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물에 빠졌어.”
 “도와 주지 않을 거예요, 거기에 들어가지 말았어야지.”
 “그냥 빠지게 내버려 둬.”

지난 9일,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한 남자가 호수에 빠졌습니다. 이를 목격한 10대 청소년 다섯 명은 남자가 가라앉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했습니다. 남자는 며칠 후 변사체로 발견됐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남자의 모습과 이를 조롱하는 소리가 담긴 동영상은 SNS를 통해 확산됐습니다. 검찰은 ‘구조 의무’를 명기한 법이 없기 때문에 이 청소년들을 기소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코코아 시 경찰은 다른 법을 적용하여 이 청소년들을 기소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으로 현지에서는 ‘착한 사마리아인 법’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2017.7.31. 연합뉴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을 고의로 구조하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는 법입니다. 강도를 만나 길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착한 사마리아 인이 구해줬다는 성서 속 이야기에서 비롯됐습니다.(출처: 국가기록원)

 

이런 사건은 주변에서 종종 일어납니다.  지난해 8월에도 비슷한 일이 한국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대전에서 택시기사가 운전하던 중에 심장마비 증세로 의식을 잃었습니다. 그러자 이 택시의 승객들은 운전석에서 열쇠를 빼내 트렁크를 열고 골프백을 꺼낸 후 현장을 떠났습니다.  구호 조치를 받지 못한 택시기사는 결국 사망했습니다.  사회적으로 크게 지탄을 받기는 했어도, ‘선한 사마리아인 법’을 제정에 대해선 논란이 많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는 도덕적인 판단을 법적으로 강제할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저는 이런 논의가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에 대해 우리 교회가 고민해야 할 영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세계 각국이 복지국가 모델을 선택하면서 ‘선한 삶의 원칙’을 도덕의 차원에서 법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이것은 인류가 보편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이기에 긍정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사회가 교회에 대해 던지는 질문이자 도전일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교회는 도덕이나 윤리를 뛰어넘는 자비와 사랑, 희생과 헌신의 영역을 독점해 왔습니다.  법이 지배하는 양심을 넘어서는, 믿음 위에 있는 희생과 사랑을 자랑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회는 교회에 대해 그런 수준 높은 윤리와 도덕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이미 교회의 도덕률은 사회보다 앞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사회의식과 역사의식 또한 앞서 있지 않습니다. 그저 살아가기에 바쁜 현대인들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자기 위안을 얻는 모임일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각박한 인간의 현실에서 오아시스와 같은 위로를 얻기 위해 교회를 바라보던 세상 사람들이 이제는 스스로 우물을 파고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더 이상 교회에서 발견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법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을 만들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발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교회와 신앙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자 위협입니다.

21세기 교회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현대 사회는 종교를 대체할만한 다양한 도구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는 일에도, 즐거움을 찾는 일에도, 서로 교제하고 자아를 찾으며 공동체성을 느끼는 일에도,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삶에서 가장 쉽고 효과적인 길을 찾고 있습니다.  어설픈 신앙의 논리로 갈수록 예리하고 치밀하게 발전해가는 세상의 문화와 논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와 성도는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방법이나  포장을 바꾸는 것으로 세상을 이길 수 없고, 세상보다 더 화려해지고 커지는 것으로 세상을 이길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좀 그럴 듯해 보이는 또 다른 세속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2천 년 전이나 오늘이나 같습니다.  더 낮은 곳에 있고, 더 거친 환경에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사는 길, 성도의 신앙이 생명을 확보하는 길은 예수님의 관심과 마음을 따라 가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예수님의 마음이 가는 곳으로 우리의 마음과 삶을 움직여야 합니다.

세상에도 감동이 있고, 세상에도 사랑이 있고, 세상에도 선행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없는 유일한 것,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선행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예수가 복음이며 복음이 내 안에 있을 때 우리의 마음과 삶이 변화되고 관계가 변화됩니다.  복음을 품고 복음이 인도하는 곳으로 가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마음을 배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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