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환기 좀 시킬게요.”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녀석이 현관문을 열어둔 채 하는 말이었습니다. “어? 그래. 냄새 많이 나니?” 나는 아들 표정을 살피며 죄지은 사람처럼 작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아들은 된장찌개와 김치볶음 그리고 생선조림이 섞인 냄새가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한 시간쯤 후에 찾아올 친구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미국에 살면서 냄새가 심한 한국 고유의 음식을 조리하거나 먹는 것을 절제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득이하게 먹고 난 후에는 냄새 제거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요. 그래서 식후에 원두커피를 내려 그 향으로 음식 냄새를 중화시켰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시간이나 지난 터여서 저는 아무런 음식 냄새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밖에서 들어온 사람에게는 여전히 그 냄새가 강했나 봅니다.

사실 음식 냄새는 함께 먹은 사람이나 좋지,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에게는 고역인 경우가 많습니다. 후각은 쉽게 마비되는 감각 중 하나여서, 처음엔 자극적으로 느끼지만 조금만 지나면 냄새를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치게 됩니다. 아들은 제게 민폐를 끼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입니다.

수년 전 어느 국회 토론에서 한 정치인이“목회자들은 자신들이 항상 옳다는 착각에 빠져 사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약간 화가 났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부끄럽습니다.

레너드 스윗은 한국교회가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그 중심에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기에 항상 옳고 존경과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당하는 고난은 의에 대한 박해라고 여깁니다. 박해를 받을지언정 무시는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생각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계시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자신의 설교에 자신이 제일 감동받고, 그 심오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합니다. 착각이고 오만이며 망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심각한 문제는 자신에게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를 느끼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울에 비친 자신에 대한 자신의 생각만 중요하고, 자기 인식만 중요합니다. 심리학 도구 중에 조해리의 창(Johari’s Window)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 도구는 자신과 타인 사이의 인식 영역을 네 가지로 나눕니다. 모두에게 알려진 공개 영역(Open Area), 자신은 모르고 타인만 알고 있는 맹인 영역(Blind Area), 자신만 알고 타인은 모르는 비밀 영역(Hidden Area), 나도 모르고 타인도 모르는 미지 영역(Unknown Area)으로 나눕니다.

이 중 맹인 영역이 넓은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충고는 배움과 성장의 기회가 됩니다. 그런데 맹인 영역이 많은 사람이 나르시시즘 혹은 자기 의에 빠져 있으면 다른 사람의 충고는 불편하기만 합니다.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의 말을 아예 무시합니다. 반대로 비밀 영역이 많은 사람에게는 충고도 공격이 될 수 있습니다. 상대의 비밀을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말이기에 비난만 될 뿐입니다. 게다가 “네까짓게 알면 뭐하냐”라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비밀을 감춘다면 관계는 악화될 뿐입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비위 맞추며 사는 것이 건강한 삶이 아니듯, 다른 사람의 시선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의에 따라 사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그런 증세가 심한 사람을 우리는 정신병자라고 부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이라는 역사적인 해에 모 교회에서 역사적인(?) 결정을 했습니다. 비밀 영역을 줄이던가 비늘을 벗고 눈을 뜨던가 하지 않으면 말은 돌멩이가 되어 날아갈 것입니다.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나마 그 교회는 유명하고 상징성이 있어 일반 언론의 비난이라도 받으니 어쩌면 기회가 있을지 모릅니다. 뉴스거리도 안 되는 작은 교회나 개인 목회자들에게서 나는 냄새는 어떻게 제거해야 할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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