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브라이언 스미스의 『Room of Marvels』를 읽었다. 번역본이 없는데도, 미국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달라스 윌라드가 추천했던 책이어서 영문판을 빌려 읽었다. 이 책은 소설이다. 소설의 화자가 성공회 피정센터에 머물면서 꿈속에 천국을 다녀오는 이야기다. 저자에 따르면, 등장인물은 모두 이름만 바꾼 실제 인물들이다. 심장 기형을 안고 태어난 딸과 절친한 친구와 어머니를 몇 년 사이에 잃은 저자는 상실의 고통이 너무 커서 다시는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집에서 수도원이라는 가상 공간을 설정하고 천국 여행을 떠났으며, 그 공간에서 사랑했던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고, 그 대화가 소설이 되었다고 한다. 달라스 윌라드는 기독교의 기본 교리들을 소설로 잘 풀었다고 평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딸과 어머니와 친구의 잇따른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있는 화자에게 아내는 피정 센터를 권하고, 피정 센터의 수사는 무조건 쉬라고 충고한다. 생각도 그 어떤 노력도 하지 말고, 심호흡을 하면서 느려지라고, 지금 여기에 있는 내가 되라고 말한다.

둘째 날 밤, 화자는 너무 선명해 도저히 꿈이라 여겨지지 않는 꿈을 꾼다. 파자마 차림의 화자가 기차를 타고 오두막에 도착하면서 천국 여정이 시작된다. 이발사 에르니, 천국에선 잭으로 통하는 기독교 작가 C. S. 루이스, 친구 웨인, 증조할머니 셀리아, 대학생 때 식당에서 같이 일했던 토미, 할아버지 해리스, 어머니, 딸 매디슨이 차례로 나타나고,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존재가 분명하게 느껴진다.

오두막에서 만난 이발사 에르니는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손님에게 밝힌 적 없지만, 머리칼을 자르는 동안 그 손님을 위해 기도했다면서, 천국에서는 소리 없이 드린 기도 한 마디도 소홀히 여겨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두막에는 거울도 있다. 주인공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거울 속 주인공은 깊은 슬픔에 빠져 있다. 거울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본 주인공은 심한 수치심을 느낀다. 속사람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것이다. 천국에서는 꾸밈도 거짓도 통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만난 잭은 고통스러워하는 나, 자기 의에 사로잡혀 고통까지 통제하려 드는 나, 자신은 물론 하나님까지 용서하지 못하는 나를 상기시켜 준다. 화자의 슬픔이 얼마나 이기적인지도 깨닫게 해주며, 회개를 돕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때 그 너머를 생각하신다. 우리의 소원을 그대로 들어 주는 건 우리의 운명을 우리의 수중에 넘겨주는 것이다. 우리의 소원을 일일이 들어 주는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이 아닐 것이다. 그런 하나님은 악마보다 더 악한 존재일 것“이라고 잭은 말한다.

그 다음에 만난 친구 웨인은 화자가 자신의 가면과 지휘봉을 없애도록 도와준다. 가면은 처세를, 지휘봉은 조종을 상징한다. 세상에서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진짜(속사람)보다 더 진짜처럼 여기게 된 가짜 얼굴(겉사람)과 성취를 위해 끊임없이 나와 이웃을 조종하려드는 지휘봉을 버리지 않으면 주님께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화자가 불의 제단에 가면을 던지려 하자, 화자와 똑같은 얼굴의 가면이 외친다. “나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을 걸. 두렵지 않아?” 공포에 사로잡힌 화자는 죽을힘을 다해 가면을 불 속에 던진다.

세상에서 느끼는 두려움(fear)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말을 화자가 거꾸로 타고 가는 동안 지휘봉은 사라져 버린다. 말을 거꾸로 타는 건 삶이나 두려움의 고삐를 화자가 쥐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맡기는 자세를 뜻한다고 한다. 그렇게 주님이 천국에 마련해 두신 화자만의 ‘room of marvels'를 향해 가는 동안, 걸치고 있던 스웨터의, 죄를 상징하던 잿빛은 하얗게 변하고 그림자도 사라진다. 천국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몸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화자가 ‘room of marvels’에 들어가니 야구공이 놓여 있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하던 식당에서 같이 일한 토미가 나타난다. 고아원 출신의 가난한 청년 토미에게 화자가 경기장에서 우연히 얻은 홈런친 공을 준 적이 있는데, 그 야구공이 ‘room of marvels'에 놓여 있는 것이다. 선뜻 주고 싶어서 준 게 아니었다고 화자가 고백하자, 토미는 자신에게 그 공이 너무나 소중했다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원을 화자를 통해 들어주신 것이라 말한다.

네 살적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잔디밭에서 체스를 두고 있다가 화자에게 체스 한 판 두자고 말한다. “본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천국이 크다는 걸 말해 주고 싶다.”면서, 할아버지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상상하거나 꿈꾸는 것 이상으로 크다.“고 말한다.

그리운 어머니도 만난다. 가장 완전한 분이었다고 말하는 화자에게 어머니는 완전을 지향하는 마음 때문에 천국의 자유를 누릴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엄마는 ‘room of marvels’의 벽에 걸린 1인치짜리 사진틀들을 가리킨다. 그 중 하나에 손을 대니 동영상이 나타난다. 지난 날 화자의 삶 속에 들어왔던 사람들과 얽힌 일들이 상영되고, 모두들 화자 때문에 행복했고 고마웠다고 감사 인사를 전한다. 아스라한 추억이 되어 버린, 크고 작은 사랑 나눔들이 'room of marvels'의 벽에 빠짐없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는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의 일부이며 그들도 우리의 일부”라면서, 어머니는 앞으로도 화자를 위한 ‘room of marvels’의 벽에 1인치짜리 사진이 끝없이 붙여질 것이라 말한다.

마지막으로 너무나 보고 싶었던 딸 매디슨과 만난다. 천국에서의 그녀는 두 살이 아니다. 두 발로 사뿐사뿐 춤을 추는 해맑은 어린이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천국에 올 수 있었겠어요?”라면서 감사를 표하는 매디슨은 아빠에게 부탁한다. “기도하실 때 꼭 하고픈 말씀을 하세요. 하지만 어떤 응답을 받을지는 하나님께 맡기세요.” 그녀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기에 그녀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점점 더 강하게 드러났다면서, 매디슨은 ”하나님의 힘은 약함 속에서 완전해져요"라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잘 있어요.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요. 하나님은 항상 당신을 사랑해요.” 화자는 훗날을 기약하며 기쁘게 그들 모두와 헤어진다.

잠에서 깨어난 화자는 아내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득달같이 집으로 달려간다. 그가 꾼 꿈은 주님의 약속이자 삶의 희망이었다. 사랑했던 이들은 사후의 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화자 안에 살아 있었다.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고 화자 부부는 다시 아이를 낳는다. 건강한 딸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부부는 동시에 아이의 이름은 “희망‘이라고 외친다.

길지 않은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다. 교리책이나 천국 간증보다 소설 속의 천국이 더 실감난다. 어느 과학자는 생명 단위를 DNA가 아닌 우주라고 했다. 스스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피조물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독교인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 모든 생물들이 주님의 지체이고, 지체여야 한다는 말로 풀이할 수 있겠다. 내 생명을 지키고 누리는 것이 곧 네 생명을 지키고 누리는 것이기에 용서와 사랑은 일상이 되어야 한다는 뜻일 게다. 나도 사람보다 사랑이 먼저 보이는 존재가 되어야 할 텐데, 아직도 사랑만 받고 싶으니 여러분 덕분에 연명하는 셈이다.

그런데 ‘room of marvels’를 어떻게 번역해야 하나? 기적의 방? 경이로운 방? 천국의 내 방?

(* 제임스 브라이언 스미스 목사는 예일대와 풀러신학대에서 공부했으며, 프렌즈 대학의 신학 교수이자 작가이며 크리스천 영성 훈련 분야의 강사이다. 리차드 포스터의 영성 부흥 선교회의 창립 멤버이고, 여러 지역교회들을 섬겼다. 저서로는 『선하고 아름다운 하나님』, 『선하고 아름다운 공동체』, 『영성 훈련을 위한 아홉 번의 만남』, 『Rich Mullins: An Arrow Pointing to Heaven』, 『Room of Marvels』가 있으며, 『리처드 포스터가 묵상한 신앙 고전 52선』을 공동 편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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