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 선교 칼럼

최근 고국의 정치 상황은 분단 이래로 가장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동족들끼리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보수와 진보, 좌우로 나뉘어 연일 시끄럽고 급기야 북핵 억제를 위한 물리적 방법의 소문까지 들려 왔습니다.

연초부터 북/중국 국경에서 사드 등의 이해 관계로 인한 여행의 단속 강화로 선교지 방문이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은밀한 구제와 지하교회 지원을 상인들과 밀수꾼들 그리고 탈북가족들을 통해 진행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나라와 정부 간의 정치적인 대립은 그렇다 하더라도, 후방에서의 일치되고 분명한 목적의식이 상황논리에 깨어지고 관심 밖으로 밀려나, 동족 사랑과 통일 의지력 곧 선교의 동력이 희미해져 가는 것을 넋 놓고 바라만 볼 수 없어서, 겨우 두 군데 선교집회만 연결한 채 40일간의 한국 선교집회를 계획하고 어수선한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제 마음은 '고국이 정치 혼란으로 민심이 분열되고, 국제적인 상황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지경인데, 하나님의 교회들과 백성들은 이럴 때 복음을 선포하고 함께 기도해야 함이 마땅히 할 일이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으로 불탔습니다.

그렇지만 당장 이틀 후예 열려야 할 주일 집회 연락이 없어서 답답할 무렵, 필라델피아에서 북한 동족을 위해 기도하다 우연한 소개로 『굶주림보다 더 큰 목마름』을 읽고 감동을 받아 인터넷 자원봉사자로 나선 00님의 도움으로 각 지방의 교회 목사님들로부터 집회 허락 답변이 왔고, 그 동안 20여 년 넘게 흩어져 목회를 하고 있던 동기목사들로부터 우정어린 격려와 초청이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첫 주일부터 돌아오는 바로 전날 주일까지, 창원, 부산, 강원 태백, 경기도와 서울, 전북 익산, 제주, 대구, 광주와 전남 순천을 순회하며, 매주 3회 이상 동족 사랑과 통일 선교를 외칠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 사는 저와 같은 디아스포라들만 조국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 많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조국의 복음 통일과 동족 사랑을 위해 기도하는 분들을 만나면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던 "내가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000명을 남겨 놓았다"는 주님의 분명한 음성을 듣는 기쁨과 세상 언론들이 이러한 주님의 백성들의 동족 사랑과 통일 의지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탓에 씁쓸함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광주 지역을 이틀간 방문하여 집회를 했는데 양림동의 선교유적지를 탐방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고맙게도 제가 멀리서 왔다는 이유로 바쁜 가운데도 네 분의 목사님들이 선교 유적지와 선교사 묘역까지 일일이 동행하여 역사적인 배경과 의미들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시니, 큰 감동과 함께 답답했던 마음이 펑 뚤리는 듯했습니다.

두 달전, 시애틀의 한 개봉관에서 '서서평' 영화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는데 기회가 되면 꼭 한번 양림동의 선교사 묘역 중 서서평 선교사의 묘(호남신학대 바로 뒷동산)를 방문하여 기도하고  싶었는데,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서서평 선교사(독일계 미국인으로 32세에 간호선교사로 한국에 도착 54세에 소천)는 1934년 6월, 광주에서 만성풍토병과 과로, 영양실조로 숨졌는데, 그녀가 남긴 건 담요 반 장, 동전 7전, 강냉이 가루 2홉뿐이었습니다. 한 장 남았던 담요는 이미 반으로 찢어 다리 밑 거지들과 나눴습니다. 시신도 유언에 따라 의학연구용으로 기증됐다고 합니다. 그녀는 14명의 양자, 양녀를 길렀으며, 수많은 과부들의 친구로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서서평 선교사가 병자들과 오랜 시간 함께해서 루게릭병과 영양실조로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선교 지역의 한센병 치료를 위해 서울의 고종 황제에게 나환자들을 위한 치유 장소를 허락해 달라고 탄원하러 가는 머나먼 여행길에 동행하여 병이 더 심해졌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수레에 의지한 채, 선교사와 환자 일행은 동네마다 양식을 구하면서 간신히 서울에 도착해 고종 황제로부터 지금의 소록도를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구역으로 만들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돌아온 뒤, 동행했던 선교사들이 과로와 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최초의 광주시민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를 땐 수천 명의 광주 시민들과 나환자들이 쫓아 나와 “어머니”라고 부르며 오열했다고 합니다. 당시 한 일간신문은 사설에서 “백만장자의 귀한 위치에서 하인을 두고 직접 다니는 선교사들, 동족의 비참한 생활에 눈감고 오직 개인 향락주의로 매진하는 신여성들이 양심에 자극을 받길 바란다”고 썼다고 합니다.

  이 새로운 선교 일화를 들으면서,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는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한 광주 양림 선교사들의 희생과 예수 복음의 실천이 우리 백성과 조국을 살리는 데 일조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굶주리고 목마른 북녘의 동족들을 떠올려 봅니다. 복음으로 재무장하고 순교와 모진 핍박을 견디고 있는 북한의 크리스천들을 통한 하나님의 놀라운 복음의 능력을 떠올려 봅니다. 오늘의 혼란은 어쩌면 희생을 치르며 선교사들이 전한 복음과 복(만) 받고, 생명력 있는 선교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우리의 잘못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이라도, 외국에서 온 선교사들이  우리 민족의 가난과 병, 무지와 구습들에 굴하지 않고 주님 나라를 전하고 예수 사랑을 실천했듯이, 복음 때문에 핍박받고 탄압받는 북녘의 성도들과 인권은 유린당하고, 생명의 소중함과 천국의 소망도 모른채 살아가는 북녘 주민들의 삶을 우리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고, 교회와 성도들이 분열하고 싸우는 이들에게 '용서와 화해의 예수 복음을 선포하고 선교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역사를 제대로 세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생명과 자유의 역사를 우리 스스로 완성시킨다면, 세계와 역사는 우리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할 것입니다.

이 민족의 지독한 분열과 분단을 끝낼 통일은 오직 예수 복음의 선교입니다.  광주 양림동에 묻힌 타국의 선교사들이 실천했던 바로 그 예수 복음의 선교 활동은 지금도 북녘 지하성도들과 (동족 선교 사역 중에 갇혀 있는 선교사들과  죽거나 풀려 나온 이들을 포함해서),  남한과 해외에 흩어진 동포들 중에 주님의 섭리에 의한 통일을 믿고 기도하며 예수 복음의 삶을 사는 여러분들에 의해 이루어져 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2018년 새해, 주님의 놀라운 섭리가 우리 조국과 여러분들의 가정에 임하기를 기원드리며 이러한 뜻을 담은 영화가 제작될 수 있도록 귀한 후원과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오늘날 영화는 세상 사람들에게 보이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For United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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