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7)

 

장편소설 『테스』로 널리 알려진 토마스 하디의 작품들 중에 『천들 할머니』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그 줄거리는 이러하다.

어느 상쾌한 가을 아침이었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부목사는 수채화를 그리고 싶어  교회 근처 유적지로 물감을 챙겨들고 나갔다. 그러다 문득 시장기를 느낀 부목사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초라하게 생긴 돌집을 발견했다. 부목사는 그곳에 들어가 식사를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칠순이 넘은 천들 할머니는 연세가 많고, 다리도 절뚝이고, 귀도 잘 들리지 않았지만, 정성껏 밥상을 차려 주었다. 부목사는 채소밭에서 갓 캐낸 감자와 양배추에 베이컨을 곁들인 음식을 맛있게 먹고 감사한 마음에 식비를 지불하려고 했다. 할머니는 감자니 양배추니 하는 채소들은 자기가 가꾼 밭에서 캐낸 것이니 돈을 받을 만한 것이 못 된다면서 베이컨 값으로 1실링만 받겠다고 했다. 부목사는 할머니의 마음 씀에 감사했다.

부목사는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할머니가 이 고장에 온 지 35년째로 접어들고 있으며, 청력에 문제가 생겨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설교 한 마디 알아들을 수 없는데 교회는 가서 뭐하냐는 말을 들었을 때, 부목사는 할머니를 위해 뭔가 좋은 방도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부목사는 할머니를 위해 특별한 나팔형 보청기를 예배실에 설치했다. “친절하고 인정많고 학식 많고 열성적인 사람”이라는 그의 별명에 걸맞는 행동이었다. 할머니는 오랜만에 주일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마침 그날은 부목사가 설교하는 날이었다.
그날 아침에는 서리가 내렸다. 맑고 상쾌한 겨울 아침, 부목사는 준비된 설교를 순적하게 시작하였다. 그런데 설교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할머니 쪽으로 연결한 소리관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지독한 양파 냄새가 배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소리관을 타고 부목사의 코에 닿은 할머니의 숨 냄새는 실로 참기 어렵게 지독했다.

마침내 부목사는 평소에 아끼던 최고급 아마포 손수건을 주머니에서 꺼내 나팔관 입구를 막았다. 잠시 냄새가 가시는 듯했다. 잠시 후 천들 할머니의 목쉰 소리가 들려왔다. “이를 어째! 소리관이 막혔어!” 속이 상한 할머니는 소리관을 뚫으려고 훅 하고 힘껏 숨을 내뱉았다. 그러자 숨바람을 타고 손수건은 맥없이 날아가 강대상에 떨어졌다. 예배실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지독한 냄새는 다시 부목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부목사는 설교를 계속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5분을 넘기지 못하고 서둘러 끝내버렸다.

부목사는 경험 많은 담임 목사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담임 목사는 “천들 할머니는 그냥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어야 했소.”라고 면박을 주며 웃어넘기는 거였다. 부목사는 소리관을 철거시켜 버렸다. 그는 한동안 천들 할머니를 방문하지 않았고, 할머니 쪽에서 심방 좀 와달라는 부탁을 전했으나 마음이 내키지 않아 가질 않았다.

며칠 뒤 불편한 마음으로 부목사가 천들 할머니 집에 심방을 갔는데, 그때는 이미 할머니가 소천한 지 두 시간이 지난 후였다. 시신을 지키던 여자가 부목사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지난 일요일에 할머니는 교회에 늦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쓰셨어요. 그러지 말아야 했는데 나이 많은 양반이 언덕을 급하게 오르다가 심장에 무리가 간 것 같아요. 한 번 자리에 누운 후론 못 일어나셨지요. 부목사님에게 사람을 보내 심방 좀 해달라고 했는데 부목사님이 못 오셨고요. 할머니는 부목사님이 못 오는 건 지금 다른 가난한 사람들과 있느라 그런 거라며, 시간이 조금이라도 나면 꼭 와주실 거라고 믿으면서 기다렸어요. 그런데 끝내 못 만나시고 돌아가셨네요. 나으면 부목사님 설교를 다시 들을 수 있을 거라며 기대도 많이 하셨는데......”

그녀는 이런 말도 했다.

“할머니는 드디어 진정한 친구를 발견했다고 무척이나 좋아하셨어요. 천 명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사람을 만났다고도 했고요. 부목사님은 자기 같은 늙은 노인네를 대할 때도 부자를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귀하게 대했다고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몰라요. 그리고 이걸 전해달라고 했어요.”

부인이 전해준 쪽지 유서에는 그동안 소중히 간직해온 장롱, 시계, 침대, 틀에 넣은 자수품 등등을 모두 부목사에게 남긴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부목사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그 집을 나왔다. 아무도 없는 호젓한 길에 들어섰을 때 그만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이 작품은 하디 생전에 발표되지 않았다. 하디가 매우 존경했던 교구 목사가 젊은 시절에 겪은 사건을 소재로 삼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품의 으뜸된 주제는 사랑의 실천에 따르는 난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은 결심과 실천 사이의 간격일 것이다. 아침이면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해도, 실천을 하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달라진다. 실천에는 단순히 시간과 물질의 손해만 따르는 것이 아니다. 조롱과 멸시와 육체의 허덕임을 견디다 보면, 아름다운 수채화는 어느새 덕지덕지 기운 무거운 솜이불 같은 것이 된다. 빛나던 소리관은 양파 냄새 나는 괴물로 변한다. 부목사의 소리관 설치와 그에 따른 후유증이 다소 코믹하게 그려져 있지만, 그 진의는 의미심장하다. 천들 할머니가 죽기 살기로 예배에 참여하려고 애쓰다 실제로 임종을 맞이하게 된 사건은 편안하고 게으르게 주일예배에 임하는 성도들에게 일침을 가한 것이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비록 길이가 짧은 단편이지만, 이 작품의 무게는 작가의 다른 장편에 못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작품을 쓴 토머스 하디(1840~1928)는 영국 남서부 도어셋 주의 스틴스포드에서 태어났다. 대표작으로 『귀향』, 『케스터브리지의 시장』, 『테스』, 『박복한 사람 주드』 등을 들 수 있겠다. 청년 시절, 작가는 성경에 주석을 달기도 하고 주일 예배, 수요 예배는 물론, 교회의 중요 기념일에는 빠지지 않고 출석하는 신실한 신앙인이었지만, 원숙한 나이로 접어들면서 과학적 인생관에 영향을 받아 변증법적 인생 철학을 가지게 된다. 이를 신앙의 변절이라고 단순히 치부하기보다는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철저한 직면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The short stories of Thomas 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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