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누가복음 11:1-4).

기도

"기도의 삶으로의 부르심은 곧 상처와 필요의 그물에 걸리지 않으면서 이 세상 한복판에 살라는 부르심이다. '기도'라는 말은 폭력과 전쟁을 낳는 조건적 의존의 악순환을 과감히 끊는다는 뜻이요 전혀 새로운 거처로 들어선다는 뜻이다. 기도하면 대화 방식과 호흡 방식과 공존 방식과 학습 방식이 달라진다. 그렇다. 기도란 전혀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헨리 나우웬 신부님의 기도에 관한 글입니다.

우리가 기독교를 믿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생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입니까?, 인생의 불안 요소를 극복하기 위해서입니까? 그런데 진정한 믿음이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상처와 필요에 연연하지 않는 삶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시금석이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여전히 상처와 필요에 얽매여 있다면 진정한 믿음이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믿음이란 기도를 통해 드러납니다. 우리가 바른 기도를 드릴 수 있을 때 조건적 의존의 악순환을 끊고 전혀 새로운 거처로 들어서게 됩니다. 세상의 방식인 조건적 의존, 즉 잘해 주는 사람에게 잘하고 잘 못하는 사람에게 잘하지 못하면, 폭력과 전쟁을 낳을 수밖에 없고 악순환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끊고 전혀 새로운 거처로 들어가는 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통해 선순환의 구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헨리 나우웬 신부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에 수반되는 이런 근본적 변화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많은 이들에게 '기도'라는 말이 경건한 행위, 하나님께 말하는 것,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 아침과 저녁의 습관, 주일 예배, 식사 기도, 성경구절, 기타 많은 것들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이 기도와 상관이 있겠지만 내가 말하는 기도는 무엇보다 평화를 미워하는 자들의 거처를 떠나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다. 기도야말로 꼭 필요한 것 한 가지이다(눅 10:42). 기도란 지금 여기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다."

기도 없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기도 없이 믿음 생활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기도 없이 세상의 압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기도 없이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변화를 일으키고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이 땅에서 살게 해주는 바른 기도란 어떤 것일까요? 그 대답이 바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

삶을 변화시키는 기도,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게 하는 기도, 세상 속에서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게 해주는 기도, 삶의 중심을 잡아 주는 기도를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숙은 곧 기도의 성숙이라고 말해도 조금도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다. 기도가 변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변하지 않습니다. 기도가 성숙하지 않는 한 우리의 믿음도 성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당신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리는 자를 찾습니다. 하나님 뜻에 합당한 기도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기도가 교제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이 인격적인 관계로 만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시고, 인간이 인간 되는 순간입니다. 그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서 하나님을 닮게 됩니다. 그래서 인격과 신앙은 기도하는 만큼 깊어집니다.

주님의 기도에는 바로 그러한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는 예수님이 담겨 있습니다. 그분이 그 기도를 만드셨고, 그 기도가 그분을 만드셨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우리의 이기적이고 죄 된 심성을 뒤집어엎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의 부귀영화에 대해 종말을 선언하고 새로운 방식인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게 합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는 하나님 나라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

누가복음 11장은 한적한 곳에서 기도를 마치고 오신 예수님께 한 제자가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요구하는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질문한 제자가 세례 요한을 예로 드는 것으로 보아 세례 요한의 제자였을 수도 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는 것은 관례였습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이 다른 종교지도자들과는 달랐기 때문에 더더욱 주님으로부터 기도를 배우고 싶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달랐습니다. 상투적인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며,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것으로 만족하며 사는 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기존의 그 어떤 기도와도 달랐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곧 예수님 자신께서 기도하시고 예수님 자신께서 사시던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누가복음은 기도 복음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기도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다른 복음서들보다 더 많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예수님의 능력의 근원이었습니다. 그분의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기도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기도는 그분의 일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렸습니다(눅 3:21). 문둥병자와 중풍병자를 고치신 것도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신 후였습니다(5:16). 열두 제자를 세우실 때에도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6:12).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제자들의 신앙고백을 받으시고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처음 말씀하신 것도 밤새도록 기도하신 후였습니다(9:18). 변화 산에서 용모가 환하게 변화되셨던 것도 기도하실 때였습니다(9:29)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신 때도 한적한 곳에서 기도한 다음이었습니다(11:1).

누가복음에는 기도에 대한 비유들이 가장 많습니다. 밤중에 찾아온 벗의 비유는 강청하는 기도의 중요성을 가르쳐 줍니다(11:5-8).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는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18:1-8).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는 참된 겸손의 기도가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18:10-14).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기도도 많이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믿음을 넘어뜨리려는 사단의 시험을 막기 위해 주님은 기도하셨습니다(22:32).

예수님의 기도의 절정은 겟세마네의 기도입니다(22:39-46). 겟세마네의 기도는 예수님의 습관적인 기도의 연장이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이었기에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셨습니다(22:40). 천사도 예수님의 기도를 도왔습니다(43).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는지 땀이 핏방울처럼 땅에 떨어졌습니다. 기도란 문젯거리를 하나님의 면전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린 문제는 그것이 무엇이건 이미 해결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승리는 이미 겟세마네의 기도에서 준비되고 완성되었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의 삶은 기도의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이 아버지의 일이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하는 모든 말들이 아버지의 말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그분은 담담하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요구한 것은 제자의 삶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것을 요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형식적으로 달달 외우고 있는 주기도문에는 이렇게 심오한 내용과 과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도 주기도문을 외울 때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주님에게 간절히 구했던 제자들의 마음을 담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되 기도의 내용이 변해야 합니다. 자신만을 위하는 기도가 아니라 남을 위한 기도,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향한 기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런즉 마음 푹 놓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먼저 그분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의 구조와 내용

주기도문에는 여섯 개의 간구가 들어 있습니다. 처음 세 개의 간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간구입니다.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선하고 완전하다는 믿음이 들어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내 생각을 맞추는 것입니다. 기복적인 기도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하나님을 복종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참된 기도는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뜻을 꺾고 하나님의 뜻에 우리를 복종시킬 때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기복적인 기도는 아무리 오래 소리 높여 해도 인격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내 뜻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정신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자신을 죽이는 훈련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기도는 자신을 죽이는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그리스도의 제자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배워야 할 기도의 모범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이상이 생겼다는 느낌이 들면 주님의 기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기초이며 본이며 가장 완성된 기도입니다. 주기도문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부름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두 번째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로 하나님의 뜻을 간구하는 세 가지입니다.

세 번째는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로 우리를 위한 간구 세 가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송영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영적인 삶이란 훈련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훈련이란 막힘 없는 기도의 삶이 펼쳐질 수 있는 상황을 갖추고자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기도를 반복하고 거기에 담긴 의미와 내용들을 내면화시켜 나갈 때, 우리는 변화할 것이며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생생해질 것입니다. 상처와 필요의 그물에 걸리지 않으면서 이 세상 한 복판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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