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

탐욕의 복음을 버리고

고든 피 교수는 그의 책 『탐욕의 복음을 버려라』에서 이렇게 시작합니다. ‘현대 기독교는 부와 건강의 복음이라고 불리는, 그 속에 복음의 특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악성 질병에 빠르게 감염되고 있다.’

오늘날 이 시대의 기독교를 장악하고 있는 부와 건강의 복음은 고든 피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복음의 특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악성 질병입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도 건강과 부의 복음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실제로 그들이 따르고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복음이 아니라 아메리칸 드림에 가까운 부와 건강의 가짜 복음입니다. 사람들은 부와 건강의 복음을 버리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복음 속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은 너무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불확실하고 엄청난 모험입니다.

하지만 사는 동안 어떠한 어려움도 겪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 부와 건강의 복음은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자책과 원망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 속에서 속수무책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이 복음인 것은 부유하든 가난하든, 건강하든 건강하지 못하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소식이고, 잘 나가는 때이건 시련의 때이건 모든 상황에 대한 좋은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탐욕의 복음을 버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른 진짜 복음을 따라야 합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야고보서 1:2-4에서 눈에 띄는 단어는 '기쁨'입니다. 여기서 시험을 만나도 기쁘게 여기라는 말은 억지로 기뻐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시험이 다가와도 기뻐할 이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왜 기뻐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과 그분의 행사를 아는 지식과 거기서 오는 성숙한 신앙과 지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인생살이 전체를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 기쁨은 복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성경은 바로 복음이 주는 기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당하게 되는 핍박과 환난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며 겪는 모든 시험을 총 망라하여 여러 가지 시험에 대해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외적인 환난과 핍박일 수도 있고, 경제적인 어려움일 수도 있고, 스스로 욕심에 미혹되어 시기와 질투와 다툼에 빠지는 시험일 수도 있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일 수도 있고,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당하는 시험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러한 시험이 주는 좌절과 고통을 압도하는 기쁨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기쁨의 이유

그 답은 3절의 "앎이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기쁨을 발견하기 위해 먼저 알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면 기뻐할 수 없습니다. 시험을 당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는 것'입니다. 시험을 겪을 때 아는 사람들마다 시험을 극복할 처방을 알려 줍니다. 절박하기 때문에 그런 조언들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야고보서의 수신자들 역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돈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들도 오늘날 부와 성공의 복음, 성공한 사람들의 비법에 귀를 기울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야고보 사도는 다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여러 가지 시험을 겪더라도 큰 기쁨으로 압도할 수 있는 이유와 방법으로, 그들이 알아야 할 세 가지 이유들을 제시합니다.

1) 살아 있는 믿음

어떤 시험을 만나더라도 그 시험이 주는 고통과 아픔, 불안과 좌절을 압도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의 믿음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를 "믿음의 시련"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해 흔들리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자신의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드러나게 됩니다.

시험이 오면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반응이 달라집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불신앙으로 반응할 것입니다. 분노와 절망과 허무와 원망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진실로 찾게 됩니다. 그렇게 가까이 계신 줄 몰랐던 그분을 경험하게 됩니다. 입으로 고백했지만 막연했던 믿음이 드디어 시험을 통해 자신의 것이 됩니다. 그 믿음만이 가장 실제적이며 놀라운 선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2) 솟아나는 인내

믿음의 사람은 시험을 당할 때 자신의 믿음이 살아 있음을 알게 됩니다.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고, 함께하시며, 지금 여기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검증받게 됩니다. 시험을 이겨낼 비밀의 능력을 얻은 것입니다. 시련과 연단의 과정은 어떤 목적이 이루어지기까지 계속됩니다.

시련을 통과할 때 믿음이 발휘하는 인내는 인간 스스로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 스스로 역사하는 그 무엇입니다. 이런 점에서 4절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에서 '온전히'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인내의 작용이 갖는 궁극적인 목적을 가리킵니다. 인내가 온전히 이루어질 때, 그 결과로 성도의 온전함이 얻어지는 것입니다. 4절에서 설명하듯이 믿음은 시험을 만나 진가를 드러내고 또한 인내를 발휘하여 견딜 것을 요구합니다.

야고보서가 말하는 온전함은 기나긴 과정을 전제합니다. 인내는 이미 정해진 그 사람의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도록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견인인데, 이런 인내는 믿는 사람 자신의 판단이나 결단과 의지로 하는 인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온전함을 목적으로 정하셨습니다. 인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분이 주신 인내가 우리 안에서 솟아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내합니다. 성도는 자기가 정할 수도 도달할 수도 없는 온전함이라는 목적을 선물로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인내를 통하여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어도 우리는 지금 그렇게 변화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3) 온전함이라는 선물

복음은 믿기에 너무나 좋은 그래서 잘 믿어지지 않는 소식입니다. 성도들의 가장 큰 병은 모든 것을 받았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삶이 기쁠 리 없습니다. 모든 것을 받고도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구걸하며 사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지적하는 성도들의 문제도 이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알아야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함을 계획하셨습니다. 정말 놀랍고 기쁜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온전하다는 말, 구비한다는 말 그리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말은 하나의 상태를 세 가지 측면으로 거듭 강조한 표현입니다. 온전하다는 말은 원래의 목적에 다다랐다는 뜻입니다. 구비하다는 말은 원숙의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잠재되어 있던 모습들이 완전히 드러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함, 즉 '빠짐'이 없다는 표현은 부정적인 방식으로 온전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시험 가운데 자유와 능력을 얻는 길은 하나님의 관점을 깨닫는 데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늘 세상이 문제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늘 사람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염려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가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시험의 초점은 우리가 과연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느냐에 있습니다.

문제는 세상을 다스릴 온전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담도, 이스라엘도 실패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관점으로 시험은 장애물이자 불행의 원인입니다. 부와 번영의 복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우리의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깨닫고 따르는 것, 그것이 곧 지혜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인내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솟아나는 인내가 주님께서 계획하신 목적에 이르게 할 것이고,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는 새로운 생명의 완성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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