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으로 보는 분별의 흑역사 8

 

지난 2천 년 간 기독교 세계를 첨예하게 갈라놓았던 질문을 하고자 한다. 지상 세계에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곧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요 1:2).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의 제2위격에 해당하는 예수님은 두말할 나위 없이 하나님이시다. 그런 하나님 예수가 그 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다는 게 있을 수 있는 말인가? 전지전능의 신에게 무슨 분별이 또 필요한가? 신은 모든 것을 다 아시지 않는가?(요 16:30)

예수님은 죽음을 당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나는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미리 말씀하시지 않았던가?(눅 9:21-22,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께서 모르시는 게 있었나? 모든 사람의 속을 알고 계신 예수님은, 자신을 인간들에게 맡기시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의 설명을 들으실 필요도 없었다(요 2:24-25).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셨고, 인간의 삶을 사셨고, 인간의 몸으로 죽으셨고, 인간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셨다. 비록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셨으나 인간 예수님은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게 성장하셨다. 예수님도 여느 아이들처럼 성장통을 겪으셨을 것이며, 친구들과 짓궂은 장난을 치셨을 것이며, 아버지를 따라 촉망 받는 목수로 훈련을 받기도 하셨을 것이다.

사복음서 중 오직 누가복음에 예수님의 어린 시절이 한 번 언급되는데, 열두 살 때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다가 예수님을 잃어버린 이야기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선생들과 모세의 율법에 대해 토론하고 계셨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총명함에 감탄했다”(눅 2:47). 예수님의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눅 2:52).

일본의 대표적인 기독교 작가인 엔도 슈사쿠는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예수님은 떠돌이 목수로 살아간 민중이라고 말한다. 누가복음 4장에서도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감탄하면서도,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하고 수근거렸다.

예수님은 신이시지만 또한 완벽한 인간이시다. 완벽한 인간이시기에 여느 인간처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셔야만 했다. 왜 하나님은 나(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셨는지?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시며 비천한 자를 높이시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며 부자를 빈 손으로 보내시기 위해?”(눅 1:51-53) 하필이면 왜 예수님이 세상 사람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야 하는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님은 본인이 왜 이 세상에 보내졌는지(정체성의 문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하나님의 미션 문제)를 분별하셔야 했다. 제자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곧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대비해 그들에게 분별의 삶을 호소하셔야 했다.  가족을 뒤로하는 매정함도 필요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 14:26). 어머니의 청도 면전에서 거절해야 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요 2:4). 제자들도 탓하셨다.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 4:40)

첫째 제자인 베드로를 저주하시기도 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3)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에게 화를 내며 폭력을 불사하셨다”(요 2:14-16). 괴로워하시기도 했다.“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여야 할까? 아버지, 이 시간을 벗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아니야, 나는 바로 이 일 때문에 이 세상에 왔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드러내십시오”(요 12:27-28).

하나님의 때, 곧 십자가에 죽으실 때가 다가오자 고통이 뒤따랐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마 26:39) 십자가 상에서“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마 27:46)라고 절규하셨다. “예수님은 지상의 인간으로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셨다”(마 27:50). 인간들을 위해 세상에 오신 신이 그 인간들에 의해 버려지셨다. 그리고‘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인간의 모습과 동일한 예수님이셨지만 그분은 죄가 없으셨고, 어떤 판단에도 실수가 없으셨다. 예수님은 무오하시다.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고 계셨지만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의 모든 특권을 버리시고 종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같이 되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분을 최고로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이 모두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빌 2:6-11, 현대인의 성경)

여기서 주의할 점은 주님께 오류가 없다고 해서 모든 것을 ‘분명히’ 다 아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동체로서 모든 것을 다 아시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여전히 주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히 5:7-9) 예수님은 소원을 빌었고, 순종을 배웠고, 완전한 분별을 하셨으며, 하나님과 온전하게 한 몸이 되셨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기도에서 보여 주듯이, 예수님도 우리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부담을 느끼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피하고, 외면하고 싶으셨다. 하지만 예수님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실천에 옮기심으로 모든 자의 구원의 근본이 되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완전한 분별인지, 누구를 위해 분별을 하는지, 분별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 주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안다, 무엇이 예수님의 분별과 순종과 죽음의 열매인지. 그것은 부활이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 그리고 영원히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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