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5월 8일은 영국과 미국 연합군이 나치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날

 

5월 8일은 VE 데이, 즉 유럽 전승 기념일이다. 1945년, 영국과 미국이 나치 독일 및 그 진영과의 전쟁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다. 유럽 전역에서 독일 군대는 무기를 내려놓았다. 베를린과 동독에서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여전히 전투는 많이 남아 있었다. 다음 날 폴란드 남서부에 있는 실레시아에서 독일이 무조건 항복하기 전, 600명의 소련군이 전사했다. 일본이 8월 15일에 항복하기 전까지 태평양에서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우리는 수많은 전쟁에 참전한 남녀들에게 영원한 감사의 빚을 지고 있다. 그들은 하루 단일 전투에서 이긴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승리했다.

오늘 “악한 영들”에 맞서는 우리의 전쟁도 마찬가지다(에베소서 6:12). 성경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오늘날은 혼란스러운 시기다. 지난 4월 중순에 발표된 PRRI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미국 젊은이의 65%는 대부분 혹은 모든 경우에 낙태가 합법적이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연장자들의 51% 동의). 젊은이 10명 중 7명은 합법적인 낙태에 대해 보험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연장자의 46% 동의).

지난 해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3%는 안락사를 지지한다. 2005년 이래 최고의 수치다. 1947년 갤럽 조사 때보다 지지자가 두 배로 늘어났다.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동성결혼을 찬성하는 미국 성인들이 계속 늘고 있다. 2001년에는 35%였는데, 지금은 62%가 찬성한다. 오직 미국 성인의 31%만이 동성결혼을 반대한다. 게다가 복음주의자들과 종교 없는 이들 간의 격차는 크다. 복음주의자의 36%가 동성결혼을 지지한 데 비해 종교적 소속이 없는 이들의 83%가 동성결혼을 지지했다.

우리는 포르노그래피, 혼외정사, 마약과 알코올 남용 등의 문제들도 논의할 수 있다. 모든 문제들의 핵심은 같다. 우리 문화는 분명 도덕적이고 영적인 각성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군사적인 전쟁이든 영적인 전쟁이든 하루 만에 승리할 수는 없다.

민수기 10장을 보면 시내 광야를 떠나 행선지로 나아간 이스라엘 사람들은 2백만 명(남녀노소 모두)이 넘는다. 그들에게 지도는 주어지지 않았다. 주님이 그들을 “단계적으로” 이끌었다. 그들은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이끄는 대로 나아갔다. 기둥이 멈추면 그들도 멈추었다.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수많은 단계들이 있었을 것이다. 광야를 헤매고, 땅을 정복하는 데 실패하면서 40년을 방황했으며,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모세마저 죽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집을 떠나 유업으로 받을 곳을 향해 나아갈 때에도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히브리서 11:8). 요셉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 보디발의 감옥을 거쳐 파라오의 궁전으로 갔다.

모세가 파라오의 궁전에서 성장했을 때, 누가 파라오의 힘을 꺾고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킬 거라는 상상을 했겠는가? 예수님의 제자들을 생각해 보라. 갈릴리 어부들이 세상에서 본 적 없는 가장 강력한 영적인 운동을 이끌 것이라고 누가 꿈이나 꾸었겠는가?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그러한 삶을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그저 원할 뿐이다. 오늘의 문화는 어떤 가게에서든 쇼핑하고, 어떤 식당에서든 먹고 온라인으로 거의 모든 물건을 사는 소비자가 되도록 우리를 길들여 놓았다. 우리의 실존주의적 가치관은 항상 우리에게 그것이 전부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왜 우리는 단계적으로 영적인 전쟁을 치러야 하는가?

첫째, 문화의 변화는 시간이 걸린다. 산업혁명에서 정보혁명으로 바뀌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 운동도 오랜 세월이 걸렸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말은 옳았다. 위대한 사람은 자신이 그 아래에서 쉴 수 없는 나무들을 심는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로 할 때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해 주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날마다 그날 먹을 만큼의 만나를 공급받았다(출애굽기 16:4). 우리도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한다(마태복음 6:11).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마지막 행선지를 보여 주는 투광조명등이 아니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를 보여 주는 플래시다.

셋째, 그 여정에는 기쁨이 있다, 우리는 “인내로써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하고자 한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신 예수”를 바라보고자 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위해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게 되었다”(히브리서 12:1-2). 천국에 들어갈 때의 영광을 위해 우리는 지상에서 날마다 예수님을 따를 때 예수님의 기쁨을 알 수 있다.

유럽 전승 기념일은 마지막 승리의 날을 기념하지만, 그 승리는 무수한 손실과 희생을 치른 대가였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힘 안에 살고 있는 오늘은 지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또 다른 날이다. G. K. 체스터톤은 “진정한 군인은 앞에 놓인 것을 증오해서가 아니라 뒤에 있는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싸운다.”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한복음 14:15).

(편집자 주: 짐 데니슨 문화사역자의 5월 8일 칼럼 발췌 번역)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