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손님인 스티브가 왔다. 은퇴하신 분인지라 한가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즐기며 사신다. 맡긴 세탁물을 찾으러 와서는 3주간의 유럽 여행담을 한참 들려 주었다.

그러다가 자신이 단골이 된 지도 ‘삼십 년’이 넘었음을 상기하며 허허롭게 웃었다. 문득 깔끔한 멋쟁이 사십대 신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그는 로맨틱한 영화 속의 남자 주인공이 화면 밖으로 금방 나왔나 할 정도로 멋쟁이였다. 삼십 년이 순식간! 지금 백발이 성성하고 굵은 주름이 웃는 모습처럼 새겨진 얼굴의, 칠십을 넘긴 노인이 되어 내 앞에 서 있었다. 삼십 년의 세월이 깨끗한 그의 얼굴을 인자하게 숙성시켰다고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웃고 있는 내게 그는 물었다. “삼십여 년을 한결같이 한 세탁소에서 지낼 수 있었던 비결이 뭐냐?”고. 갑작스런 질문에 잠시 생각을 하다가 대답했다. “아마도 사람이 좋아서.” 그를 보내고 난 뒤에 가게의 한구석에서 먼지를 덮고 있는 상자를 열었다. 그 안의 작은 노트에는 세탁소를 시작할 때 새 일에 대한 두려움이 적혀 있었다.

세탁업을 위해 해야 하는 일 중에서 자신 있는 일, 좋아하는 일, 배워야 하는 일, 좋아하지 않는 일들이 적혀 있었다. 한심하게도 배워야 하는 일, 좋아하지 않는 일의 목록은 길기만 했다. 자신 있는 일, 좋아하는 일 난은 공백이었다. 얼마나 두려웠던가! 얼마나 무서웠던가! 그러나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날마다 두려움을 뒤로하고 두 눈 크게 뜨고 배워야 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던가. 몸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요령을 터득하여 익숙해지니 쉬웠다. 자신감과 여유가 생기자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러나 손님들은 십대에 벌써 어른 티가 나는 서양인과는 다르게 삼십이 넘었는데도 나를 어린 사람, 아르바이트생으로 알았다. 크지 않은 몸 때문에 서툴고, 미성숙하게 보여서 손님들이 나를 못 미더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을 안심시켜야 했다. 암담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다. 할 수 있는 것을 찾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옷에 관한 공부를 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 중학교 가정시간의 기억을 떠올리며 직물에 대한 것을 복습했다.

믿지 못하는 손님들에게 서툰 영어지만 당당하게 말했다. 인조섬유와 천연섬유의 세탁법에 대하여, 특히 직물의 염색법을 설명하며 물감이 번질 염려가 있는 직물로 보이는 옷은 미리 알려 주었다. 물에 수축되는 섬유에 대해서도 열심히 공부했다. 직물의 짜임새를 설명하기 위해 알고 있는 직조법을 총동원했다. 평직, 능직, 수자직, 그때 한창 흔했던 벨벳옷의 주인에게 첨모직의 특성에 대해 열심히 말해 주고 표면이 쉽게 변형되므로 압박이나 눌림에 염두를 두고 입을 것을 당부했다. 더 깊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아는 상식의 전부인 거기까지만 이야기해도 소님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신분 상승! 만만하게 보이던 어린 여자의 신분이 금세 세탁 전문가로 변해 버렸다. 그들은 나를 존중해 주었고 믿어 주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힌트를 주신 직물 공부는 순전히 옷을 잘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알리려는 자구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동원하셔서 손님들의 마음 안에서 나를 향한 신뢰를 끌어내 주셨던 것이다.

믿어 주는 손님들이 생기기 시작하니 무섭지 않았다. 까다롭게 따지며 트집 잡는 사람 앞에서도 두렵거나 짜증이 나질 않았다. 펄펄 뛸 만한 일이 해결되면 곧 믿어 줄 것이며 친구가 될 테니까. 차갑게만 느껴지던 사람들을 기다리기까지 했다. 손님 한 사람이 들어오면 반가웠고, 그 반가워하는 마음을 그들이 알아 주었다. 그래서 난 알아 버렸다. 사람의 기본 마음, 신뢰가 있으면 좋아하게 되는 이치는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들에게서 고향 사람들에게서 느꼈던 정까지 찾아냈다. 자연스럽게 난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

먼지 덮인 상자 속에서 나온 노트의 공백에 써 넣을 단어가 생긴 것이다. ‘사람’이 바로 그것이었다. 일단 사람을 좋아하게 되니 가게 안의 모든 일에 정성이 들어갔다. 좋은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부족한 바느질 솜씨도 조끔씩 좋아졌다. 좋아하는 일 하나가 좋아하지 않았던 많은 일들을 이기게 했다.

하나님께서는 보너스까지 주셨다. 그 좋은 사람들을 내가 찾아다니지 않고 가게를 지키고만 있으면 날마다 심심하지 않게 그들이 나를 찾아 주었다. 그리하여 낯선 곳에서 가난했던 우리가 생계 걱정 없이 지금까지 살아낼 수 있게 해주셨다.

그뿐인가! 친구가 된 그들은 작은 가게 문을 열고 내가 보지도, 알지도 못한 큰 세상을 들고 들어왔다. 문화와 상식을 이야기해 주기도 했고, 특히 오늘 다녀간 스티브 같은 노인들은 넓고 큰 세상에서 얻은 경험과 감동까지 이야기해 주었다, 잠잠히 듣다 보면 TV의 다큐멘터리보다 더 유익한 지식이 들어 있기도 했다. 어떤 손님은 하소연을 늘어 놓으며 마음을 부려놓기도 한다. 돌아보면 난 참 복인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러기를 삼십 년하고도 또 몇 해, 사람과의 만남을 행복해 하며 살다 보니, 가버린 세월을 돌아보며 은퇴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까지 왔다. 과연 은퇴 후의 내 모습은 어떠할까? 마음 같아서는 이런 행복들을 내 주위의 모두에게 돌려 주며 여유롭게 살고 싶다. 그러나 몸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늙어가는 증상들, 따라가기 어렵게 변해 버린 세태, 그리고 경제적인 장애는 내 바람을 허용해 줄까. 문득 가게를 시작할 때 느꼈던 두려움이 몰려온다.

그러나 미리 걱정하지 않으련다. 물 설고, 낯설고, 말까지 설었던 이곳에서 사람 좋아하게 만드셔서 행복한 삶을 살게 하셨던 하나님이 계신다. 내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독특하고 기발한 방법으로 내 미래를 벌써 장만해 두셨을 것이다. 몇 년 앞으로 다가온 선물꾸러미 같은 미지의 삶에 설렘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리라. 아니 내가 가지 않아도 시간이 그 앞에 정확하게 데려다 줄 것이다. 느긋하게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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