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on Spirituality 72

 “예수 비유 묵상” 두 번째 시간인 오늘은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쳐 주시는 비유를 함께 묵상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다스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 개념보다는 통치 개념입니다. 곧 하나님의 통치가 나타나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다스림은 때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다스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때로 내 삶에서 경험하는 어려운 일들을 보면서 도대체 하나님이 내 삶을 인도하고 계시는지 회의가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막 4:1-9)를 통해서 하나님의 다스림이 우리의 삶에 나타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쉽게 설명해 주십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오늘의 비유 내용은 간단합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밭에 나가서 씨를 뿌렸는데, 그 씨가 다양한 땅에 떨어집니다.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먹고, 어떤 씨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져 뿌리가 깊게 내리지 못하고,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져 잎이 자라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어떤 씨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게 됩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참 쉽지요?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 쉬운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다스림이 어떤 것인지 그 깊은 의미를 설명해 주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성경에는 이 비유에 곧바로 이어서 마가복음 4:14부터 비유에 대한 해설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따로 비유의 뜻을 적용해 설명해 주시면서 제자들에게만 주고 싶었던 말씀을 해주십니다. 비유의 해설에서 예수님은 씨에 반응하는 각각의 땅에 대해서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의도가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면 말씀이라는 씨에 반응하고 응답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이 비유를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자들에게만 주셨던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비유 자체만을 듣고 돌아가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제자들이 들었던 비유의 해설보다 대중이 듣고 돌아갔던 예수님의 비유 자체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대중들은 이 비유 자체를 들으면서 하나님이 내 삶을 다스리시는 방식에 대해 큰 은혜를 받고 돌아갔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자라난다

오늘 예수님의 비유 자체에서 대중이 듣고 경험했을 말씀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은혜는 자라난다”는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방식에 대해서 농부가 씨를 뿌리는 모습으로 소개합니다. 때로 농부가 뿌리는 씨가 길가에도 떨어지고, 가시덤불에도 떨어지지만, 반드시 좋은 땅에도 떨어져 그 씨는 자라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은혜의 씨앗을 심으셨고, 이것이 자라나고 있음을 가르쳐 주고 싶어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에 담겨 있는 희망입니다.

우리는 희망을 잃어버리고 살아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삶에 아무런 희망이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것처럼 어려운 인생이 없습니다. 차동엽 신부가 『무지개 원리』라는 책에서 한 조난자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분이 유학 시절 알프스 산을 오른 적이 있다고 합니다. 산 정상에 도달했을 때 산장이 하나 있었는데, 산장에서 5m 떨어진 곳에 작은 십자가가 하나 서 있었습니다. 그 십자가에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한 등산가가 알프스 산을 오르다가 심한 눈보라를 만났습니다. 그는 산 정상에 가면 산장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눈보라를 뚫고 정상에 오르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해가 져서 어둠이 내렸습니다. 이 등산가는 눈보라를 뚫고 어둠 속을 걸으며 산장을 찾으려고 했지만, 아무리 가도 산장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눈보라 속에서 이 사람은 자신이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절망 속에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사람들은 길가에 얼어 죽은 등산가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얼어 죽은 장소는 바로 산장에서 5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눈보라와 어둠의 고난 속에서 5m만 더 갔더라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절망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눈보라와 어둠 속에 길을 잃었다는 절망과 두려움이 이 등산가로 하여금 주저앉도록 만들었습니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희망으로부터 나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 희망을 알려 주고 싶어합니다. 우리가 가진 희망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뿌려 놓으신 은혜의 씨앗입니다. 비록 그것이 자라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지금도 자라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의 씨가 자라나고 있음을 신뢰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열매는 반드시 있다

둘째, 오늘의 비유가 전해 주는 메시지는 “열매는 반드시 있다”는 말씀입니다. 은혜의 씨가 자라나고 있음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때에 열매가 반드시 있을 것임을 또한 신뢰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오늘의 비유는 우리가 보기에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농부가 씨를 뿌릴 때, 가시덤불과 돌밭에 씨를 뿌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던 말씀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농부들은 밭에 씨를 뿌리는 방법이 우리와는 달랐다고 합니다. 신약성서 학자 정양모 교수에 따르면 우리는 밭에서 돌도 골라내고 흙도 갈아 엎은 다음에 씨를 뿌리지만, 예수님 당시의 파종법은 돌도 있고 잡초도 있는 땅에 그대로 씨를 뿌리고는 나중에 흙을 갈아 엎는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먼저 씨를 잡아 흩뿌린 후에 땅을 갈아 엎으니, 씨 중에 상당수는 밭에 있는 돌에 자리 잡게도  되고, 잡초나 가시 같은 풀에 걸려 있기도 하고, 밭 사이에 난 길에 떨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그래, 그렇지. 맞구먼.” 하면서 모두가 공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씨를 뿌릴 때, 때로는 밭고랑에도 떨어져 새에게 집어 먹히는 놈도 있고, 돌 위에 떨어져 그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놈도 있고, 또 가시덤불에 떨어져 자라다가 마는 놈들도 있지만, 반드시 어떤 씨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삶에서 다스리시는 것이 지금은 비록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지금 내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것도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심지어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나를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그리고 실제 나는 십자가에 죽어서 내 사역이 실패한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분명히 내가 뿌리는 하나님 나라의 씨는 반드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씨 뿌리는 사람 비유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비유에는 엄청난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열매는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열매는 삶에서 아무리 어려워도 반드시 30배, 60배, 100배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실패한 것 같고,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 같은 삶에도 하나님의 선한 다스림이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이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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