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1

만약에 말이다.  친한 사람들끼리 비밀이 보장된 방에서 나눈 말이 마이크를 타고 남의 귀에 고스란히 들어간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절대 남에게 알려져서는 안 되는 쉬쉬하며 한 이야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면 말이다.  사실 이런 곤란한 경우를 우리 모두 경험해 본 적이 적어도 한두 번은 있지 않은가.
실제로 내가 경험한 일이다. 1965년,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밤 늦게 시냇물 주변의 둑길을 걸으며 집에 혼자 걸어오고 있는데 둑 아랫쪽에서 남녀가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밀을 나누는 소리 같았다. 궁금해서 소리나는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이, 이제 아기도 태어날 텐데 춤, 춤추는 건 그만 둬라.”
남자는 말을 더듬고 있었고 이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춤을 안 추면 어떻게 먹고 살겠어?”
“나, 나는 네, 네가 사람들 앞에서 춤추는 게 싫다. 춤, 춤 출 때 치, 치마 좀 걷지 마라. 네, 네가 그러는 게 창피하다. ”
“나도 좋아서 그러는 거 아니라는 거 누구보다 네가 더 잘 알잖아. 그챦아도 배 불러오기 시작하면 그것도 못 한다.”
“사, 사람들이 네가 바보 벙어린 줄 안다.”
 “그러면 좀 어때. 조금이라도 더 불쌍하게 보여야 한 푼이라도 더 벌지.”
그들은 계속 다투느라 내가 자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두 남녀의 옆얼굴을 얼핏 보았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여자는 동네 시장 어구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면 수시로 나타나 머리에 꽃을 꽂고 춤을 추는 갑분이었다.  춤이 끝나면 갑분이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바구니를 내밀었고 어른들은 주머니에서  꺼낸 돈을 바구니 속에 던져주곤 했다. 짖궂은 남자 어른들이 갑분이에게 다가와 장난을 치면 갑분이는 화난 표정으로 어버버거리며 성을 내서 동네 사람들은 갑분이가 벙어리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갑분이가 이렇게 말을 잘 하는 여자라니. 그리고 갑분이의 남자가 여름이면 파란 색 아이스께끼 통 하나를 어깨에 메고 나타나 온 동네를 누비고 다니는, 그  말더듬이 칠룡이라니. 나는 발소리를 죽이며 둑 위로 올라갔다.

그 해 겨울 갑분이는 죽었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던 둑에서 멀지 않은 곳, 냇물 근처 토관 안에서 얼어죽었다. 군청에서 나온 사람들이 갑분이와 몇몇 얼어죽은 거지들의 시체를 가마니에 둘둘 싸 어디론가 싣고 갔다. 그 후 두어 해 종적을 감췄던 칠룡이가 어느 여름날 다시 나타나 “아이스께끼” 를 외쳤다. 목청을 높이 했는데도 어쩐지 그 소리는 구슬프게 들렸다.

어려서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일까. 나는 대부분 우리가 한 말은 시간의 둑을 넘어 언젠가는 누군가의 귀로 흘러들어가게 된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몰래 비밀스런 이야기를 하다가도 마이크를 타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질지 모른다는 조바심이 생겨 혀에 제동을 걸기도 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문을 잘 내는 사람들의 입에만 마이크가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비밀을 지키다가도 어떤 시점에 이르면 필요에 의해 혹은 곤경에 몰려, 지켜주려고 했던 비밀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단 발화된 내용에는 비밀 보장이란 게  없다.  발화의 두려움은 물론 나만 가지는 느낌은 아닐 것이다.

퓰리처상과 전미 비평가협회상, 전미 도서상 등을 휩쓸었던 20세기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존 치버(John Cheever, 1912∼1982)도 어쩌면 이러한 발화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의 『기괴한 라디오 (The Enormous Radio)』(1953) 에서도  이러한 생각은 놀라운 착상과 함께  펼쳐지고 있다.

 

결혼 십 년차에 접어든 짐과 아이린 부부는 평균 수입으로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중류층 사람들이다. 아내 아이린은 그다지 예쁘지도 않고 아무 특징도 없으며 남편 짐은  그의 급우들이 입었던 것 같은 모직 양복을 입고 다니며 다소 도덕적이며 진지한 편에 속하는 사람이다. 이 부부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고전 음악을 듣는 취미를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데, 언제부턴가 라디오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해서 짐은 라디오를 하나 샀다.

그런데 집으로 배달되어 온 라디오에서는 그냥 음악뿐만 아니라 동네 이웃들의  목소리까지 새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환청이 아니었다.  사소하고도 일상적인 남녀의 다투는 소리,  반지 주인이 누군지 뻔히 알면서도 주운 후에 돌려주지 않고 몰래 보석방에 갖다 팔아버리자고 하는 어떤 부부의 은밀한 계획,  정숙한 줄 알았던 이웃 여자의 성생활의 비밀, 아내를 구타하고 있는 남자의 소리 등이  라디오에서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흘러나왔다.  물론 아무도 듣지 않는 줄 알고 자기들만의 공간에서 은밀히 내뱉는 말들이었다. 여기서 이웃들의 말은 단지 말이 아니라 인간의 감추어진 욕망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후에 수리공이 와서 라디오를 고친 후에는 더 이상 이웃들의 발화 내용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 소설은 끝나고 있는데 이 소설은 치버의  다른 작품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중산층 가정을 소재로 하면서 그들의 평온한 삶과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이중성을 폭로하고 있다.

소설 말미에 아이린은 또다시 이웃들의 목소리를 들려줄지 모른다는 기대로 라디오 스위치에 손을 댄다.  이는 타인의 비밀을 알고자 하는 보통 인격을 가진 보통 사람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그녀가 남편에게 “사람들이 우리 얘기 듣겠어요.”라고  하는 것은 엿듣고자 하는 욕망과 함께 자신의 말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이 소설은 발화의 양 방향성을 날카롭게 포착하면서 삶의 아이러니를 희화화하고 말 조심에 대한 경고뿐 아니라 전 인격적 성장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이 소설을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옛날 경험했던 갑분이의 일이 떠올랐다. 그들이 나누었던 대화, 그 둑길. 그 둑길 아래 흐르던 시냇물에 반짝거리며 빛나던 별빛 달빛.  수천수만 조각으로 흩어지고  깨지면서 그 빛들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그 빛들은 누가 은밀히 내뱉었던  말이었을까? 그리고 내가 던진 말들은 누구의 귀에 어떤 색깔의 빛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을까?

* 편집자 주 - 필자는 동화작가이자 소설가이며, 현재 노스이스턴 일리노이 주립대 한국학 강사이며 예지문학회 강사이다. 출간한 책으로  『Hello, 도시락 편지』,『착한 갱 아가씨』, 『드림랜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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