과 멜기세덱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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