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떨리기 전 가슴 떨릴 때 여행 떠나자!” 남가주에 있는 어느 여행사의 광고 카피다. 이민자들의 심리를 자극한 탁월한 카피라 할 수 있다. 우리 이민자들은 내일을 위해 살아왔고,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하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장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쉬고 싶은 것을 내일을 위해 참고 살아왔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참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건강에 이상이 생겨도 그건 내일을 위한 훈장쯤으로 생각하며,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간다면야 그것쯤이야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는 좋은 투자라고 생각한다.

좋은 세상, 누릴 곳이 많이 있는 미국에 살면서도 정작 좋은 것을 누리지 못하는 세대가 1세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뼈 빠지게 일해 수영장 딸린 집을 샀더니 정작 그것을 즐기는 사람은 하우스메이드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이렇게 몸이 마모되기까지 달려오다가 아이들이 분가하고 모처럼 여유가 생기고 시간이 나기라도 하면, 정작 자신을 챙기기보다 손자, 손녀 돌본다고 또 자신의 몸을 기꺼이 묶어 버린다.

그러다가 문득 몸에 이상이 생기고 정신적 건강에 적신호가 오면, 그때서야 본인이나 가족들이 여행을 권한다.  효도관광이니 하는 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전부 다리가 떨리는 사람들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행사는 안타까운 마음에 이제는 다리 떨리기 전에 아직도 가슴이 떨릴 때 여행을 하라고 권하는 것이다. 사실 이민 1세대는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사느라 감정이 다 죽어버린 지 오래여서 응급처치를 해야만 가슴이 떨릴지도 모르겠다.

교회 다니면서 우리는 천국의 영광과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이 세상 것들에 대해서 조금도 관심을 가지지 말라고 세뇌가 될 만큼 배워왔다. 신앙생활을 해도 교회 안에 갇혀 지내도록 배워온 것도 사실이다. 멀리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가도 주일에는 반드시 교회에 돌아와 본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배웠다. 기도를 하더라도 새벽기도회에 가고, 금요기도회에 가고, 또 골방에서 기도해야 한다는 지침을 충실히 따랐다. 우리 삶의 방식이 그렇게 짜여지다 보니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은 비정상인 것처럼 보인다.

위대한 부흥사 찰스 피니가 예수님을 만나 무릎을 꿇은 곳은 깊은 숲속이었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의 기도 장소도 산속이었다. 이런 것을 본떠 한국교회는 산속 기도원에서 기도하는 것이 좋다고 기도원에서 기도하라고 권한다. 정작 산에 가서 산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여행하면서 느끼는 하나님의 은혜도 교회 안에서 느끼는 것 못지 않다. 산과 바다에서 하나님의 한없이 높고 넓고 인자하신 품을 느끼며 눈물을 흘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 너무 목표에 집착하는 삶을 살고 있다. 삶의 목적은 분명히 하나님께 맞추어져 있어야 하지만, 삶의 목표는 사람마다 다르다. 또 반드시 설정한 목표를 이루어야만 성공적인 삶을 산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과정일 뿐이다. 우리에겐 기도조차 목표가 되었다. 새벽기도, 금식기도, 작정기도를 위해 특정한 시간과 기간, 그리고 특정한 장소를 정해 놓고, 기도 제목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 목표가 이루어져야 성공한 기도라고 생각한다.

삶은 여행이다. 기도도 여행이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생활도 여행하듯 해야 한다. 여행은 아직 가보지 않은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의 패턴과 매너리즘을 벗어나 보는 것이다. 여행이 주는 신기하고 신선한 느낌이 자신의 삶과 생각의 지평을 넓혀 주고 그러한 경험이 삶에 윤활유를 더해 준다.

선교도 여행이다. 물론 선교는 여행을 많이 다닐 수밖에 없는 일이기에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또 한편으로 선교는 시간 여행이라 할 수 있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다보면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스쳐온 과거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할 수 있다. 성경 속에 나오는 신앙의 인물들의 실존을 만날 수 있다. 따라서 선교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삶의 여행이다. 신비한 체험을 원한다면 지금 당장 선교 여행을 떠나라. 다리 떨리기 전, 가슴 떨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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