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선지자들의 세상 도래!

 

예레미야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당시의 거짓 선지자들이었다. 그들은 왕과 백성들의 환심을 사려고 자기들 마음대로 지어서 예언했다. 하나님이 유다를 바벨론의 손에서 건질 것이니 바벨론에게 항복하지 말고 저항하라고 요청했다. 그들 중 대표적인 거짓 선지자가 하나냐였다. 그는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하신 예언을 공공연하게 비방하고 공격한다.

하나냐는 결국 그 해 일곱째 달에 죽는다. 선지자의 사역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달하는 것이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나님이 입과 혀를 내준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의해 포로가 되는 과정을 다 지켜본 사람이다. 바벨론 왕국은 유다 왕국을 멸망시킨 다음, 예레미야를 보호해 주고 주택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하지만 그는 거절한다. 남아 있는 유대인들과 함께 있다가, 결국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순교한다.

한 나라나 사회가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하면, 듣기 좋은 말을 하지 않는 예언자적 선지자들은 적은 반면, 왕이나 살아 있는 권력의 편을 드는 거짓 선지자들은 넘쳐나게 마련이다. 이스라엘의 멸망 과정에서도 거짓 선지자들은 많았다.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 산으로 불러들인 거짓 선지자들의 수는 바알신과 아세라신을 섬기는 자를  포함해 850명이었다(왕상 18:19). 이방국인 아람과 대치하고 있는 북이스라엘의 왕이 전쟁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를 묻기 위해 선지자 400명쯤을 모았으나(왕상 22:6) 이 중에 참된 예언을 하는 선지자는 한 명도 없었다.

창세기 이후 한 걸음도 더 발전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의 분별력은 이제 그 전원 자체가 꺼져버린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들의 목은 굳어질 대로 굳어져 버렸고, 그들의 귀는 닫혀질 대로 닫혀 버렸고, ‘한때’ 거룩했던 그들의 심장은 더럽혀졌다. 하나님의 성령이 떠났다.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끊임없이 보내셨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듣지도 아니하였다”(렘 25: 4).

드디어 이스라엘은 망하고 바벨론 강가에서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70년 포로 생활을 한탄하고 슬피 울며(시 137:1), 바벨론의 멸망만을 기원하게 된다. “바벨론아, 너는 멸망할 것이다.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갚아 주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시 137:8).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한 분별?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의 말을 듣고 분별해야 하는가? 거듭되는 혼란과 파멸의 와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분별은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누가 참 선지자인지를 가려내는 일이었지만,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진 이들은 선지자들의 충성된 말을 들을 수 없었다(겔 3:7).

하나님의 성령이 이들에게 직접 내려와 위로하고 인도하기에는 아직 하나님의 시간은 멎어 있는 것 같다. 우리들의 메시아 예수님은 여전히 하나님의 품 안에 계시고, 모든 백성들을 직접 만나 위로하고 인도해 주실 성령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백성들의 고통과 신음과 좌절은 깊어만 간다. 사방이 캄캄하고 이들을 구원할 메시아는 침묵하신다. 예전 아담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일일이 인도하시고 축복해 주신, 야곱의 엉치뼈를 쳐서라도 복을 주신 그 친절하고 자상하신 하나님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분노하고 후회하는, 결연한 모습의 하나님만 계신다.

430년 애굽의 종살이에서 자신들을 탈출시킨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이제 더 이상 구원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공의의 회초리를 들고 멸망의 길로 이끄는 정의와 심판과 재앙의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분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방향을 잃었다. 드디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망한다. 이들에게 70년 포로 생활이 시작되지만 거짓 선지자들의 위세는 여전하다. 에스겔 13장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어리석은 선지자에게 화가 있다’(겔 13:3)고 말씀하신다. 백성 중에서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여자들에게까지 경고하신다(겔 13:17).

세상이 흉흉하면 거짓이 주인 행세하기가 더 쉬워진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의 멸망과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통해 이뤄지고, 주변 이방민족들에 대한 심판 역시 뒤따른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구한 구약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죄와 타락과 멸망의 길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고, 그 대가를 애굽을 비롯해 이웃의 이방국가들을 통해 혹독히 치러야만 했던 것은, 하나님이 세운 자들 즉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 때문이었다. 그들은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분하지 못했다.

구약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매사에 독립적으로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에 대한 백성들의 자율적인 분별보다 하나님이 세운 선지자들 즉 대리인을 통한 계시의 말씀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와 순종을 귀하게 여기셨다. 선지자들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이나 명령에 대해 따지고 분별하는 것은 사치였고 금기였다. 하나님이 명령하시면 군소리 없이 즉각적으로 따라야 하는 게 이들의 의무였지, 왜 해야 하는지를 따져 묻는 분별은 신성모독과 다름이 없었다.

구약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원한 것은 이런 종류의 ‘절대적인 순종’이었다. 하나님에게 범죄한 후 변명하는 사울 왕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삼상 15: 22)라고 탓하는 사무엘 선지자의 준엄한 경고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순종이 분별보다 우선이었다.

구약 시대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분별의 메시지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직 하나님의 뜻을 자율적, 자발적, 총체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하지 못했으므로, 이스라엘이 타락과 멸망,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 역사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하게 계시하고 대변하는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가려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그의 제자들을 통해 신약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도 분별의 기초가 된다. ‘참/거짓 선지자를 가려내는 일!’

신약 시대로부터 2천 년이 지난 현대의 우리들에게 이런 주제는 더 이상 무관할 걸까? 천만에! 여전히 우리들은 거짓 선지자들과 함께 살고 있다. 아니 차고 넘친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마 24:23-25).

아, 우리에게 분별의 지혜는 언제나 가능할까?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