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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광야 생활이 시작되고RV에 복음을 싣고 달리다(7)
박승목, 박영자 집사  |  RV 순회전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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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01  01: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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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고 홍해를 건너야만 했듯이, 우리 네 식구가 우상이 들끓는 집안을 떠나서 참으로 형용키 어려운 감동으로 가방 몇 개 달랑 들고 돈도 없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 로스앤젤리스에 도착한 때는 1982년 1월 5일이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옛날의 출애굽 사건처럼 미국 땅으로 급하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공항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미국에서 살겠다고 고백하면서 우리 가족을 도와 주시고 인도해 달라는 기도를 간절하게 드렸습니다.

꿈만 같았습니다. 우리 눈에는 미국이 마치 천국처럼 보였습니다. 1월, 겨울인데도 나무에는 오렌지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여 가나안 땅같이 생각되었습니다. 아는 사람 없고, 돈도 없고, 영어도 모르고, 영주권도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느 곳에 있던 항상 함께해 주실 것이 믿어지고 기쁘고 감사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광야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하여 밤이 되면 미국 마켓 뒤에 있는 쓰레기통에 가서 버려진 야채와 과일, 변한 고기 덩어리까지 주워 먹어야 했지만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마음껏 고기를 먹일 수 있는 것이 감사해서 울었습니다. 입어야 할 옷들은 수와밋과 거라지 세일에서 장만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25센트만 주면 헌 바지, 셔츠, 헌 운동화를 살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두 아들(8살, 12살)은 학교에 갔다가 오면 근처 공원으로 달려가서 버려진 깡통을 주웠습니다. 우리 부부는 어둑어둑해지면 아파트 단지 뒤에 있는 즐비한 쓰레기통에서 깡통을 주워 팔아 2년 동안 다녔던 한국교회에 선교 헌금을 보내며 기쁘고 감사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아침에 학교 가는 길에 버려진 깡통을 보기만 하면 주워서 나무 밑에 숨겨 놓았다가 하교 길에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작은 아들이 마켓의 카트를 집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아빠가 주운 깡통을 어깨에 메고 다니는 것을 보고 카트에 싣고 다니면 무겁지 않고 좋다고 어린 마음에 생각해 낸 것이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았고, 어렵게 살았지만 감사했고 행복했습니다. 거리의 나무 밑에 떨어진 오렌지가 아까워서 주워 먹어도 감사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17-18).

하나님께서 올 수 없는 길을 열어 주셨으니 미국에서 살아갈 수 있는 영주권도 마련해 주실 것이라고 믿으며 기쁘게 살았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니”(히브리서 11:1).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통해 행하신 일들을 생각만 해도 감격스럽고 행복한 마음이었습니다. 미국에 온 지 두 달쯤 되었을 때 교회에서 야외 예배를 드리러 호숫가로 갔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맛있게 먹은 후에 아이들은 가지고 온 낚시 도구로 물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두 아들은 낚시 대가 없었기 때문에 옆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서 가보니까 어떤 아이가 잘못 던진 낚시 바늘이 하필이면 큰 아들의 입가에 꽂힌 것입니다. 낚시 바늘을 뽑아내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모두 모여 기도할 때 큰 아들은 통증이 없는 듯이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작은 아들이 보고 “하나님이 우리 형을 안 아프게 하고 계신 거야. 그치 아빠!”라고 말했습니다.

작은 아들의 믿음대로 남편이 차에 있는 펜치로 낚시 바늘을 넣다가 빼는 일을 연거푸 했는데도, 큰 아들은 마취를 한 것같이 아파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낚시 바늘을 뽑아내었고 우리 모두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기도해 주셨던 모든 분들은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는 뜻이라 생각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상처는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없어졌고 두 아들은 착하게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여 고마웠습니다.

5개월 후, L.A. 북쪽의 노스리지에서 샌디에이고로 이사해야만 했습니다. 유학생 신분으로 학교에 등록을 해야 했습니다. 사실 공부보다는 미국에서 살기 위해 왔지만, 그래도 학교 근처로 옮겨야 했기에, 영주권을 내주겠다는 어떤 분을 따라서 이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는 돈마저 빼앗기고 영주권도 없는 상태에서 남편은 막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미국 사람이 주인이었으며, 많은 한국인들이 이미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로 땅 파는 일, 집수리, 페인팅, 배관 공사였는데,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남편은 조수로 일을 하였습니다.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성실하고 꾸준하게 일하는 모습을 주인이 유심히 보았나 봅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에베소서 6:5-6).

8개월 만에 노동일에서 관리직으로 옮겨졌습니다. 주인은 남편을 신임하여 모든 일을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히니”(창세기 39:4).

주인은 우리가 영주권이 없는 것을 알고는 현찰을 주면서 우리 가족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곳이든 시기와 질투가 있기 마련이어서, 먼저 일하던 사람들이 영주권 없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이민국에 고발하겠다고 전화기를 들고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영주권이 없어서 서러움을 당하면서도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꾸만 마음에 상처를 받고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대장 경련이 일어나서 어느 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대장 경련뿐 아니라 합병증까지 생기는 바람에 7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하였습니다. 남편은 벌어온 돈을 다 쏟아 병원, 한의원 좋다는 곳마다 가서 저를 고쳐 보려고 했고 금식기도와 신유집회에도 갔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누군가 금침을 맞으면 낫는다고 하여서 맞은 금침이 지금도 X-Ray를 찍으면 깨알같이 제 몸 안에 천 개나 들어 있습니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고 날마다 콩 먹듯이 약을 먹으며 고통 속에서 신음했습니다.

육신은 말할 수 없이 아팠고 고통스러웠지만,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 가정을 통해 역사하셨던 그 일을 생각하면서 밤낮으로 눈물로 기도하며 부르짖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 33:3).

   
 

* 편집자 주 : 박승목, 박영자 집사 부부에겐 집 주소가 없다. 2002년부터 지금까지 길 위에서 RV 순회 전도를 하고 있다.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박 집사 부부는 RV를 타고 미국 49개 주를 찾아다녔다. "현실은 편안하지 않은데 마음은 평안하다. 우리가 죽을 때 가져가는 건 평안이다. 그 답을 전하려고 전국을 누빈다."라고 말하는 박 집사 부부의 선교 이야기를 연재한다. 두 분의 연락처는 818-917-4974, rvmissionary@yahoo.co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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